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20년의 세월에 배운 것이 있다고 한다면 희망이라는 것의 공허함일지도 모르겠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그것은 도리어 쉽게 절망하는 것의 어리석음이라 할 수도 있다. 그 희망과 절망의 틈바구니에서 역사 앞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를 이행할 뿐이다.
이런 저자의 에필로그 한 줄 한 줄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은 그의 가족 덕분이다. 서경식 선생의 둘째형 서승은 19년, 셋째형 서준식은 17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고국으로 유학 갔던 두 청년이 군사독재정권에서 간첩 혐의로 고문을 받고, 큰 화상을 입고, 사형선고도 받고. 부모는 끝내 출옥을 보지 못한채 눈을 감았고. 스무살 때 형들의 투옥사건에 부딪친 저자는 이후 20년 가까이 형들을 구출하기 위한 삶을 살았다. 분단 조국의 질곡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뒤 유럽으로 훌쩍 떠났다가 그림을 만났다.
시선은 그림에 머무르고, 복잡한 마음은 한반도와 일본의 역사를 누비고. 그림 하나에 짧은 설명을 붙인 이 에세이가 한 장 한 장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느리게 천천히 읽었다. 지난 가을 어느날, A는 이 에세이를 선물하며 인생 책이라 했다. 상냥하고 속 깊은 그의 배려가 고맙다. 얼마전 한 잔 대화를 즐겁게 나눈 S에게 다음날 이 책을 선물했다. 차분하게 그림을 바라볼 수 있던 짧은 시간들을 선물하고 싶었다. A도 그랬을듯.
한순간 이 순례를 시작하게 만든 그림은 벨기에 미술관에 있었단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를 배경으로 가죽벗김을 당하는 희생자를 저토록 정밀하게 묘사하다니. “벗겨지는 살껍질의 주름살과 그 밑에 드러나는 근육의 부풀어오른 혈관 따위를 묘사하는 데 17세게 플랑드르 사실화..의 집요함”..
몇 몇을 빼면 소개하는 그림들은 흔하게 미술 교과서에서 본 것들이 아니다. 그런데 저자와 고백 속에 함께 시선을 뗄 수 없다.. 사연들도 그렇다.
“내 생활은 뿌리가 뽑히고 내 걸음걸이도 휘청휘청한다. 나는 내가 너희들의 저주스러운 짐짝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고흐가 동생 테오와 그 아내에게 보낸 편지.. 창조자, 구도자, 혁명가의 순수성은 주변 이해자들을 힘들게 하고, 때로 당사자가 되도록 한다. 고흐의 그림과 사연 앞에서 서경식 선생의 마음을 짐작하기 두렵다.
삐까쏘의 ‘게르니까’..
삐까쏘의 말을 옮겨보면 “스페인의 전쟁은 인민과 자유에 대한 반동의 전쟁이다. 나의 전 예술적 생애는 오직 예술의 죽음과 반동에 대한 싸움뿐이었다.. 스페인을 공포와 죽음의 바다에 잠기게 한 군사력에 대한 나의 공포감을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1937년 4월26일 나찌스 독일 공군은 독재자 프랑꼬를 지원하기 위해 바스끄 지방 소도시 게르니까에 무차별 폭격을 감행, 수백명을 학살했다. 희생자가 2000명을 넘는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이 그림을 소개하는 이야기에는 일본의 한 전쟁터 그림이 있다. 어떠한 고통, 분노, 좌절도 보이지 않는 평화로운 전장.. 예술의 출발선, 존재 이유를 생각하게 되는 그림들.
책은 얇으며, 그림 덕분에 독서의 부담이 적다. 100곳 넘는 미술관을 다니며 정말 마음 깊이 들어온 몇 작품만 골랐나보다. 희망과 절망의 어느 사이에서, 시대의 운명에 얽혀 개인의 작은 삶을 이어나가는 모두에게.. 묘한 위안과 서글픔, 담담함을 함께 안겨줄 책이라고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