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마지막날 읽은 책이다. Jaewon Byun 님의 책은 요즘 나의 사적 화두,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고민에 등불이 됐다. 슬로우뉴스 민노 편집장께서 온갖 짤을 다 찾아서 편집해주셔서..
아래 링크로 읽으시길 추천.
‘지체장애인이자 인권활동가, 소수자 정책 연구자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에서 활동한 500여 일의 기록’. 책 설명이 묵직해서 각 잡고 읽었다. 그런데 첫 문장부터 예상을 벗어난다. 조금 말랑말랑한 느낌.
“그날은 진한 검정빛이 내 삶에 물들기 시작한 날이었다. 만나선 안 될 ‘나쁜’ 장애인을 만난 날이기도 하고, 그가 품은 지독한 잉크가 내 마음에 서서히 번지기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논문 쓰던 대학원생이 연구실 바깥세상으로 뛰어드는 이야기는 청년의 불안과 두려움, 설렘이 뒤섞였다. 고비마다 비틀거리는 인간의 고백은 딱 내 얘기 같고, 때로 짠하고, 때로 신난다. 그의 글은 우울할 기억을 털어놓을 때조차 사뿐사뿐 다가온다. 잘 쓴, 솔직담백한 에세이다.
장애인의 공공시설 접근성이라는 진중한 주제로 석사논문을 쓰던 청년은 이를테면 지식사회 소속이었다. 논문 인터뷰를 위해 찾아갔지만, 서울시청 별관 구석의 ‘데모하는 텐트’는 그의 일상과 거리가 먼 곳이었다. ‘눈치 없던’ 그는 상투적이고 의례적 질문을 던졌다. 그때 만난 이가 박경석 전장연 대표다. 계단 같은 편의시설 바꾸는데 집착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한테 계단은요,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 선 같은 거예요, 그건."
’고작 시멘트 덩어리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라니. 못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던 그는 그날 알게 됐다. ‘서울 거리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쓰고 1984년 자살한 ‘휠체어 시민’ 김순석이 있었다. 계단은 장애인의 일상을 가로막는 엄중한 차별이었다. 서울 거리, 그리 장벽이 높냐고?
나는 스페인과 영국에 다녀온 지난해 봄, 종일 휠체어 탄 장애인을 몇명이나 만나는지 세어볼까 했다. 접근성이 괜찮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물론, 온갖 거리에서 자주 목격한다는 자체가 충격이었다. 서울에서는 하루종일 장애인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 2022년 12월 기준 등록 장애인이 265만명, 전체 인구의 5.2%로 다들 휠체어 시민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우리는 그들을 만나지 못한다. 거리가 그들에게 지독하게 불편한 탓이다. 엘리베이터 설치 이슈가 뜨거운 지하철은 그렇다치고, 저상버스에 휠체어 장애인이 탄 것을 본 적 있나? 장애인 좌석은 있는데, 실제 휠체어 시민이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원이라는 안전한 온실에 있던 그는 ‘매트릭스’의 빨간약을 먹은 마냥 세상에 눈을 떴다. 행정대학원은 ‘불평등한 세상의 아픔을 직면하지 않는 적당한 주제만’ 다룬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각종 이론들은 현실과 무관할 정도로 고차원적이고 현학적이었고, 연구실은 현실 감각을 차단하는 밀폐된 공간’이었다. 반면 바깥 세상으로 나와 전장연 활동을 시작한 그에게 세상은 엄혹했다. 2020년 2월 코로나 초기 코호트 격리는 건강한 시민에게 안전해 보였지만 병원에서 집단감염된 장애인들은 날마다 죽어갔다.
”여러분, 살려주세요.. 여러분은 아프시면 여기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에 가실 수 있지만, 장애인은 거기에 못 갑니 다. 뒤엉켜서 감염되고 뒤엉켜서 죽고, 오늘도 내일도, 매일매일…”
당시 긴급 기자회견에서 덜덜 떨면서 마이크를 붙잡은 그의 외침은 절박했다. 장애인들에겐 죽음으로 이어지는 집단감염의 공포에서 도망칠 권리가 없었다. 그는 어쩌다보니, 자연스럽게 투쟁 대열에 섰다. 그런데 그는 투쟁이란 단어가 버거웠다. ‘여러분의 투쟁을 지지하기는 하는데요, 저는 여기 투쟁하러 온 게 아니에요’, 과연 투쟁이란 무엇인가?
투쟁, 그 단어를 다시 배운다
사실 같은 출판사에서 우리 부부가 책을 냈던 인연으로 그의 저자 사인본을 받았는데 한줄 문구가 ‘투쟁입니다. 투쟁’. 심지어 내게도 이 단어가 조금 어색했다. 주먹을 쥐고 투쟁을 외치던 기억이 오래됐거나, 내가 온실에 안주했거나.
