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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Sep 04. 2024

승마를 못 가르친 능력 없는 나의 부모님

20. 나의 급을 정하는 고용주

내 의사와 상관없이 사모님은 훌륭한 가문의 자제가 있다며 나와 맺어줄 생각으로 들떠했다. 혼자서 타이밍을 엿보며 집안의 배경을 시도 때도 없이 읊어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내 앞에서 다른 처자들을 거론하며 나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갖다 붙이려 해도 어느 정도는 격이 맞아야지..."


일하는 동안 수도 없이 들은 사모님 본인과 가족 이야기는 나그들과 본질적으로 '급'이 다르다는 거였다.


사장님은 고위 공무원이었다. 클래식을 좋아해 오디오에 많은 투자를 했고 집에는 최고급 오디오 시스템이 있었다. 그러다 대기업 임원직을 제안받고 공무원을 그만뒀다. 경제사절단으로 해외 출장도 다녀왔다. 어떤 이유로 이민을 하게 됐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대기업에서 임원을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미대를 졸업한 사모님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사람을 품을 줄 다. 입시 학원을 운영했는데 그림 실력과 가르치는 실력이 월등해 수많은 학생들을 입시에 성공시켰다. 더러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달라고 와서 무릎을 꿇고 사정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현대 그룹에 다니는 한국에 있는 동생은 지위가 꽤 높다.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더니 들어가기 그 어려운 현대에 입사를 했고 좋은 직책을 맡고 있다. 현대 어디인지 얼마큼 높은 직책인지는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다.


동생 이야기를 귀에 닳도록 듣고 어느 날 내가 물었다.


"현대 어디에 계세요? 저도 현대 다녀서 아는 분들이 꽤 있는데..."
"블리야가 어떻게 현대를 다녀!"
"저 2년 동안 현대에서 근무했어요. 같이 근무했던 분이 지금 이사고 제가 모셨던 무님은 부사장이세요."
"..........."


이후 사모님은 내 앞에서 동생 자랑을 하지 않았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사모님은 어릴 때부터 부족함 없이 살았다. 결혼해 세 딸을 뒀고 그중 큰 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큰 딸은 승마를 즐겼고 개인 소유의 '말'이 있었다. 그러면서 내 어릴 때 취미는 뭐였냐고 묻는다.


"아... 블리야 부모님은 능력이 없었구나!"


이민을 할 때 즈음 바르게 산 대가로 천운이 내려 큰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 캐나다에 와서 처음 빅토리아에 자리를 잡았고 할리우드 배우들이나 살만한 대저택에 살았다.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가게부터 고급 옷가게, 빨래방을 거쳐 현재의 메이플릿지에 비즈니스를 차렸다.


어릴 때부터 승마를 하며 자란 큰 딸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유명한 법조계 가문으로 시집을 갔다. 그래서 이민할 때 큰 딸을 데려오지 못했다.


얘기를 듣다 큰 딸이 나와 동갑인 걸 알게 되고
"어? 저랑 동갑이네요?"
"걔는 빠른 이야!"
"어? 저도 빠른 이예요!"
"......"


사모님은 '나이' 조차도 내가 큰 딸과 동급이 되는 걸 싫어했다. 유서 깊은 엄청난 집안이라던 법조계 사돈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 번씩 상식밖의 사람들이라고 했다. 큰 딸은 나중에 아이와 함께 캐나다로  스시집에서 일을 며 영주권을 받았고 현재는 치과에서 리셉셔니스트로 근무하고 있다.


둘째 딸은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했다. 캐나다에 오고 나서 누구보다 빠르게 영어를 배웠고 통역사가 되었다. 사모님은 '집안에 공부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 말의 의도를 알고 있는 나는 당하고만 있기가 싫었다.


"저희 오빠도 그걸 알아서 그랬나 봐요. 공부를 참 많이 했어요. 지금도 공부를 해요."
"오빠가 공부 좀 했나 보지?"
"네! 동경대에 국비유학생으로 갔다 와서 박사학위 받고 국립대에서 학생들 가르쳐요. 지금 수능 문제 출제기간이라 연락이 안 돼요. 오빠가 수능 출제위원을 오랫동안 하고 있거든요."
"......."





처음 은퇴를 하기 위해 가게를 믿고 맡길 사람을 찾는다며 나와 면접을 했던 사장님과 사모님은 결국 치과에서 일하는 큰 딸을 가게로 데려왔다. 사모님은 능력 없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승마도 배우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나는 큰 딸과는 다른 급이라며 선을 그었다. 마치 콩쥐 팥쥐를 대하는 듯했다.


큰 딸은 나와 비슷한 키에 조금 더 마른 체격을 갖고 있었지만 운동을 좋아해 건강해 보이고 에너지가 넘쳤다. 첫인상이 까칠하고 말투에서 사모님과 닮은 부분이 보여 살짝 경계를 했던 딸은 같이 일을 보니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다. 움직임도 빨라서 사모님과 할 때 혼자 해야 했던 일들을 나눠서 하니 일의 강도가 달랐다.


통하는 부분도 많았다. 조금 친해지기 시작하자 가게에 오게 된 과정을 알려줬다. 치과 일을 정말 좋아하는 큰 딸은 부모님의 설득을 여러 차례 막아냈다. 하지만 집을 살 수 있도록 큰돈을 융통해 주고 가게도 물려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후 치과 일을 토요일 하루로 줄이고 가게에 오게 됐다.


음식을 먹는 방법이나 좋아하는 음식에도 공통적인 게 많았던 우리는 사모님의 뜻과 상관없이 '비밀스럽게' 종종 밖에서 만나 밥을 먹고 커피도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내가 먼저 하지 못하는 사장님과 사모님의 일하는 방식 그리고 성격적인 부분들을 늘 먼저 얘기를 꺼냈다. 부모 자식의 관계로만 지내다 직장에서 마주하는 부모에게 느끼는 점들도 거침없이 얘기했다.


내가 갖고 있는 감정이나 생각들을 100% 솔직하게 다 말할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얘기할 수 있었다. 가능한 한 빨리 가게를 넘겨받으라는 조언이었다.









《랜딩 1년 후, 캐나다 공무원에 랜딩하다》는 제가 영주권을 받고 공무원으로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앞으로 15편 정도의 이야기가 더 나올 듯합니다.


브런치북 발간이 최대 30화, 최소 10화 여야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따라서 20화로 <파트 1>마무리하려고 하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남은 이야기는 지금처럼 매주 <수요일>,

《랜딩 1년 후, 캐나다 공무원에 랜딩하다 2》에서 이어가겠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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