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을 뒤흔든 18년 3월의 폭로
페이스북의 '좋아요'가 심리전 무기로 쓰였고,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소식은 2018년 3월에 나왔죠.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라는 '듣보잡' 회사를 한국의 저 같은 사람까지 기억하게 만든 소식. 페이스북은 8700만 명 이상의 정보가 유출된 것에 대해 몰랐다, CA가 개인정보를 삭제하지 않은 것도 몰랐다고 했어요. 저커버그는 의회에 불려갔고, 하루아침에 페북 시가총액 수십 조원이 날라갔죠.
당시 외신 챙겨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CA의 내부고발자 책이 번역됐다는 소식과 함께 최근 인터뷰를 봤어요.. 상당히 실망했죠.
"만일 페이스북이나 구글이 계정을 만들거나 댓글을 달 때 디지털 실명제를 요구해 한 번에 진짜 ‘사람’이나 ‘개인’만이 댓글을 달 수 있게 한다면 유료 인플루언스 마케팅의 대부분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누른 '좋아요 68개'로 당신의 모든걸 알고있다 비즈조선 2020년 4월20일 보도
이건 정말 '민주주의 국가 중 유일하게 경험해봐서 아는데', 실명제는 악플을 줄이는 효과도 없었고, 마케팅을 막지도 못해요. 사실 페북에서 이상한 글 올리는 이들조차 실명 내걸고 하잖아요. 실명 위장을 위해 주민번호나 거래되게 만들었고, 나쁜 의도가 있는 이들은 빠져나가고, 선량한 이들은 위축효과에 시달리죠. 엄청난 일을 폭로한 이의 '솔루션'이 고작 실명제라면 매우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이 사건 내부고발자 브리태니 카이저 책을 굳이 읽어볼 생각을 안했어요..
어제 S님이 '거대한 해킹'을 본 소감을 흥분해서 털어놓지 않았더라면, 다큐도 아마 안봤을 수 있어요. 새삼 궁금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데, 유사한 내부고발이 처음은 아니거든요. 사실 16년에 나왔던 세풀베다 얘기는 또 얼마나 놀라운데요.....
미국이 쿠바에 가짜 SNS 서비스를 제공, 공공의료나 시정 관련 이슈를 통해 잠재적 불만 세력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거나, 미국의 공작원들이 가짜 프로필 사용하면서 온라인 정치 공작을 수행했다는 내용을 본게 2015년이었죠. 또 2011년에 읽은 '뉴머러티'에 보면, 미국 기업들이 국민들 정보를 어떻게 수집해서 어떻게 팔아먹는지 나옵니다. 그때도 이미 무시무시했어요.
근데 CA 문제의 핵심은 다른 거네요. 이건 2016년 미국 대선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같은 회사가 브렉시트 여론전도 펼쳤다는 점입니다. 제3세계 선거가 아니라 세계 최강대국 선거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고백인거죠. 그 얘기를 자세히 해주는게 다큐멘터리 '거대한 해킹'입니다.
디지털 흔적, 1조 시장
다 돈이 되니까 하는 겁니다. 트럼프가 얼마나 비싸게 저 기술을 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부자 고객들을 조롱하는 내부 얘기도 나오네요. 커뮤니케이션을 무기로 써서 심리를 조작하는 전쟁. 케임브리지대 알렉산드르 코간 교수는 CA 요청에 따라 페북 개인정보 수집을 위하 '재미로 하는 설문조사' 같은 앱을 만듭니다. (네네. 그런 설문조사 함부로 할게 아닙니다. 저를 읽어낸 정보는 어디로 가나요..) 처음에는 수십 만명 챙기다가, 이게 나중에 커졌죠. 개인의 성향을 보여주는 포인트 수천 가지를 챙긴 데이터셋이 수천 만명 규모라니.
오바마 대선에서 소셜미디어 운영 인턴까지 했던 브리태니 카이저, 바로 그 내부고발자가 극우 진영을 위해 활약한 대목도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었는데요. 돈 때문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집안 망하는 상황에서 돈을 주는 곳에서 일해야 했다는 겁니다. 흔한 변명인데, 사실 만감이 교차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돈을 줘도 영혼을 팔지 않는 이들이 분명 있고, 돈 때문에, 먹고 살려고 매국하는 이들을 뉘우치면 다 용서할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트럼프 정부에 문제가 있다면 그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을까요.. 내부고발자로서 #OwnYourData 운동을 펼치는 그에게 전세계가 빚진 것도 있겠지만 말이죠.
선거 커뮤니케이션 전쟁
사실 미국의 선거 방식은 요상해요. 힐러리 클린턴이 100만 표를 더 받아도 트럼프에게 진 것은 이른바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 등 스윙스테이트가 만들어낸 결과. '거대한 해킹'에 따르면 CA는 저 지역의 '설득가능자(persuadable)'만 따로 챙겼습니다. 크리에이티브 팀이 맞춤형 콘텐츠를 만들어 '설득가능자'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볼 때 까지 집요하게 공략했습니다.
