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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좋은 선배 혹은 좋은 후배

by 만숑의 직장생활

어느 무더운 여름밤이었다.


같이 일하던 김 상무와 오랜만에 단둘이 술을 마셨다. 김 상무가 술 잔을 들이키더니 물었다.


“요즘엔 어떤 생각하면서 일해?”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조금은 진심을 꺼내놓았다.


“좋은 선배가 되고 싶어요.”


“좋은 선배? 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굳이 윗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보다는, 후배들이랑 편하게 지내면서 즐겁게 일하고 싶거든요. 제가 좀 더 챙기고, 잘 알려주면서, 앞장서서 같이 걸어갈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김 상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한 번 술잔을 들이켰다.


“그래. 나도 처음엔 너처럼 생각했었지. 좋은 선배가 돼야지, 후배들 잘 챙겨야지... 그런 생각.”


‘생각했었지’라는 과거형.


“근데 지금은 좀 생각이 바뀌었어. 좋은 선배가 되려면, 먼저 좋은 후배가 돼야 해.”


그 말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좋은 후배요...? 저는 윗사람한테 굳이 잘 보여서 출세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어요...”


김 상무는 이번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회사는 말이야, 기본적으로 '일하려고' 모인 곳이야. 좋은 형, 착한 동생 찾는 자리가 아니지.”


“그런 의미에서 ‘좋은 선배’라는 건, 후배가 회사에서 인정받게 해주는 사람이야. 그 후배가 중요한 일을 맡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필요할 땐 직속 상사에게 후배에 대해 좋은 평가도 해줄 수 있는 사람. 그게 진짜 좋은 선배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런 역할을 하려면, 선배 자신이 회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할까? 윗사람에게 인정받는 사람이어야 해. 그래야 말에 힘이 실리고, 후배를 위해 뭔가 해줄 수 있지.”


“능력도 없고 위에서도 인정 못 받는 선배가, 후배들한테 아무리 잘해봐야... 결국엔 그냥 일에 자꾸 끼어드는 아저씨일 뿐이야. 사람이 나쁜 건 아닌데, 딱히 도움이 되지는 않거든.”


잔잔하게 들려오는 그 말들이, 의외로 오래 머릿속에 남았다. 그날 밤, 나는 내 물잔에 남아 있던 사이다를 천천히 다 마셨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좋은 선배가 되겠다는 마음은, 결국 나 스스로가 회사 안에서 ‘좋은 후배’가 되겠다는 말과 같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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