젊은 그에게 ‘투쟁’, ‘민중’, ‘해방’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던 것은 당연하다. 그는 선배나 동료를 붙잡고, 그 단어를 어떤 마음으로, 어떤 용도로 쓰는지 묻고 다녔다. ‘선입견 속에 고철 덩어리처럼 취급했던 딱딱한 표현’에 대해 저마다 온도 차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차별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쓰는 단어를 받아들이는데 그는 스스로의 편견과 싸워야 했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거리에 선 장애인 활동가들은 사회 불평등과 인간 소외에 대항하는 투쟁의 힘을 믿었다. 그들은 고난과 차별에 짓눌린 인간•비인간 이웃의 주변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를 괴롭히는 사회적 부조리에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저항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마이크를 잡고 동료를 향해 외쳤다. 그들은 투쟁의 성패와 무관하게 언제나 배제와 차별, 불평등에 굴하지 않고 저항할 것을 당부했다. 마치 인류 사가 전쟁사의 궤적을 따라 흘러가듯, 인간 권리의 역사는 활 동가의 투쟁의 역사에서 비롯된다는 신념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가 투쟁을 이해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나 역시 투쟁의 힘을 재확인했다. 저항하고 투쟁하지 않고 얻은 건 아무 것도 없다. 특히 여성으로서 일 하고, 교육 받고, 투표하는 권리는 모두 투쟁의 산물인 걸.
마침 ‘투쟁’이라는 단어의 울림을 바꿔버리는 사람을 그는 만났다. 박옥순 전장연 사무총장은 “투쟁입니다, 투쟁”이라고, ‘절박함을 더하지 않은 일상적 인사’로서 투쟁을 말했다. 저자가 듣기에 긴박하고 간절하다기보다, 타인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단어가 투쟁이었다. “그는 어쩜 아무렇지도 않게 저 중후한 표현을 저토록 흔쾌히 쓸 수 있는 걸까”, 저자의 감탄에 나도 뒷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투쟁! 그 단어가 다르게 다가왔다.
능력보다, 권력보다.. 함께 사는 삶의 가치
저자가 활동을 정리하고 박사과정에 진학할 무렵, 중증장애인 활동가 ‘규식이 형’(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 이규식)은 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공 부..· 너...너무 많이 하지 마. 사·사람이 멍청해지고 자기 잇속만 챙기게 돼."
‘규식이 형은 대학원으로 돌아가는 내가 더 똑똑해지는 게 아니라 둔감해지는 게 아닐까 진심으로 걱정했다. 평생 가난으로 고통받고 차별로 핍박받으며 살아온 중증장애인 활동가는 표준어로 이루어진 세상의 규칙으로 돌아간다는 동료를 보았을 때 몇년 전 내가 전국집회에서 느꼈던 이질감과 위태로움 같은 것을 느꼈을까. 과거의 내가 걱정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 규식이 형은 저상버스 도입을 20년간 외쳐서 도입 의무화를 이끌어낸 이다. 버스 문턱의 높이가 낮아질수록 세상의 문턱이 낮아지리라, 장애인 뿐 아니라 노약자 등 교통약자들이 턱 앞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오래 싸웠다. 온갖 저주와 욕설의 가시 같은 말들을 감내한 20년이다. 그런 이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저자는 “능력보다, 권력보다, 평범한 시민의 외침을, 함께 사는 삶의 가치를” 믿게 됐다. 그에게 전장연 활동은 누구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 승리는 커녕 매번 패배가 뻔한 싸움에 달려드는 이들 덕분에 세상이 바뀌었다. 자유와 권리를 외칠 뿐인데 “한 생에 끝낼 수 없을 정도로, 대를 이어 직업으로 삼아야 할 정도로 끝없이 펼쳐지는 싸움”이었다.
오늘도 패배하는 그들의 마음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4년에도 지하철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시위는 곧잘 저지되지만, 그들은 계속 이어간다. 장애인들의 시위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에 대해 그가 라디오에서 전한 답은 이렇다.
“네· 현재 장애인 이동권 운동은 시민 불복종의 형태입니다. 그 탓에 시민 여러분께서 많이 불편하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있는데요, 여러분의 인내 덕분에 이 사회가 여기까지 바뀔 수 있었습니다. 시민 여러분이 여기까지 참아주신 덕분에 한국 사회에, 서울 지하철역 엘리베이터가 91퍼센트 상당까지 설치되었고, 서울 시내 저상버스가 55퍼센트 상당 설치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장애인들끼리 정치인을 찾아가서 '엘리베이터, 저상버스 설치해주세요' 얘기하는 것만으로는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감하는 시민께서 함께 불편함을 호소하고 빨리 처리하라고 요구하는 순간부터… “
불편해서 짜증도 나고, 난감할 때도 있을텐데 그게 변화의 동력이 된다. 장애인 말보다 다수의 일반 시민들의 불만이 더 크게 들리기 때문이다. 나도 다리를 다쳐 목발 짚고 다닐 때, 누군가의 투쟁 덕분에 쉽게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탔다. 비록 저상버스는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우리는 모두 교통약자가 될 수 있고, 상태 여부에 상관 없이 이동할 권리가 있다. 우리나라 거리에도 장애인들이 더 많이 보여야 마땅하다.
작년 가을 읽다 말았는데, 마지막 날 마저 읽기를 잘했다. 나는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라는 책의 저자 사인에 ‘소통하는 이가 변화를 만듭니다’라고 쓰곤 했는데, 이 책은 바로 그런 기록이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위해 ‘투쟁입니다, 투쟁’을 말하는지 이제 조금 알겠다. 막연히 혹은 무심코 지나가는 대신, 펄떡거리는 심장을 가진 이들의 풍경이 다시 그려진다. 당장 이기지 못해도 당연한 권리를 위해 오늘도 패배하는 이들의 마음이 다가온다. 이기고 성공하는 것에만 매달려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함께 하면 희망이라는 길에서 만날테니, 가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