'Defeat Crooked Hillary' 부정직한 힐러리를 물리치자, 실체도 없는 슬로건, Crooked 에서 수갑을 형상화한 'oo' 이미지가 주요 무기. 수백 개의 창작물을 뿌리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알아서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권위주의 정권이 증가하는 건, 페북(혹은 유튜브) 기반으로 증오와 공포의 정치가 확산되는 것과 분리할 수 없는거 아닐까요.. 왓츠앱이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온상이 됐다는 건, 선거 때 마다 늘어나는 카톡 '받은글'을 연상시킵니다. 미얀마에서 인종 혐오를 조장하는 포스팅은 제노사이드를 낳았다고요. 러시아가 가짜 'Black Lives Matter' 캠페인을 벌이고, 미국 내의 내분을 조장한다는 건, divide and conquer 수법이라지만 당혹스럽습니다.
미국 대선에 개입하기 이전, CA는 온갖 나라에서 '성과'를 자랑했습니다. 트리니나드토바고 'Do So' 캠페인은 정말 어이가 없네요. 정치적 무관심이 뭔가 쿨한 저항으로 포장되고, 투표를 하지 말자고 설득하는데 먹혔어요.. 웃기는 건 인도계와 아프리카계가 나뉜 그 나라에서, 젊은이들은 모두 'Do So'를 외치다가, 인도계는 부모가 시키는대로 투표를 했고, 아프리카계는 안했다고요. 18-35세 투표율 차이가 40%에 이르렀고, 선거 결과를 6% 바꿨다고 합니다. 이게 CA의 자랑거리였던 거죠. 매년 10여개국에서 대통령이나 총리를 뽑는 선거에 CA가 활약했다고 합니다. 말레이시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케냐, 가나, 나이지리아.. 뭐 이런 고객리스트에 2016년 미국 대선과 이후 영국 브렉시트가 들어가기 전에는 다들 알고도 냅둔 거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남아공(1994), 태국(1997), 우크라이나(2004), 트리니나드토바고(2009), 인도(2010), 콜롬비아(2011), 이탈리아(2012), 말레이시아(2013), 케냐(2013), 아르헨티나(2015) 등에서 새로운 기술과 속임수로 사람들을 설득했고, 투표율을 높이거나 낮췄다는 건데.. 사실 CA의 전신이 했다고 해도 과거 일이 어떻게 되는건지, 다큐를 봐도 잘 모르겠어요. 궁금해서 기록은 남겨두는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큐 주인공인 브리태니가 쓴 책을 주문했어요. 좀 읽어봐야 겠다는 호기심이 생겼으니 '거대하 해킹' 다큐의 뽐뿌력 인정... 세풀베다 해킹팀도 사실 남미 각국을 고객으로 삼았어요. 이들은 겹치는 걸까요? 동지? 경쟁자? 무튼 책 좀 봐야..
모두를 연결시키기 위해 만든 플랫폼이 커뮤니케이션 전쟁의 무기가 됐어요. 페북은 디지털 갱스터라는 별명을 얻었고, 'monopoly attention' 하도록 설계됐다는 점이 이제 심각한 우려를 부르죠. CA의 CEO 알렉산더 닉스가 의회에 출석해 자기들이 오히려 피해자이고, 극단적으로 분열된 세계에서 진보 언론들이 분노해서 자기들을 조직적으로 공격한거라 하는게 좀 어이없어 보입니다.
CA라는 회사 이름을 지어주기까지 한, 그 회사 부사장이 트럼프 대선을 도운 극우매체 브라이트바트의 스티브 배넌이란 것도 18년 3월 무렵에는 시끄러웠습니다. 무엇보다 '거대한 해킹'이 유의미한 건.. 이게 현재진행형일 수 있다는 거죠. 16년 선거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자, 트럼프의 디지털 캠페인 책임자는 자시들이 페북에서 590만개 비쥬얼 광고를 했을 뿐이라고 반박했어요. 클린턴 캠프는 6.6만 개 밖에 안했다고요.. 그 책임자가 2020년 선거 책임자라고 합니다. 페북은 여전히 데이터 통제에 능하지 못하고요. 이런 종류의 선거 해킹이 현행 선거법으로 잡기 어렵기 때문에, 세계가 머리를 맞댈 필요도 있습니다.
덧붙여... 트위터가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 트윗을 올린다는 이유로 팩트체크를 시도한 것에 대해, 마크 저커버그는 마침 27일 "페이스북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말하는 모든 것의 진실의 결정자(arbiter of truth)가 돼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는다"고 했어요.
가짜뉴스에 대해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불가피해보입니다. 플랫폼이 선동과 조작에 이용되지 않도록 해야 할 책무를 유체이탈 식으로 회피하는 경향이 여전한게 아닌지 좀 궁금합니다. 지켜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