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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호 Apr 16. 2024

생존 요가

Day 34

길도 미끄럽고 추운 날이다. 어제 하루동안 내린 눈이 살얼음이 되어 요가원으로 향하는 동안에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했다.

날이 날이라 그런가 회원님들이 생각보다 많이 안 계셨다.


사람이 적은 날은 적은 날 대로 좋은 것 같다. 많은 날은 다 같이 파이팅이 넘치는 분위기지만 적은 날은 조용히 집중할 수 있어 좋고. 뭐든 현상에 관해 장점을 찾자면 얼마든지 보일 테지. 단점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많은 날은 요가원 내부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적은 날은 너무 소수인원이라 강사님의 눈에 잘 띄니 살짝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이왕이면 장점을 생각하는 게 좋다. 마음에도 신체에도- 그래야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기분이 들고 이 긍정감은 상황에 대해 견딜 힘을 준다. 잘 견디어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닥친 문제도 장점을 보며 견디어 낸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겠지.


가족에게 문제가 생겼다. 살면서 송사에 휘말릴 일은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잘은 없을 일이라 생각했지만 그게 예외도 있는 건지 송사에 휘말려 많은 돈을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변호사의 말을 믿고 패소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가족도 몰랐던 잘못이 드러났다. 1년 이상 지속되던 소송에 지치기도 하고, 판결은 판결이니 받아들이며 상대에게 결과대로 해주려 했으나 사람을 잘 못 걸린 거다. 상대는 판결 이상의 돈을 요구하고 협박까지 서슴지 않고 있어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 변호사 사무소 여러 군데 상담을 해도 상대가 요구하는 건 억지에 가까우며 그렇게까지 들어줄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상대하기 쉽지 않은 상대를 만났다고… 한마디로 진짜 빌런을 만난 거다.


법대로 하자고 달려든 상대는 법대로 하려고 하니 떼굴떼굴 구르며 이제 와서 악다구니를 쓴다. 빌런 아카데미라도 있는 건지, 인터넷에 비슷한 사례에 대해 찾아보면 우리에게 붙은 빌런이 자가 복제하여 여기저기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흡사한 인간 군상들이 많이 보인다.

요 근래 아침에 눈을 뜨면 이러한 이유로 기분이 썩 좋진 않다.


그러니 또 요가를 간다.


비틀고 쥐어짜고 숙이고 버티며 몸에 열을 내면 내면에 가지고 있던 문제들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지는 기분도 든다. 물론 뚜렷한 해결책이 떠오른다거나 상황이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잘 견디어 나갈 힘을 조금씩 얻어가는 기분이 든다.


오늘은 아쉬탕가.

늘 하듯 집중하여 온전히 내 몸을 생각하는 긍정적인 시간으로 만들고 싶었으나 이상하게 집중이 안된다. 자꾸 잡생각이 떠오르고 가족의 일이 떠오른다. 그러다 갑자기 화가 난다. ‘화가 나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다가 이 화가 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개새끼…'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집중이 안되던 몸과 마음이 갑자기 활활 타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며 몸에 힘이 도는 느낌이 든다.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고 몸의 활동 범위가 더 넓어졌다.


움츠려든 감정을 토해내니 몸도 활짝 열리는 기분.


그러다 이내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어떻게 되든지 간에 상황은 벌어졌고 다시 토대를 다지며 일어나면 돼. 그 토대가 약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일어난 거겠지. 어쩌면 하늘이 주신 기회일 수도 있다. 지난 잘못은 돌아보고 정면으로 응시하여 다시 우리 손으로 토대를 다져 제대로 일어나 보라는 그런 다신 없을 기회.’ 하고 생각하니 머리 위로 커다란 꽃나무가 피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긍정이다. 긍정의 단어가 자연스레 피어올랐고 몸과 마음은 더 이상 허둥대거나 움츠러들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생존본능이려나.


요가 덕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요가를 해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내겐 이런 행위가 상당히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한데 요가를 이렇게 화가 난다거나 빡친 상태에서 쏟아내듯 해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몰라도 괜찮을 것 같다. 아직 나는 요가 햇병아리니까.


언젠가 알게 되는 날이 오겠지.

스스로 깨닫는 날이 올 때까지 천천히 차분하게 요가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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