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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Sep 23. 2018

<동물원의 탄생> 동물원 잔혹사(2003.10)

지난 18일 동물원에서 빠져나갔다가 결국 사살당한 퓨마 호롱이의 생전 뒷모습이라고요... 우연히 열려진 문으로 나갔던 그의 최후는 몹시 비통합니다. 맹수의 기억이 없는 그는 맹수라서 위험했겠죠. 누군가를 해치지 않았으나 해칠 수 있다는 존재의 특성이 죄인가요. 포식자 영장류로서 새삼 미안합니다.


이 사건으로 친구 딸기가 오래 전 리뷰를 꺼냈고​, 제 것도 찾아보라네요. 딸기가 시키면 대체로 하는 저. 옛날 블로그 글입니다. 2003년 10월의 리뷰. 30대 초반, 인생 어느 때보다 동물원을 자주 갔던 무렵의 얘기입니다. 저는 대충 기록했고, 제대로 된 리뷰는 딸기 리뷰​를 보세요. 강추.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사파리 공원에 갔지. 우리는 버스를 탔고, 동물들은 마음껏 그 좁은 공간에서나마 돌아다닐줄 알았지. 그런데 사자와 호랑이, 곰들이 자유를 누리기는커녕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앉아 움직이지 않는거야. 심지어 재롱을 부리면서 과자를 얻어먹었지. 자세히 살펴보니, 그 자그마한 자유의 땅 주변에는 보일듯말듯 가느다란 줄이 둘러있었고, 그네들은 관객들의 버스가 지나가는 길가에서 삶에 무감각해진 눈으로 우리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어. 그게 바로 사파리공원이라구.

언젠가부터 동물원 나들이가 꼭 즐겁지만은 않더라구. 물론, 애들 때문에 더욱 자주 가기는 하지. 독일의 동물학자 알렉산더 소콜로브스키는 1908년 고릴라 걱정을 해줬어. 감금상태에서 고릴라들의 생명 에너지가 파괴되고, 고릴라들은 깊은 슬픔과 우울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는 거지. 그래서 그는 제안해. 젖을 떼지 않은 어린 고릴라들을 잡으라고. 자유를 잃은뒤 스스로 생을 반납하는 어미들보다, 길들이기 쉬운 새끼들을 잡으라고.

19세기부터 대중적 동물원의 개념이 시작됐지. 동물원은 부와 지위, 식민지 정복의 상징이었다고 해. 탐험가들은 고국에 호랑이나 코끼를 보냄으로써 자신들의 애국심을 증명했고, 대도시 동물원에 진기한 동물을 기증하는 건 비굴한 외교 관계의 증거였다나. `동물원의 탄생'의 작가 니겔 로스펠스는 참 끈질기게 동물원의 역사를 추적했더만. 사실상 칼 하겐베크라는 탁월한 독일인의 사업역사라고 할 수도 있을거야. 이국땅 동물 무역으로 떼돈을 벌었고, 이들을 창고에 넣어두기 뭐하니까, 동물원을 만들었고, 비싼 경비 줄이려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재현, 현대적 개념의 방목형 동물원을 만든 것도 다 하겐베크야.

동물 잡는 이야기도 좀 해볼까. 20세기초 미국의 동물관장은 편지를 썼어. 코뿔소를 잡는 일응 상당히 흥미롭지만, 어린 인도 코뿔소 네마리를 잡기 위해 어른 코뿔소 마흔 마리를 죽인 건 좀 뭣하지 않냐고...근데, 그는 이렇게 덧붙여. 살아남은 새끼들이 네팔의 정글에서 마음껏 뛰어놀다가 무지한 원주민들이나 볼 어른 코끼리보다는 (동물원에서 문명인들에게 오락과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훨씬 더 세상을 이롭게 만들 것이라고 말야...


암튼, 예나 지금이나, 어른 야생동물은 잡기도 어렵고, 길들이기도 어려우니까 대개 새끼를 잡았대. 그래서 어른 동물들은 싸그리 죽여버렸고. 새끼들은 일부 절망에 빠져 죽었고, 살아남는 놈들만 데리고 오는 거야. 대형 수족관? 필리핀에서는 한달에 물고기 20만마리를 잡으려고 바닷물에 독약을 살포한다나. 절반 이상 죽고, 나머지는 전세계로 팔려가지.

한때는 동물 사냥을 얼마나 소름끼치게 묘사, 독자들을 매혹시키느냐에 열중하던 시기도 있었다는군. 이런 거야. 코끼리 암컷을 해치운뒤..'새끼는 작은 엄니로 흙을 후벼내면서 울부짖고 신음했으며, 뒤쪽으로 돌진하여 거꾸로 서서 몸서리를 쳤다. 분노로 입에서는 거품이 맺혔고, 핏발이 선 눈이 머리에서 튀어나오는 듯 했다'..라는 식으로 떠들며 자신의 용맹성과 그들의 절망을 대비시키는 거지. 사람들은 참 웃겨. 결국 오늘날 우리도 야생동물들이 철창에 갇혀 있는 꼴을 보기 싫어하잖아. 미학적 측면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어?

하겐베크는 동물쇼에 재미를 붙인뒤, 사람쇼도 했었다는군. 에스키모나 아프리카, 아시아의 원주민들을 데리고 와서 꾸밈없는 야성을 보여주는 거야. 너무나 흥미로운 인류학적, 동물학적 풍경이라나. 여기에 유럽인들은 열광했고. 때로는 자신들의 선조들도 생존에 대한 위협이 가득한 세상에서 매머드를 사냥하는 용감한 이들이라고 상상했다고 하네. 물론, 선조들이 사냥에 열중했는지, 열매 따먹고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사람들은 동물들이 야생에서 멸종되느니, 동물원을 `노아의 방주' 삼아 생존하지 않냐고도 해. 생존투쟁의 냉혹한 현실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측면도 있다는 거지. 동물원이야말로 누이좋고 매부좋은 곳이라는 거 아니겠어? 아, 울 애들의 천국인 동물원에서 시니컬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2003. 10)  

#니겔_로스펠스 #동물원_잔혹사 #바닷물에_독약살포_상상되는가 #새끼_네마리_잡으려_어른을_마흔마리_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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