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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동작구 노량진동 2/2

누적: 167.06km, 오늘: 22.5km, 걸음 수: 27,573

by 마포걷달

표지사진 | 서울 동작구 노량진2동 ‘출입금지‘




아이고~ 힘들다

사실, 그렇게 높은 언덕은 아니었다. 길은 구불거리고 좁은 계단과 언덕길이 한데 어우러져 ‘본동’에서 ‘흑석동’, 그리고 다시 ‘노량진동’으로 이어지는 길이 다소 미끄러웠을 뿐이다. 그래도 쉬지 않고 올라갔다. 그 꼭대기에 맞배지붕 아래로 커다란 범종 하나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인적 하나 없는 작은 암자(승용사)가 단층으로 앉아 있길래, 가볍게 아는 척을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한 걸음 하고도 반 발자국을 옮겨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저 아래로 서울 풍경이 나뭇가지에 걸린 채 눈에 흔들어 대니 좋았다.


승용사
이런 곳에 암자가 있다니, 검색해 보았다. 승용사라 하는데, 설명이 재미있다. 1969년 5월 1일에 승용사를 설립 창건하였고, 창건하신 스님의 법명이 ‘야옹’이라고 한다. 야옹 스님은 ‘고양이 스님’인가? 더 찾아보니 야옹은 한자어로 冶翁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노량진근린공원’이 나온다. 동네는 ‘본동’에 속하는데, 경계에 서서 노량진 방문객을 환영하고 있다. 남자 여럿이 족구를 한다. 노량진동의 높은 바람이 한강물을 머금고 선수들 몸 사이를 휙휙 지나간다. 서로의 발길질이 매섭게 공을 찰 때마다 상대 진영은 바쁘게 움직인다. 하지만 공 따로 몸 따로 움직이는 걸 보면, 역시 그들은 ‘중년’이 되어가는 게 분명해 보였다. 이 또한 동병상련이라 좋았다.


공원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진흙에 눈이 녹아, 오르막만큼 내리막길도 미끄러웠다. 허리를 곧게 펴고 온 다리에 힘을 주었다. 땅에 짚을 스틱이 없으니, 양 손바닥을 바로 펴고 언제라도 넘어지면 땅을 짚을 기세로 걸었다. 지나가는 노인네가 흘끔 본다. 웃는 듯, 무표정인 듯. '분명 웃었을 거야.' 또 혼자 상상이다.


한신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지 앞으로 ‘극락정사’라는 절이 있다. 조금 전에 마주한 암자보다 열 배는 더 커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 봤다. 외벽마다 ‘탱화(幀畫)’가 그려져 있고, 연못에 서 있는 ‘관세음보살상’을 보니 오래되고 유명한 절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 주십시오’라며 가볍게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천주교인으로서 괜찮은 일인지 모르겠지만 기도는 어디서든 나를 지탱하는 일이니까. 놓칠 수 없다.


극락정사(極樂精舍)
극락정사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 위치한 불교 사찰이다. 이 사찰은 1930년대 후반에 만공 스님의 제자인 보월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 현재 극락정사는 도심 속에 자리한 작은 암자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주된 기능은 불교 수행과 명상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찰의 규모는 크지 않으며, 화려하기보다는 소박하고 정갈한 분위기를 특징으로 한다. 극락정사는 창건 이후 현재까지 노량진 지역에서 종교 시설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지역 사회에 역사적 존재로 남아있다.





아빠~ 어디예요?

걷는 중에 딸아이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노량진! 너 대신 왔지~” 뜬금없다는 듯 딸아이는 “그게 뭥미?” 하고는 일찍 들어오라면서 전화를 끊는다. 이래저래 부담인 아빠가 영 마음에 안 드나 보다. 그런데 사실, 노량진동에 왔지만 내가 상상했던 그 고시원 동네 같지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값싼 고시원촌에 고시와는 상관없는 젊은이들이 들어와 삶의 둥지를 튼 듯했다.


