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호 Jan 11. 2024

넌 누구 다리야?

Day 1



 내가 등록한 요가원은 필라테스, 줌바, 요가 등 다양한 종류의 운동을 매 시간별로 골고루 배치하여 운영하는 형식이다. 첫날 갈 수 있는 타임 중 초보자를 위한 수업에는 필라테스 만이 있었기에 나는 첫 수업을 요가가 아닌 필라테스로 시작을 했다.


내심, ‘본격적인 기구를 사용한 필라테스 면 어쩌지?(나는 기구 공포증 비슷한 게 있다) 첫날부터 빡센걸로 시키면 어떡하지?’ 따위의 걱정을 했지만 생각이 많으면 엉덩이가 무거워지는 법. 이 걱정들로 미루고 미룬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슬금슬금 걱정에 몸이 잠식당하기 전에 ‘아무 생각 없이 가자. 가서 기계처럼 따라 하다 오자.’ 며 마음먹고는 집을 나섰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요가원 문을 열었다. 때마침 입구에서 아로마 향초에 불을 붙이려던 원장님과 마주쳤고 원장님은 반갑게 웃으며 나를 맞이해 주셨다.

“안녕하세요! 어제 문자주신 분이죠? ^^”

”네! 안녕하세요!“


처음 뵌 원장 선생님은 작고 아담한 체구지만 한눈에 보아도 단단한 바디를 가지고 계셨고

무엇보다도 목을 많이 쓰는 직업이라 그런지 목소리가 꽤나 허스키하셨는데 괜히 그 마저도 카리스마 있고 멋있어 보였다.


“요가는 배워 보신 적 있으세요?”

“아... 네...... 근데 찔끔 배우다 오래 쉬기를 반복해서 거의 초보나 다름없어요...”

“(스케줄 표를 꺼내며) 이렇게 표시한 부분들이 초보분들도 할 수 있는 수업들 이예요. 줌바도 있고 편하실 때 오시면 되고 하루 두 번도 오실 수 있어요. ^^”

“네네!! 감사합니다.”






 간단히 스케줄과 커리큘럼을 안내받고 요가원 내부로 들어가니 일곱 여덟 분 정도가 앉아 계셨다. 아, 어떤 분은 누워도 계셨다. 누워 계신 분은 매트 위에서 “으어어이고야.”등의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미리 풀고 계셨는데 왠지 모르게 고수의 포스가 풍겼다.


첫날이라 원장님께서 직접 매트와 간단한 필라테스 기구 몇 가지를 세팅해 주셨고 사물함에 겉옷을 벗고 돌아와 매트에 앉았다.


‘후, 긴장되는 군.’


수업까지 5분여 정도가 남은 상황에서 매트에만 앉아 있자니 뭔가 좀 뻘쭘했다.

기구를 만지작거리다 곁눈질로 다른 회원님들을 보았는데 신기하게 사람들 머리 위에 게임 캐릭터의 능력치처럼 어떤 레벨이나 게이지가 보이는 듯했다.

‘흠. 아까 누워 계신 저분은 lv.8, 살짝 나른하신 저분은 lv.5... 와 엄청 유연하신 저분은 lv.9 정도 되시려나?’


나 빼고 다 고수들 같았다.






 이윽고 시간이 흘렀고 드디어 나의 첫 요가원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 여기서 노파심에 미리 이야기하는데 나의 요가 기록은 요가 동작에 대한 묘사라던가 방법에 관한 어떤 전문적인 설명 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물론 초보라 언급하였기에 애당초 기대도 없었겠지만 만약 이러한 것들을 바라고 읽으신다면 미리 사과를 드리고 싶다.


이 기록은 아마 요가라는 한 시간여의 활동 동안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고뇌와 한계, 갈등, 자책, 구차함, 블랙아웃 등으로 범벅될 것이다. 아마 자주 문맥이 끊길 것이고 종종 급하게 마무리될 것이며 뜬금없는 곳에서 깨달음 같은 걸 얻었다는 듯 스스로 환희에 찬 엉뚱한 말을 늘어놓을지도 모른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첫 동작은 폼롤러를 이용한 스트레칭이었다.


자리에 앉아 팔을 쭉 펴고 롤러를 들어 좌, 우로 왔다 갔다 하며 팔과 옆구리 스트레칭을 하는 동작이었다.

‘흠. 간단하구먼.’ 하고 따라 하는데 한 4회 정도 반복했을까? 갑자기 내 팔이 내 의지와 다르게 후들거린다.


응? 벌써 이런다고?’

표현은 않았지만


볍씨만큼 하찮은 몸뚱어리에 속으로 헛웃음이 났다.



 그 밖의 다른 동작들에서도 내 몸은 내 의지와는 다르게 요동쳤다.

