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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Oct 23. 2024

오늘부로 당신은 영주권자입니다

27. 랜딩 하던 날, 나는 탈영을 했다

2018년 1월 10일, 연방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이메일 제목은,

Ready for Visa


일을 시작하고 22개월 만에 영주권 승인이 났다.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그것은 가게로부터 곧 벗어날 수 있다는 해방감, 2년여의 시간이 마침내 결실을 이뤄냈다는 성취감, 둥지를 내리기 위한 터가 마련되었다는 안도감, 그리고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는 설렘과 책임감이었.


영주권 승인을 알려온 Reay for Visa 이메일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사진과 여권 사본을 연방에 보내는 일이다.  근처 사진관에서 이민부가이드라인에 따라 사진사가 요청하는 대로 표정을 바꿔가며 사진을 찍었다. 눈을 크게 떠라. 미소 짓지 말라. 입을 다물어라. 눈썹이 가려지지 않고 귀가 보이도록 머리를 귀 뒤로 넘겨라. 

잠시 후 받은 사진은 할 말을 잃게 했다. 공격적으로 크게 뜬 눈에 웃음기 없이 힘주어 다문 입이 결전을 앞둔 사람처럼 비장해 보였다. 보정이 빠진 날 것 그대로의 사진은 암울하기까지 했다. 피부가 그대로 드러나고 긴 앞 머리를 열어젖혀 귀 뒤로 야무지게 꽂아 넘긴 사진 속  모습은 국적을 단정할 수 없는 낯선 여인 같아 보였다.


보정을 하면 안 되는 캐나다 영주권 사진 가이드라인


이 사진이 담긴 영주권 카드를 5년간 갖고 다닐 생각에 울상이 된 채 사진관의 날짜 스탬프가 찍힌 사진 두 장과 여권 사본을 연방 이민부에 우편으로 보냈다. 랜딩 페이퍼를 받을 집 주소가 적힌 우편 봉투도 동봉했다.


*랜딩(landing): 착륙을 뜻하는 단어로 이민에서 랜딩이라 할 경우 영구 정착의 의미가 있다.
*랜딩 페이퍼(landing paper): 영주권자로 캐나다에 랜딩 했다는 걸 증명하는 기다란 한 장짜리 법적 서류로 캐나다국경검문소(Canada Border Service Agency, CBSA)의 도장이 찍혀야 완성된다.


2주가 조금 안돼 기다리던 랜딩 페이퍼가 도착했다.  개인정보들로 채워진 똑같은 랜딩 페어퍼 두 장 중 국경검문소에 제출해야 하는 한 장에는 국적불명 여성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랜딩을 하기 위해서는 캐나다밖으로 나갔다 재입국을 해야 한다. 나는 외국을 나가지 않고 '플래그폴(flagpole)'을 하기로 했다.

랜딩을 앞두고 일하는 이주공사 대표로부터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들었다. 만약을 대비해 준비해 가면 좋을 고용 관련 서류들과 낮보다는 밤이 인터뷰에 수월하다는 팁도 얻었다. 그 무렵, 랜딩 하러 국경에 갔다가 추방당한 한국인의 이야기가 한인 커뮤니티에 뜨거운 화제였다. 얘기를 듣고 난  랜딩을 하려니 긴장이 되었다.


플래그폴(flagpole): 국경에 영토 표시를 하는 국기가 꽂혀있는 기둥. 비자를 받기 위해 미국 검문소를 거친 후 입국은 하지 않고 플래그폴만 돌아 캐나다로 다시 들어오는 과정을 뜻하기도 한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러 랜딩 페이퍼와 여권, 비자, 고용 관련 서류를 챙겨 밤 10시경 퍼시픽 하이웨이(Pacific Highway) 국경검문소로 했다. 1년짜리 LMIA 비자는 그 사이 만료가 되었지만 컬리지 졸업 후 받은 PGWP 기간이 아직 여유 있게 남아있던 나는, 비자 연장을 따로 하지 않고 랜딩은 PGWP 오픈 비자로 하기로 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핸들을 꺾는 손이 덜덜 떨렸다. 이게 뭐라고 이리 긴장이 되는지 가슴까지 콩닥거렸다.


국경에 이르러 서서히 미국을 향해가며 맞은편 캐나다 국경사무소를 바라봤다. 이제 미국 땅을 밟고 돌아와 저곳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도장을 받기만 하면 된다. 깊은숨을 몰아쉬고 차를 서서히 움직여 미국 국경서비스 지역으로 들어갔다. 검문소에 플래그폴링(flagpoling)하러 왔다는 걸 알리고 안내받은 대로 차를 주차한 후 미국 국경사무소로 들어갔다. 밤에 와서 그런지 한산했다.


잠시 후 플래그을 따라 어떻게 돌아나가면 되는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다.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차를 몰아 다시 캐나다로 진입했다. 이번엔 캐나다 검문소 직원이 어떻게 왔냐고 묻는다. 랜딩 중이라는 말에 국경사무소로 들어가라는 안내를 받고 천천히 차를 움직이는데 건물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분명 검문소 가까이 사무소가 있을 텐데. 내 시야에 기다랗고 큰 트럭한대가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아마도 저 트럭 뒤로 보이는 불빛이 아까 봤던 사무실일 것이다.


