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326.38km, 오늘: 11.61km, 걸음 수: 15,631
표지사진 | 서울 성북구 장위1동, ‘지브리 풍경을 담다‘
장위동은 또 어디람?
하루 종일 ChatGPT와 씨름 중이다. 아직 내가 걷지 못한 서울 동네 몇 개를 추천받았는데, 그중에 하나가 성북구에 위치한 ‘장위동’이다. 장위동…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가 본 기억이 없다.
‘가만… 그러고 보니 유성집인가? 그 소고기로 유명한 식당이 장위동 유성집이었는데?
그런 것 같다. ‘유성집’ 다녀온 지도 벌써 15년 가까이 지났지만, 프랜차이즈라 실제 장위동에서 먹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이름 하나는 익숙하니까 조금은 반가웠다. 다음에 걸어갈 지역으로 ‘장위동’에 동그라미를 쳤다. 지도를 보니 그 주변 지역은 이미 나에게 익숙한 곳이다. ‘ 미아사거리도 보이고… 아하? 동덕여대가 근처에 있네?’ 아내가 나온 학교도 보인다.
나는 보통, 동네를 걷기 전에 사전에 철저히 알아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어디가 유명하고, 기어코 무얼 먹어야 하는지… 뷰포인트가 어디며, 포토존에서 사진을 반드시 찍어야 할 이유는 크게 없었다. 그래서 때로는 다녀온 뒤, ‘아! 여기 이런 곳이 있었네? 여기는 꼭 가봤어야 했나?’ 하고, 살짝 아쉬운 장소를 놓칠 때도 있다. 하지만 낯선 장소를 내 발이 가는 대로 걷는 일은 무척 흥분이 된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도심 구석구석 걷기의 진정한 매력이니까. 오늘은 어떤 세상이 내게 기쁨을 줄까? 걷는 즐거움을 또 한 바가지 ‘꿈’에 담아 길을 나선다.
5호선 마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4호선 ‘미아사거리역’에 내렸다. 날씨는 뜨거웠지만 환상이었다. 구름은 하얗게 뭉개지고 하늘은 퐁당퐁당 파랗다. 이런 날 카메라 사진은, 마치 지브리 만화 속 도시 배경을 만들어 준다. 미아사거리도 마찬가지였다. 백화점이 근처에 있어 나름 복잡 거리는 도심 한복판이지만, 동네가 주는 분위기는 동화 같았다. 건물도 하늘빛에 반짝이며, 작가의 소품이 되어간다.
핸드폰 맵을 켰다. 미아사거리에서 장위동까지는 2.2km 남짓이다. 미아동 북쪽 끝으로 ‘북서울꿈의숲공원’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여기를 통과해서 가 볼까?’ 장위동 옆에 바짝 붙어 있는 그곳은, 예전 ‘드림랜드’가 있던 자리다. 서울시가 매입하고 리뉴얼하여 새롭게 조성한 대규모 공원이란다. 1980년대 말, 한때 드림랜드는 과천의 ‘서울랜드’와 쌍벽을 이루던 놀이공원이었다. 나는 당시 학교 위치상, 소풍을 갈 때면 항상 서울랜드였기에, 드림랜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일단 이름 자체가 ‘드림(Dream)’ 아닌가? 포스터에 그려진 놀이기구만 비교하더라도 무언가 좀 더 세련되거나 미래적이었다. 반면에 서울랜드는 ‘코끼리열차’와 ‘동물원’이 주는 인상이 매우 컸었다. 청룡열차도 아니고 코끼리열차라니…
미아동 주택 사이로 골목골목 걸었다. 집집마다 낡은 담장 위 먼지가 푸르륵 떤다. 오랜 세월만큼 켜켜이 쌓인 녀석은, 뜨거운 열기를 보듬어 담장 위에서 선텐을 하고 있다. 벽을 쓰다듬다 이내 손을 거둔다. 살갗게 까슬리는 담장의 열기가 대단했다. 그 위로 펄럭이는 선녀보살집 ’불기(佛旗)‘는 바람도 없이 펄럭인다. ‘신기인가?’ 서울 곳곳을 걷다 보면, 오래된 마을마다 보살집이 참 많이 보인다. 삶이 힘겨운 만큼 의지할 곳을 찾는 사람들도 많은 법이다. 이름도 다양하다. 선녀보살은 기본이고 애기보살, 용궁보살, 천궁보살 등등등. 전통적이면서도 또 어떤 곳은 ‘타로점’도 본다. 글로벌 시대에 발맞추어 보살집도 변모하나 보다.
