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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호 May 03. 2024

울다가 빡쳐서 하러 간 요가

Day 42

명절이 지났다. 4일 정도의 연휴기간 동안 하루정도만 혼자 홈요가를 했고 나머지는 먹고 자고가 전부였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명절 교통 체증으로 차에서 몸살을 해댔던 통에 너무 피로가 쌓여버렸다. 게다가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었던 명절. 나의 본가는 살며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송사에 휘말려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든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판결이 났고 합의에 따른 수습이 남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족들 간의 스트레스 또한 상당했고 나 또한 그와 관련한 여러 이유로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가족 역학. 가족 관계성 안에서 일어난 일들과 그 역학은 아마 나의 본가뿐만 아니라 모든, 아니 많은 수의 가족들이 남모르게 가지고 있을 일들일 거다. 그 역학 안에서 관련된 고통스러운 외부 이벤트들이 일어나면 정말이지 감정적, 신체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것들로 다가오는 것 같다. 내가 그 당사자가 될 줄은 살면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어느샌가 그런 당사자가 되어 있었고 나름의 고된 마음 앓이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보니 삶이란 건 느닷없이 옆구리를 건드는 이벤트들의 발생과 수습, 그리고 어떤 선택들의 연속인 건가 싶다.


일상사에 잊으며 살땐 괜찮다가 명절에 본가를 다녀오니 괜찮지 않은 자신을 발견했고 결국 나는 명절부터 하루 이틀을 불면증에 시달리다 연휴가 끝난 아침, 세상 설움은 다 가진 사람처럼 울어버렸다.

'요가 가야 되는데… 지금은 울고 싶다. 먼저 울고만 싶다. 안 그러면 요가할 때 눈물이 터져버릴지도 몰라.'

이 기분으로 요가를 가서 나를 마주하면 난데없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감정을 추스르고 가자는 생각에 울기 시작했는데 이놈의 울음은 시작하자마자 숨겨뒀던 설움을 모조리 긁어모아 뿌려대기 시작했다.


'하늘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준다고 하셨다. 혹은 내가 뿌린 만큼 거두는 게 세상 이치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뿌린 건 감당할 각오를 해야 하는 일들이었고, 지금의 시련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 것인가. 하지만 당장은 너무 마음이 괴롭다. 사람과 상황이 나를 힘들게 하는 건지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건지 이제는 도저히 모르겠다. 나만 이렇게 괴로운 건 아니겠지만 지금 당장은 내가 너무 가엾고 괴롭다.'며 이불속에서 꺼이꺼이 울어재끼기 시작했다.


분명 이 감정 속에는 분노와 슬픔이 범벅되어 공존해 있다. 자책도 있을 것이고 후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슬러 올라갔던 내가 감당해야 할 선택은 분명 내 안에서 순수하게 올라왔던 것들이다. 그러니 어리석을지라도 난 내 편이 되어줘야만 했다. 눈물을 닦고 부랴부랴 요가복을 갈아입고 요가원으로 달려갔다. 정확히는 세상에 화가 나는 마음을 요가로 풀러 가고 싶었다.


아쉬탕가 시간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빨리 내 편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요가였다. 요가시간이 마침 지금 내게 가까이 와 있다. 감사히도.


자다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와 팅팅부은 눈을 하고 요가원 거울 앞에 섰다. 역대급으로 추레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이 시간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더불어 체력적으로도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간단한 동작을 하는 데에도 머리가 핑핑 돌았다. 살짝의 기립성 저혈압과 함께했지만 평소보다 조금 더 새로운 동작을 일부러 시도했다. 힘들고 아프지만 새로운 것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그 와중에도 무언가 성장했다는 느낌을 가질지도 모른다며,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고는 가장 어려운 선 자세를 과감히 숙련자 버전으로 도전을 했다. 흔들리고 불안정하지만 끝까지 해냈고 마지막 동작인 사바아사나까지 마치니 내 몸은 땀범벅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큰 숨을 내쉬었다.

'그럼에도. 다 했다.'

맞다. 그럼에도 다 했다.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될지, 내 마음이, 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지금 닥쳐있는 요가라는 상황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마음이 정리가 되었고 어리석음에 대한 두려움과 그에 따른 집착들은 내려놓기로 했다. 나는 상황에 대한 불가피하고 순수한 선택 앞에서도 내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두려움을 사들여 삶을 계속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요가를 하며 엉성한 내 몸뚱이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런 어리석음에 대한 두려움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랬더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흘러가는 것이다.

그냥 겪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어리석어도 괜찮고 못나도 괜찮다.

내 순수한 마음 하나 믿어주자.


속으로 가만히 되뇌며 요가원을 나왔다. 이 정도면 요가에게 신세 진 기분이 든다.


요가를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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