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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May 03. 2024

나를 따라 차를 산 따라쟁이 친구

못 말리는 몽순이

문득 고등학교 친구 '몽순이' 생각이 났다. 누군가의 글을 읽던 생각이 친구에게로 이어졌다. 몽순이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나와 같은 반이었다. 그 친구가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몽순이가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1학년때부터 나는 친한 친구 그룹이 있었고 나를 포함해 우리 다섯 명은 '다섯 손가락'이라는 이름을 지어 손가락을 하나씩 나눠가졌다. 나는 그중 '검지손가락'이었다. 몽순이는 '다섯 손가락'은 아니었지만 '열손가락' 안에는 있었다.


다섯 명의 멤버 중엔 자취를 하는 친구 두 명이 있었다. '교육의 도시 전주'로 유학을 온 친구들이었다. 우린 틈나는 대로 친구의 자취방에 모여 라면도 끓여 먹고 비디오를 빌려 같이 보면서 똘똘 뭉쳐 다녔다. 방학 때도 우린 많은 시간을 보내며 우리끼리의 학창 시절을 만끽했다. 한 번씩 몽순이는 우리와 같이 어울렸다. 그러다 우르르 다 같이 몰려 몽순이 집에 놀러 가기도 했다.


나는 컨벤션기획사 일을 하며 야근 못지않게 외근도 많았다. 하루에 몇 건씩 외부 회의가 이어지는 날도 있었다. 서울 시내뿐만 아니라 경기도 지역으로 가야 하는 회의도 많다 보니 차가 절실히 필요했다.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선물로 성인이 되던 해 면허증을 취득해 드린 기특한 딸은 10년 넘게 장롱면허였다. 어느 날 동료와 외곽에 미팅을 나갔다가 그 직원의 차를 운전하게 됐다. 면허는 수동으로 땄던 내가 오토를 운전하니 1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세상 운전이 쉽게 느껴졌다. 외곽이라 차가 다니지 않았으니 착각이 하늘을 찔렀다. 자신감이 생긴 나는 덜컥 차를 샀다.


강남구청에서 만나 등록을 마치고 차를 받고 사무실까지 가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여하튼 난 필요에 의해 차를 샀고 매일 운전을 하다 보니 금세 익숙해졌다.


그때 몽순이는 여의도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사무직에 외근이 없던 몽순이는 주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했는데, 내 차를 보고선 똑같은 차를 주문했다. 색깔만 빨강이었다. 커피에 시럽 추가해 주문하듯이 말이다. 몽순이는 나를 많이 따라 했다. 대학 진학도, 직장도, 사는 동네도, 만나는 사람들도, 그리고 딱히 필요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차도. 하지만 그건 몽순이의 결정이었다.


"축하해~ 드라이브 한번 가야지?"

"ㅎㅎ 그래 가자~~ 근데 운전은 니가 해~"

"엥? 왜?"

"나 운전 못해!"


몽순이는 운전을 할 줄 몰랐다. 나보다 더 심한 지하 장롱에 면허증을 묵혀뒀던 몽순이는 겁도 많아 나처럼 들이 대지를 못했다. 몽순이의 새빨간 차는 지하주차장에서 그렇게 먼지에 뒤덮여 가고 있었다. 


"차는 잘 있어? 그렇게 세워두기만 하면 똥차 돼!"

"알아..."

"먼지 계속 쌓일 텐데, 주인 없는 찬 줄 알고 누가 훔쳐가는 거 아냐?"

"밤마다 내려가서 확인해.."


그러던 몽순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몽순이의 차도 주인을 만났다. 남자친구는 저녁마다 몽순이의 집으로와 차를 운전하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밤이 되면 다시 주차장에 고이 모셔다 놨다.


집주인이 계약 연장을 해주지 않아 이사를 하게 된 나는 대출을 받아 처음 전셋집을 얻었다. 행사와 계약이 만료되는 기간이 쳐 집을 구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역삼동에 나름 괜찮은 원룸을 구했다. 첫 전셋집이라 포인트 벽지를 고르고 사람을 불러 도배도 했다.


그런데 새벽마다 여자의 울음소리가 났다. 늘 3,4시쯤 집에 돌아오는 그 여자는 무슨 한이 그렇게 많은지 매일 울면서 집에 들어왔다. 꺽꺽 우는 소리 때문에 난 매일 그 시간에 잠이 깼다. 그렇게 깨고 나면 다시 잠에 들지 못했다.


어느 그 여자설움이 극에 달했다. 그날도 울며 집으로 들어간 그 아이는 위층에서부터 계단을 쿵쾅쿵쾅 내려오며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다녔다. 인터폰으로 응대하는 위층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걱정이 되었는지 "무슨 일이세요?" 묻는데 울며불며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 상대방의 대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통곡을 하한 층을 더 내려와 내 앞집의 초인종을 누른다. 그 날밤 그 아이는 건물의 모든 사람들을 깨웠고 나는 집주인에게 이사를 통보했다. 3개월 만의 결정이었다.


계약기간을 지키지 못했지만 집주인이 수긍하는 모습에서 인지하고 있음을 알았다. 역삼동이라는 동네 특성상 '나가는 언니들' 중 하나인 듯했다. 그렇게 이사를 또 하게 됐는데 회사 이삿날과 겹쳤다. <아구찜에 대한 무서운 상상>에 등장하는 군산아구찜 건물로 이사한 회사다.



새집에 큰 물건들만 대충 정리를 해두고 오후에 책상 정리를 하러 사무실에 갔다. 몽순이가 전화를 해 나머지 짐을 정리해 주겠다며 회사 근처로 오겠다고 한다.


"어떻게 오려고?"

"어~ 오늘 날씨도 좋은데 운전하고 가려고~"

"괜찮겠어?"

"히히~ 해보는 거지 뭐~ 어디서 볼까?"


몇 번 남자 친구에게 도로연수를 받은 몽순이는 자신감이 생겼는지 주소를 받고 용케도 회사로 찾아왔다. 어깨와 팔에 잔뜩 힘을 주고 핸들을 뽑아낼 기세였다. 한 끼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팠던 나는 친구와 봉은사 근처에 있는 김치찌개 맛집에 밥을 먹고 우리 집으로 가기로 했다. 사무실에서 불과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여서 몽순이는 내 차를 천천히 따라왔다.


심과 저녁사이 애매한 시간에 식당에 갔던 거라 입구 주차장은 텅텅 비어있었다. 차를 곧바로 주차한 나는 몽순이 차가 들어오는 걸 보고 길을 비켜주고 식당 문으로 향했다.


그 순간


'쾅..................'


깜짝 놀라 돌아보니 몽순이 차는 식당 주차장 벽을 들이받고 그대로 멈춰있다. 세상에... 후진 주차도 아니고 정면 주찬데.. 벽으로 돌진을 하다니... 벽을 따라 옥상으로 길게 설치되어 있던 파이프가 산산조각이 난 채로 몽순이의 보닛 위에 흩어져 있다. 몽순이의 차는 찌그러졌고 보닛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밥 먹는 내내 울상이던 몽순이는 그렇게 밥만 먹고 결국 남자 친구를 불러 돌아갔고 다시는 핸들을 잡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남자친구와의 연애를 끝마쳤다. 몽순이의 차도 다시 주차장에서 외로운 날들을 보냈다. 


먼지가 그득 쌓여 몰골이 점점 말이 아니게 되어가던 몽순이 차. 그 여름 며칠간 비가 쏟아졌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는 몽순이집 지하주차장을 삼켰고 몽순이는 결국 차를 폐차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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