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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Dec 16. 2019

<우먼 인 할리우드> 그들의 의지가 바꾼 것들

할리우드에서 벌어진 일


샤론 스톤에게 연기 지도를 위해 무릎에 앉아보라는 감독은 누구였을까요. 16살 클로이 모레츠에게 가슴 뽕부터 하라고 지시한 제작사 누군가는 여학생을 어떤 시선으로 본 걸까요. 감독, 촬영감독, 작가, 온갖 스탭들 다 모여 100명이 넘어도 세트장에 리즈 웨더스푼 홀로 여성인 상황에 다른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던 걸까요. 

할리우드의 온니들이 나섰습니다. 96명의 인터뷰를 담은 다큐. 할리우드가 어떻게 여성을 지웠고, 어떻게 여성을 배척했으며, 어떻게 여성을 소모했고,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고 대했는지. 그리 놀랍지는 않다는게 더 놀라운 그런 영화입니다. 고발과 폭로? 그 단계는 지났어요. 세상을 바꾸려는 어떤 이들의 노력이 어떤 변화를 만드는지 재확인한 영화입니다. 사실 원제는 'This Changes Everything'. 바꾸고 있다니까요.


데이터의 힘, 팩트가 바꾼다

<델마와 루이스>를 비롯해 좋아했던 배우 지나 데이비스. 뭐하시나 했더니 2004년 미디어젠더연구소를 만들었더군요. 분명 여성을 배제하는데, 아니라고 우기는 이들에게 '데이터'를 내밀기로 한거죠. 꼼짝 못하게. 


그녀는 '투씨(1882)'에서 속옷 차림으로 본격 데뷔합니다. 별 의미도 없이 벗긴 장면. 1992년 <그들만의 리그>를 찍으면서 여성 야구선수 역할을 맡았는데 운동하는 소녀들에게 힘이 되었다는걸 알게 됩니다. <컷스로트 아일랜드>에서 해적선장, <롱키스굿나잇>에서 전직 스파이로 계속 '여걸' 역할을 맡았던게 우연은 아니었나봅니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전형적 여성상에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졌나봐요. 

연구소 소개가 인상적입니다. 스크린 속에서 젠더 균형을 모색하고,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유해한 고정관념을 줄이고, 여성 캐릭터를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 '스머프'를 봐도 여성은 여성성 과도한 단 1명, 온갖 어린이 프로그램에 여성 캐릭터는 덜 똑똑하고 더 예민하거나, 애교에 주력하는 양념 같은 존재. 그걸 보고 자란 아이들이 뭘 생각하겠냐는 겁니다. 
Founded in 2004 by Academy Award Winning Actor Geena Davis, we’re the only organization working collaboratively within the entertainment industry to engage, educate and influence the creation of gender balanced onscreen portrayals, reducing harmful stereotypes and creating an abundance of unique and intersectional female characters in entertainment targeting children 11 and under.


저 연구소 사이트까지 쫓아간건 영화가 제시하는 몇 가지 데이터 때문입니다. 저렇게 데이터를 내밀면, 신경쓰이는 법이거든요. 

■ 1990~2005년 전체 관람가 흥행작 상위 101편 중에서 대사가 있는 역할 72%는 남자였다.

■ 내레이터 5명 중 4명 이상이 남자였다.

■ 2017년 흥행작 상위 100편에서 남주인공은 여주인공보다 화면에 두배 더 노출됐다.

■ 전체 관람가 영화 속 여성의 의상은 남성보다 노출이 세배 더 심하다.

출처 = [사소한 발견] 여자 셋이 모이면 지구를 구한다, 남자 영웅은 거들뿐


'벡델테스트(http://bechdeltest.com/)'도 거슬리는 거죠. 1) 이름이 붙여진 여자가 두 명 이상 나올 것, 2) 서로 대화할 것, 3) 대화 내용에 남자가 관련되지 않은 다른 내용이 있을 것. 솔직히 어이 없어 보이는, 최소한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지 여부로 영화 속 성평등을 테스트하는데.. 201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영화관이 해봤더니.. 영화 절반이 탈락했다고요. 역시 이런걸 따지기 시작하니까, 확실히 나아졌고요. 요즘 '어벤져스'나 '스타워즈', '터미네이터'조차 여성 히어로를 앞세우는 경향이 등장한 건, 여성들의 문제의식이 확실해졌기 때문인데요. 벡델테스트 같은 시도, 지나 데이비스의 시도들이 변화를 만든건 분명해보입니다. 