미아동 ‘오현로’를 따라 꿈의숲 공원으로 들어섰다. 작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저 앞으로 ‘꿈의숲아트센터’가 나온다. 그리고 그 옆으로 아주 커다랗고 기다랗게, 도서관을 겸한 전망대가 보였다. 예까지, 그거 좀 걸었다고 땀이 흠뻑이다. 한 쌍의 젊은 부부가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전망대로 올라가길래, 슬쩍 뒤를 쫓아 동행했다. 전망대 문을 여니 내부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숨을 살린다. 높이로만 10m는 되어 보이는 전망대 끝까지 올라갔다. 그 안에는 편히 누워 쉴 수 있는 방석의자가 있고, 그 앞으로 끝없이 펼쳐진 강북구의 산과 하늘이 온 지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전망대를 나와 아트센터 입구 쪽으로 내려가니 오른편으로 아주 커다란 ‘북서울꿈의숲공원’이 시작되었다. 초입 광장에서부터 햇빛 찬란한 분수대 물줄기가 아이들 온몸을 적시며 깔깔거린다. 내가 물속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내 온몸으로 폭포가 쏟아져 내려와 여름 더위를 날리는 듯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이보다 더 천진난만한 아빠의 웃음이 내 발걸음을 멈춘다. 느긋하게 드러누운 할아버지는 마냥 손주들 놀음에 흐뭇하다.
커다란 구름이 떼를 지어 공원숲 이마에 지붕을 만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넓은 녹색숲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예술의 전당이다. 걷는 즐거움만큼 보는 즐거움이 압도적인 것은 계획에도 없었다. 나는 한 발 한 발 걸으면서 여기저기 눈을 떼지 못했다. 그동안 내가 서울에서 본 공원 중, 가장 큰 거인의 숲이었으니까. 첨단의 청룡열차는 없었지만, 진정 그것은 ‘드림랜드’였다.
공원 길은 넓었다. 모든 길을 다 밟고 싶었다. 하지만 공원은 넓고, 태양은 뜨겁다 보니 이내 또 그늘 구역만 찾게 된다. 그래도 저 앞에 갈대가 작품으로 무성하면 기어코 걸어가서 눈인사를 한다. 후두두둑 하늘로 솟는 분수가 구름 솜사탕에 올리고당을 뿌린다. 맛있게 포근한 둥실 구름은, 이 공원의 매력에 50%의 지분을 가진 듯했다. ‘어쩜 이리 이쁠까’
공원 끄트머리로 조선 ‘순조’ 임금의 딸, ‘복온공주‘의 재사가 보였다. 기와집들은 아주 단정하게 손질되어 있어, 지금 호텔로 써도 좋을 듯했다. 관리가 잘 되어 있으니, 별 생각을 다 한다. 한 바퀴 휘둘러 보는데, 어디서 알고 왔는지 외국인 관광객들도 나무늘보가 되어 천천히 감상 중이다. 사물도 아름답고, 보는 이도 아름다운 계절이다.
꿈의숲공원을 나와 ‘월계로’를 건너면, 이윽고 오늘의 목적지인 ‘장위동’이다. 장위동은 서울의 택지 개발에 있어 드라마틱한 변천을 보여준다. 여러시기에 거쳐 ‘재건주택’, 부흥주택‘, ’국민주택, ‘민간 단지주택’, ‘다세대·다가구 주택‘ 그리고 재개발 뉴타운까지 흐름이 명확하다.
장위동의 대다수 주택은 이제 재개발 뉴타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 평지가 아닌 언덕길로, 낮은 곳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건물의 나이는 중년을 넘어 노년이 되어 간다. 공기는 조용하고 적막했다. 그리고 오래된 이야기를 담은 담벼락들은, 이끼를 이불 삼아 말없이 경비를 서고 있다. 시멘트길의 부스럭들은 내 발아래서 자갈자갈한다. 나는 그것을 밟을 때마다 으드득 소리가 나는 것이, 마치 이야기를 건네듯 대화를 나누었다.
