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과의 인터뷰가 예정된 어느 날이었다. 평소부터 궁금했던 내용들을 정리하며, 인터뷰 질문지를 만들었다. 내가 직접 만들 문서인 만큼, 엉뚱한 질문은 넣지 않으려고 여러 번 다듬었고, 용어도 정제해 가며 나름대로 공을 들였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 김 상무에게 최종 확인을 받는 일이다.
“상무님, 다음 주 인터뷰 때 질의할 질문 정리한 내용입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응, 고마워. 한 번 볼까?”
잠깐의 정적. 나는 마음속으로 이미 합격 도장을 찍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그런데.
“음, 만숑, 이 질문지는 무슨 생각으로 정리한 거야?”
... 예상 밖의 반응이었다. 순간, 뭔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네? 지금까지 자료 정리하면서, 잘 모르겠거나 궁금했던 것들 위주로 만든 질문인데요?”
“궁금한 거 정리한 내용이라고?... 너 인터뷰 안 해봤니?”
가슴 한쪽이 싸해졌다. 내가 지금 무슨 큰 실수를 저지른 건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인터뷰하는데, 본인이 궁금한 걸 적으면 어떡하니? 서로 바쁜 사람들인데, 그 시간에 그렇게 '배움의 자세'로 가면 시간만 축나는 거야.”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니, 원래 인터뷰란 게 궁금한 걸 묻는 거 아닌가요? 모르면 묻고, 그러면서 알아가는 거 아닌가요?
내가 혼란에 빠진 기색을 숨기지 못하자, 김 상무는 잠시 말을 고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만숑, 직장에서 하는 모든 질문은 말이야, ‘모르는 걸 물어보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행위’야. 질문을 한다는 건, 이미 네가 어느 정도 구조를 짜 본 뒤, 그 구조가 현실과 얼마나 맞는지를 검증하는 작업이어야 해. 그런데 아무런 구조 없이 그냥 '이게 뭐예요?', '왜 그래요?', '어떻게 돼요?' 식으로 던지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한테 일일이 기초부터 설명해야 하니까 피곤하단 말이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불필요한 배경 설명이 길어지기도 하고.”
나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들이 점점 뼈에 사무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인터뷰도 마찬가지야. 인터뷰 전에 관련 자료를 최대한 찾아보고, 스스로 가설을 세워봐. 그리고 그 가설을 들고 가서, 담당자에게 '이 방향이 맞는지', '빠진 게 없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질문지를 구성해야 해. 예를 들어, '이건 뭐예요?'가 아니라 ‘저번에 주셨던 자료에 따르면 A→B→C의 순서로 이해했는데, 혹시 틀린 부분이 있을까요?’ 이런 식으로.”
말은 길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기준은 분명했다. 회사에서 질문이란 건 ‘배움’이 아니라 ‘검증’이어야 한다. 그 기준 하나만으로도, 내가 만든 질문지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질문에는 태도가 담긴다. 그리고 그 태도는, 상대의 시간과 지식에 대한 존중으로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의 표현이 아니라, 스스로 구조화한 가설을 타인의 관점으로 검증받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