'헝거게임' 이후 양궁 수업을 듣는 여학생이 늘어나고, 'CSI 과학수사대'에서 여성 법학자가 나온 이후 그 분야 여성 숫자가 늘어나고. 미디어는 확실히 힘이 셉니다. 그래서 더 잘해야 하고요. 


세상을 바꾸는 건 의지


영화에서 놀라운 건.. 할리우드가 처음부터 그랬던건 아니란거죠. 뤼미에르 형제 뿐 아니라 알리스 기 블라쉐, 로이스 웨버 등이 맹활약했답니다. 여성 감독에게 인색한 지금과 사뭇 다른 분위기. 그럼 왜 바뀌게 된건지, 그들은 잊혀졌는지 질문이 바뀌어야 합니다. 돈이더군요. 영화가 점점 돈 먹는 사업이 되는데 투자자, 제작자들이 남성 뿐이었어요. 할리우드가 스튜디오 시스템으로 대형화하면서 30년대에는 도로시 아즈너, 40년대에는 아이다 루피노 정도 명맥을 이었다고 합니다. 돈줄을 쥐고 있는 쪽도 함께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죠. 

미국에서는 흑인과 여성의 권리운동이 벌어지면서 60년대 후반 'EEOC', U.S.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미국 평등고용추진위원회)가 설립됐습니다. 성차별이 사라지는듯 했으나 쉬울리가요. 이 시점에 등장하는 어벤져스가 있네요. 오랜 성차별 자료를 모아 소송을 건 80년대 6명의 여성감독(아래 사진. 고마운 분들ㅎㅎ). 그리고 이를 이어가는 또 다른 여성. 법을 만드는 것도 애쓴 분들이 있을테고, 사문화된 법을 데이터에 기반해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 미드, 요즘 영화를 보면 느끼지만.. 여성과 흑인이 주인공인 시리즈가 잇따라 성공하면서 점점 늘어났겠죠. FX채널의 CEO는 89%에 달하던 백인 헤테로 남성 연출자 비중을 절반까지 낮췄다고 합니다. 그 결과 성과도 좋았다고요. 다양한게 훨씬 창의적이고 에너지 높지 않겠어요? 시대가 바뀌는 방향에 대한 감수성과 촉은 대체로 소수자들이 강한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꼴찌라 해도 

할리우드 얘기만 볼 수는 없죠. 나아진다고, 바뀐다고 해도..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유리천장 지수가 7년 연속 OECD 꼴찌에 머무르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삘 받은 김에 들어가서 좀 봤어요.

조사 대상 국가 29개국 중 29등. 한국 여성의 고등교육 성취도? 낮다는 건 좀 믿기지 않네요ㅎ 


여성들이 남성보다 34.6% 적게 벌고, 매니저 직급 12.5%를 차지하며, 이사회에서는 고작 2.3%. 국회 법사위는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사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 성으로 구성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준수 여부를 자율공시한다’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지난달 의결했습니다. 여성 이사를 최소 1명은 둘 것을 강제합니다. 당초 3분의 1 의무조항 법안이 발의됐던 것을 감안하면 후퇴했지만 권고 조항이 될 뻔 하다가 유예를 두고 의무 조항으로 바뀌었습니다. 다행히! 현재 이사회의 여성은 오너의 부인과 딸이 적지 않다는 지적을 듣긴 했는데..(구체적 데이터가 어디에 있나요)  법이 바뀌는 건 중요합니다. 이쯤에서 잘 된 정리..


우리도 '남녀고용평등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 있는데, 정부의 의무규정도 실질적 제도적 장치도 없다는 평이긴 합니다. 그럼 따져묻고 다시 바꿔야죠..


한국 여성의 GMAT 응시율도 35.7%. 유학까지 가는건 여전히 더 적은건가요? 의회의 여성의원 숫자도 조사 대상 국가 중에서는 꼴찌 수준이네요.. 아 마지막도 해석 못했어요.. ㅠ 


그래도 이런 데이터도 있습니다. 변화는 시작됐어요. 12월12일 제1회 메디치포럼에서 여성 커뮤니티 기업 헤이조이스 대표 이나리님이 발표한 내용. 

끝내 바뀌긴 할텐데.. 여성의 생각과 인식은 확 바뀌고 있는 반면 사회는 아직 더디죠. 속도차에서 나오는 격차와 괴리감에도 불구하고, 끝내 바뀔겁니다. 그리고 지나 데이비스처럼.. 실제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더 있을겁니다. 이 영화는 정말 좋아요. 다큐이기 때문에 이 정도는 풀었어도, 실제 보면 완전 반할겁니다. 딸과 함께 봐서 더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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