‘참 나. 참. 헛. 어이가 없어서. 참내. 하.’ 따위의 소리를 속으로 삼키랴, 처음 하는 동작들을 행여나 놓칠까 여기저기 바삐 따라가려는 불안한 내 동공까지...


『엉망진창 왕 초보 요가 대 작전!』 같은 만화 제목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나의 첫 수업은 우당탕탕 그 자체였다. 사실 이 글의 제목을 이렇게 지을까도 고민했지만 난 그렇게 요란한 사람이 아니다. (아마도)




 중반부에 접어들었을까, 드디어 링을 이용한 다리 운동의 순서가 되었다.

우리 집엔 이 링과 비슷하게 생긴 닌텐도 사의 링 피트 기구가 있다. 게임을 하며 피트니스 운동도 동시에 하는 건데 딸린 기구로 링이 들어있던 것. 당최 이 링으로 밖에선 어떤 운동을 하는 건가 궁금했는데 드디어 오늘 알았다.

이 링 하나로 엄청나게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단 걸.


팔로 구부리는 데에만 사용될 줄 알았던 링이었는데 어라? 비스듬히 누워 두 발을 링 사이에 끼워 넣은 채 다리를 쭉 펴서 아래위로 왕복 운동을 한다.


‘오. 나도 해볼까?’ 하고 호기롭게 다리를 들어 올렸는데 얼라료? 왼쪽 다리가 말을 안 듣는다.


다리에 힘이 없으니 자꾸 발은 어긋나 링이 바닥에 떨어졌고 겨우 발에 끼워 운동을 하려고 하면 왼쪽 다리에 경련이라도 일어난 듯 탈탈탈 떨려 오는 거다. 일반적으로 버틸 때와 같이 사시나무 떨 듯 떨리는 게 아니라 진짜 무슨 일정한 속도로 세팅된 모터를 달아 놓은 마냥 탈탈거리며 떨리는 것.

부끄럽지만 (이 표현까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세탁기 탈수 시에 돌아가는 탈탈거림이라 생각하면 비슷하려나. 흑.


난생처음 보는 내 다리의 모습에 너무 낯설어 피하고 싶은 마음과 측은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너 다리 이 새키 왜 이렇게 낯설게 구는 거지? 왜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것처럼 구냐? 왜.’


탈탈 떨리는 다리를 보며 속으로 온갖 질문을 하며 다그치다 이내 측은해졌다.

‘내가 얼마나 너를 쓰지 않았으면 네가 이렇게 힘들어하겠냐? 미안하다’


그래. 다 내 탓이다. 그동안 운동이랍시고 뒷짐 지고 뒷산 산책이나 할 줄 알았지 어디 제대로 된 운동을 근래 네가 했던 적이 있었던가.

아래위로 들었다 내렸다 하는 왕복 운동은 언감생심, 나는 탈탈거리는 다리 덕분에 발 사이에 링을 끼워 버티는 것도 역부족이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하자. 다음엔 더 잘 되겠지.’ 


일단 다리를 들어 올려 탈탈 떨리든지 말든지 버티는 데에만 우선 집중을 하고 첫날부터 너무 욕심내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런 걸로 멘탈 이야기를 하자니 너무 유약한 인간으로 보일까 봐 쓰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 내심 멘탈이 좀 나갔었다.

나와는 다르게 유려하게 움직이는 다른 회원님들, 적당한 팔다리 힘으로 버티는 그분들을 보며 많이 기가 죽었던 것.


더군다나 한 번도 본 적 없던(아니다. 한 6년 전 문화센터 요가 교실에서 사실 몇 번 겪었던 것도 같다. 잊고 지냈을 뿐.) 다리의 탈수기 증상 때문에 내 몸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파악하고 나니 조금 충격이었나 보다.


‘하... 그래도 뭐 별 수 있나. 해야지.’


그렇다. 해야 한다. 할 거다. 왜냐면

난 이미 세 달 치 등록비를 결제했기 때문이다.


끝임 없는 자신과의 대화 끝에 마지막 동작까지 마무리 짓고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드디어... 끝났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첫 수업이 끝이 났고 매트를 들고 정리를 하러 일어나는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후들거리는 몸을 이끌고 매트를 제자리에 놓으려는 데 원장님께서 도와주며 말을 붙이셨다.


“어우. 잘하시는데요? 너무 잘하셔서 놀랐어요.”

“에, 에?? 아니어요!!”

“처음이신 데도 유연한 편 이 시고요. 근력은 차츰 좋아질 거예요.”

“앗, 네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의 탈수기 다리를 못 보셨나요? 아니면 저를 춤추게 하시려고 칭찬하는 건가요.


훅 들어온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스스로는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내일 또 와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100일, 요가를 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