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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호 Jan 12. 2024

너무 깊이 생각 말고 일단 하자

Day 2


2일 차에 접어들었다.

전날 필라테스의 여파로 사실 조금 쫄아 있었는데 원장님께서 커리큘럼 소개 시에 안내해 준, 가장 초보자에게 적합한 날이 오늘 하는 ‘힐링 요가’이기에 그래도 마음의 부담감을 조금은 덜고 요가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초보자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그래 오늘은 무난히 잘할 수 있을 거야! 적어도 어제처럼 다리가 탈수기처럼 떨리는 그런 경험은 오늘 하지 않아도 될 테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요가원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사람이 제일 많은 시간대를 찾았나 보다. 많은 분들이 이미 뒷자리부터 매트를 선점하고 계셨다. 맨 앞자리는 하기 싫었는데 본의 아니게 또 선생님 바로 대각선 뒤편이다. 비루한 나의 몸짓을 맨 앞에서 뽐내야 하다니 살짝 부끄러웠지만 어차피 못 할 거 다 아는데 뭘 의식하냐며 괜히 스스로를 다그쳐본다.


‘끝까지 열심히 따라 하기나 하자! 와. 근데 오늘 사람 진짜 많긴 많다. 자리도 꽉 찼어.’


어제처럼 조금은 어색한 몸짓으로 주위를 두리번대다 다른 회원분들이 스트레칭 등을 하며 몸을 풀고 계시기에 나도 괜히 이렇게 저렇게 소심한 스트레칭을 해보았다. 수업이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찰나에 누군가 헉헉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온다. 많이 늦으셨는데 자리가 있으려나? 하고 돌아봤는데 20대 남자분이다. 꽉 찬 공간 때문인지 아니면 여자뿐인 공간에 흠칫 놀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분의 흔들리는 동공을 보았다. 원장님께서 자신의 옆자리에 공간을 마련해 주셨고 그분은 맨 앞에서 요가를 하게 되었다. 비슷한 결의 동지(?)가 온 것 같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힐링 요가 수업이 시작되었다. 확실히 어제 필라테스 수업 보단 가벼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김없이, 또 나의 왼쪽 다리는 춤추기 시작했다. 어제와 비슷한 탈수 강도로 탈탈 탈탈 혼자 떨고 있었다.

‘제기랄. 주말에 등산 한 번 땡겨야겠군.’


이 모든 게 다리의 근력이 부족한 탓인 것 같았다. 직각으로 앉아 다리를 쭉 펴고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데 전굴 자세라고 하나? 앞으로 등허리를 숙이며 배를 허벅지에 갖다 대려고 하면 어김없이 왼쪽 다리가 탈수를 시작한다. 탈. 탈. 좀 더 숙이려 하면 탈수 강도가 더 세진다. 탈탈탈. 전굴 자세뿐만 아니라 직각으로 앉은 자세에서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손으로 발을 잡고 옆으로 벌리는 자세에서도 어김없이 탈수기가 작동했다. 탈탈. 


이게 끝이 아니다. 앉은 자세에서 등허리를 비스듬히 뒤로 하고 두 다리를 붙여 위로 들어 올리면 또 탈탈…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선생님은 그 자세에서 다리를 쭉 펴라고 하시는데 내 무릎은 마치 오래된 나사로 조여 놓은 듯 더 이상 펴지지 않는 거다. 이게 펴지는 것이 가능한 기관인가? 싶을 정도로 굳은 느낌이었다. 한 번 제대로 펴보지도 못했는데 구부정한 상태에서 다리가 이리도 떨리는 걸 보니 속으로 살짝의 자괴감과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올라왔다.


‘몸 상태 진짜 말도 안 되네.

그래도 언제 까지고 이러겠어? 하다 보면 차차 나아지겠지.

너무 깊이 생각 말고 일단 하자.’


순간 조금 스스로에게 놀랐다. 나는 원래가 되게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신중한 탓도 있지만 한 가지 주제에 골몰하면 생각의 가지를 엄청나게 뻗어가 방대한 생각으로 번지거나, 우울할 땐 깊이 파고들어 답을 찾을 때까지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성격인데 ‘생각 그만하고 일단 하자.’라니.

새삼 스스로에게 놀랐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모두가 다 같이 움직이는 이 공간의 플로우를 타다 보면 절대 몸을 멈출 수가 없다. 그냥 해야 하는 거다. 급류에 몸을 실은 사람처럼.


그러나 나는 알지 못했다.

요가를 하며 생각을 멈춘다는 건 플로우를 따라가기 위함 이외에도 어려운 동작에서 오는 몸의 고통 때문에 자연스레 모든 잡념이 멈추는 의미이기도 한단 걸…


그런 의미에서 힐링 요가인가? (당연히 아닐 테지.)


아무튼,

오늘도 했다.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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