그렇게 트럭을 지나치는데 사무실로 보였던 불빛이 사라졌다. 곧 자욱한 밤안개에 가려진 마을이 나온다. 어둠 속에 보이는 마을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어? 아까 지나온 마을 같은데.. 등에서 불쑥 식은땀이 솟아올랐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급히 차를 세우고 GPS를 찍었다. 큰일 났다. 반드시 거쳐야 할 국경의 보안 지역을 벗어났다. 군대로 보면 탈영이나 마찬가지다.


곧바로 차를 돌려 다시 국경으로 향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1분 1초가 지날수록 죄는 커진다. 미국 검문소에 이르러 상황 설명을 했다. 그 사람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무단이탈한 장병이 자진귀가해왔다고 알리는 것이다. 차량정보도 보고한다. 손에서도 땀이 나기 시작했다. 안내는 지시로 바뀌었다. 지시를 받고 다시 미국 국경사무소로 갔다. 아까의 친절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모두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탈영 장병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눈엔 하나같이 레이저가 착장 되어 있다. 암흑이 내린 그 공간에 날카로운 붉은 불빛만이 표적이 된 나를 겨냥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사고를 쳤구나. 그것도 대형사고. 나를 노려보는 매서운 눈총에 자비는 없었다. 일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밑바닥에 쌓여있던 설움이 용암처럼 꿈틀대기 시작했다. 눈물이 꾸역꾸역 차 올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마치 선고를 앞둔 수처럼 나는 판결을 기다릴 뿐이었다.


미국 국경의 보안요원이 검문소를 비롯해 캐나다 국경으로 연락을 했고 전화가 여러 번 오갔다. 그렇게 덩그러니 혼자 앉아있는 동안 추방당한 한국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쩌면 내가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2년간의 고생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도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울면 안 된다. 이미 벌어진 일로 내 발등을 찍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에 울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구걸할 상황도 아니었. 상황을 받아들이고 울지 않으려 애쓸수록 눈물은 콧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두 시간이 다 되어 그 사람들은 나를 보내줬다. 끝까지 무섭고 차가운 말투를 유지하며 캐나다 검문소에서 직원을 만나라고만 할 뿐이었다. 누구 한 명이라도 "그럴 수도 있어."라고 말해주기를 바랐지만 그건 나의 희망일 뿐이었다.


'내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건가... 이제 한국으로 가는 건가?'


차에서 맺혀있던 눈물을 찍어내고 막힌 코를 풀어낸 후 서둘러 플래그폴을 돌아 다시 캐나다로 들어왔다. 차량번호를 본 검문소 직원이 기다렸다는 듯 내 차를 세웠다. 더 이상 캐나다인도 친절하지 않다. 이곳 직원도 전화를 해 이탈자가 곧 국경사무소로 들어간다는 걸 알렸다. 냉정한 말투로 사무소로 가라는 말을 남긴 채 그 사람은 길을 내어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인가. 다시 돌아와 보니 트럭이 사라지고 없다. 그 큰 트럭이 국경사무소 건물과 진입로를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억울했다. 사무소 들어서자 여러 명의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본. 시간이 이미 자정이 넘어 사무소 내부엔 직원들을 제외하고 내가 유일하다. 모두의 시선이 나를 따라 움직인다. 랜딩이 수월하다고 밤 시간에 왔는데 집중을 한 몸에 받는 상황이 되었다.


"너야?"

"네가 무단으로 보안지역을 벗어난 애야?"

"네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아?"


모두들 한 마디씩 거든다. 매섭게 쏘아보는 눈은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감춰지지 않는 붉게 물든 눈과 코맹맹이 소리로 상황 설명을 지만 어느 누구도 가엽게 봐주지는 않는다. 안에 있던 직원들까지 몰려나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자기들끼리 무언가를 상의한다. 모니터를 보는 것으로 보아 나의 영주권 신청서와 출입국 기록 등 보는 듯했다. 


한참 후 심사관이 불러 카운터로 갔다. 웃음기 없는 얼굴에 금방이라도 서리가 내릴 듯한 차디찬 목소리로 질문들이 이어졌다. 팔짱을 낀 직원들이 심사관을 에워싸고 서있다. 나에게 문제가 될만한 게 없는지 모두가 인터뷰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30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 후 심사관이 눈을 추켜올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최종진술을 하듯 어떤 의도도 없었고 이건 우연히 일어난 해프닝이었음을 다시 한번 명확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안지역을 벗어난 건 있을 수 없는 나의 실수였다는 걸 인정하고 정중히 사과했다.




Welcome to Canada!
As of today, you're a permanent resident.
You can work with any employers
from now on. Congratulations!



이제야 미소를 지어 보인 심사관이 여권과 랜딩 페이퍼에 도장을 꽝! ! 찍어주었다.


인사를 하고 국경사무소를 빠져나오면서도 기쁨을 만끽할 수가 없었다. 웃음이 나지도 않았다. 긴장이 여전히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웰컴 투 캐나다가 되지 못할 뻔했던  악몽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서둘러 차를 몰고 나와 그냥 달렸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달려 익숙한 지역에 이르러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쉰 후,


"아~~~~~~~~~~~~~~"

"아~~~~~~~"

"아~~~~~~~~~~~~~~~~~~~~~~~"


지난 2년간 차곡차곡 쌓여 가슴을 짓누르던 체증을 비워내듯 소리를 지르며 달리고 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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