지붕이 아름다운 집을 보았다. 잠시 멈추고 나는 그림을 감상하는 마음이었다. 마치 어느 만화에서나 나올법했다. 다시 왼쪽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저 아래로 길게 뻗은 장위1동 골목은 지브리의 풍경이다. 이름을 빼앗긴 센과 치히로가 앞으로 달려 나가 골목 뒤편으로 숨는다. 나는 그것을 열심히 쫓아간다. 모퉁이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는데, 그것은 바람을 타고 스르륵 구름 위로 사라져 버렸다. 그 아름다운 정경은 장위동의 기억 씨앗이 되었다.
장위동의 골목길은 끊임이 없었다. 왼쪽집과 오른쪽집은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넓이였다. 오래전, 앞집 친구가 부르면 옆집 친구가 밥 먹다가 “알았어” 할 듯했다. 그러네? 어렸을 때 기억이 또 가슴에서 일어난다. “선원아! 노올자!” 정말 그렇게들 불렀는데. 엄마는 밥 먹다가 뛰쳐나가는 나를 보며 늘 “조심히 놀아!” 그 한마디뿐이었는데, 말이다. 오늘날처럼 빨리 들어오라거나, 숙제해야지 나가긴 어딜 나가 라는 말들이 없었던, 정말 천국의 세상이었다. 그 어린 시절 골목이 내 앞에서 펼쳐지는데,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장위동 골목을 타고 제일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낡은 담벼락 아래로는 꽃나무와 화분이 초록초록하다. 끝까지 올라서 북한산으로 바라보니, 저 하늘에 구름이 예술이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하늘과 구름을 장위동에서 내 눈에 담는데 좋았다. 땀이 잠시 식어가는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눈을 감으니, 내 귀에 틀어 놓지 않은 음악이 흐른다.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 내려가는 계단이 아찔하다. 어르신들은 엄두도 못 낼 듯, 이방인조차 난간을 움켜쥐고 천천히 내려섰다. 워낙 가팔라서 내려오는 길은 금세 끝이 났다. 이제 다시 평지를 따라, 나는 장위동의 마지막 남은 거리로 들어섰다.
장위동 성당을 지나 ‘장위전통시장’으로 향했다. 길을 따라갈수록 건물들은 더 낮고 더 낡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곳(장위2동)은 재개발을 앞둔 구역이었다. 아직 헐리지 않은 집들은 머지않아 사라질 기록이 된다. 나는 노트에 굴뚝과 담쟁이덩굴을 그렸다. 어느 예술가가 학교 담장에 남긴 그림을 나는 다시 카메라에 담았다. 천천히 걷는다는 건 자세히 본다는 일이다. 눈으로 담아낸다는 건,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한 이야기를 경청하는 일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모처럼 지나가는 손님이 되어, 그들의 환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장위전통시장에 들어섰다. 시장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더위는 그늘이라고 피해 가지 않았다. 남은 사람들은 부채질에 여념이 없다. 딱히 살 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는다. 전통시장이라고 해도, 대체로 일요일 오후는 한가하다. 이내 밖으로 나왔다. 이어지는 골목 주변으로, 삐그덕거리는 보도블록을 밝으며 걸었다. 아주 좁은 골목으로 눈길이 간다. 차마 그곳으로 걸어갈 수는 없었다. 어느 집은 문을 열어두었는데, 안이 다 보일 정도이다. 다행히도 주인분은 보이질 않는다.
이내, 장위동 끄트머리에 다다랐다. 저 앞으로 큰 도로가 보인다. 고가도로도 보이고 버스가 많이 지나가는 것을 보니, 오늘 나의 걸음을 여기서 멈추어야겠다. 잠시 뒤돌아 서는데, 아담한 집 한 채가 마지막 눈길을 사로잡는다. 작품이다. 또다시 지브리의 풍경이다. 감상과 예술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나는 오늘 장위동에서 걷고, 생각하고.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노트에 담는다. 돌아가는 길이 행복하다.
- 제28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