노량진 언덕 위로는 대게 아파트 단지이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단독 주택들과 빌라들이 모여 있다. 아파트 단지를 끼고 큰 도로로 내려오다, 일부러 아랫마을 주택 골목을 구석구석 걸었다. 집 앞에서 담배 피우는 한국의 젊은이보다, 어째 외국인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국적도 다양하다. 동남아인들도 보이고, 검은 피부의 외국인도 종종 눈에 띈다. 그래도 아직 흔적이 남은 고시원텔과 고시원 간판들이, 여전히 이곳이 노량진임을 일러주고 있었다.


한때는 고등학교 동창들도 ‘사시’나 ‘행시’ 공부한답시고 신림동과 여기 노량진에 많이 모여 살았었다. 가끔씩 놀러 온 그때의 기억은, 오래되고 낡은 접시의 흠집처럼 남아 있다. 또래들로 바글댔고, 좁은 골목에 소주 한잔의 기억은 까칠했지만 정겨웠다. 지금 이곳은 그때와는 달리 적막하고 근근하다. 국가공무원 시험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고, 다양한 학습 방법과 매체가 생기면서, 노량진 고시원촌은 이제 슬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만 같다.



노량진동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가 컵밥거리를 구경하고는, 다시 노량진2동으로 걸어 올라갔다. 낡은 주택들이 헐리고, 입구마다 ‘출입금지’ 딱지가 붙어있었다. 처음에는 흘끔거렸으나 사람이 보이질 않으니, 그냥 편안하게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남겨진 가재도구들이 흩어져 부서진 벽 속에 갇혀있다.


‘이곳은 벌써 재개발이 들어갔구나’ 아직 모든 골목길을 통제하지 못한지라, 쉬이 이 골목 저 골목을 드나들 수 있었다. 걷다 보면 사람은 없고 온통 고양이뿐이다. 내가 오히려 이방인이라고 눈을 흘긴다. 여기서도 사람이 살지 않은 집에는 고양이가 이사를 와서 주인 행세다. 텅 빈 주차장 자리에는 씽씽카 두 대가 주차되어, 떠나간 주인 아가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높은 곳에 오니 더 좁은 골목과 그 사이 오랜 집들이 서로 어깨를 기대어 마지막까지 ‘밥 짓는 소리’를 내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만학의 꿈을 안고 청춘을 버틴 내 또래들의 땀이, 이곳에서 삭히고 바람이 되어 한강으로 흘러갔으리라. 다시 저 아래로, 모든 집들이 휩쓸려간 또 한쪽의 자리는 수십 년간의 땀으로 빚어진 흙을 꺼내어 미래의 노량진을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상상했던 노량진의 모습이 아니었다. 왠지 내가 더 쓸쓸해진다. 추억보다도 기억이 사라지는 서울의 단편은, 꼭 이 동네 주민이 아니더라도 아쉽다.


발밑의 아스팔트는 언제 적 먼지를 머금고 있는지 모르겠다. 숨 쉬며 기어가는 벌레 한 마리에 ‘너 혼자 남아 살고 있구나’ 싶어 자세히 보니, 이미 지나간 저 고양이 털이었다. ‘그래~ 뭐. 겨울이니까, 뭔 벌레겠어’ 하며, 그래도 남아있는 노량진의 흙 숨을 조금 더 느껴 보려고 이리저리 땅길을 보듬어 걸었다.


아무도 없는 ‘노량진2동’을 온전히 훑고 나왔다. 한동안 빈집은 고양이에게 월세를 주고, 언젠가는 다시 흙이 되어 어디론가 떠날 테다. 골목을 다 돌고 내려왔나 싶었더니, 몇몇의 주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다란 헝겊을 입은 영겁(永劫)의 노인이 온통 노량진의 삶을 얼굴에 담은 채 천천히 집으로 돌아간다. 난 그에게 보이지 않을 작별 인사를 하고 노량진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


- 제1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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