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 Oct 17. 2023

부끄럽지 않도록

하늘은 너무나 청명해서 눈이 시릴 정도였고, 공기는 티 없이 맑은 날이었다. 제이의 생일에 딱 어울리는 화창한 날 우리는 놀이공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모두가 들뜬 마음이었고, 속도를 높여 우리 앞에 끼어드는 자동차도 너그러이 봐줄 수 있을 만큼 평온한 기분이었다. 


제이의 신청에 따라 '모두 다 꽃이야'에 이어 '프린세스 트와일라잇송'을 반복하여 듣고, 다음 신청곡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엄마, 그 있잖아. 노란 리본 조용한 노래, 그거 알지? 나 그 노래 틀어줘."

"노란 리본 노래가 뭐야?"

"노란 리본 조용한 노래 있잖아 그거. 선생님이 들려주셨었는데 나 그 노래 좋아해~ 유튜브에 한번 찾아봐봐."


유치원에서 이동도서관 활동 중에 '노란 리본'이란 책을 읽어본 적 있다는 제이의 말이 불현듯 생각났다. 제이는 책 표지가 너무 이뻐서 골랐지만 너무 슬픈 이야기라고 했다. 그리고 그게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언젠가 제이가 더 크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얘기를 나눠봐야지 막연히 생각만 했었는데,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에 그때 나는 조금 놀랬던 것 같다. 제이는 그 책을 여러 번 읽었다고 했고, 내가 리본을 묶을 때면 노란 리본처럼 만들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유튜브에 '노란 리본 노래'로 검색을 하니, 추억의 올드 팝송과 김창완 밴드의 '노란 리본'이 나왔다. 김창완 아저씨의 노래를 말하는 건가 싶어 틀어보니 그건 아니랜다. 그렇다면 팝송은 아닐 텐데 싶어 다시금 검색해 보니 팽목항의 노란 리본 난간의 썸네일이 눈에 띄었다. 혹시 이건가 싶어 틀어보니, 피아노 전주만 듣고도 제이가 바로 알아차린다. 


"맞아 맞아, 이 노래야!! 엄마 아빠도 들어봐 봐. 노래 진짜 좋아!"

"제이야, 이런 음악도 좋아했었어?"

"응, 나 이런 조용한 음악 좋아해. 엄마 그만 말하고 노래 잘 들어봐 봐!!"


피아노 반주 위에 청아한 가수의 목소리만 얹어진 조용한 노래였다. 들썩이던 마음은 이내 가라앉고 우리 셋은 고요히 노래에 집중했다. 평소 가사에 집중해서 노래를 듣는 편이 아닌데, 그날은 유독 가사가 귀에서 자란거렸다. 


'그날의 아픔도 슬픔까지도 헛된 일이 되지 않도록 잊지 않을게'


지금 쯤이면 이렇게 날씨 좋은 날 친구들끼리 놀이공원도 가고 오랜만에 가족 나들이를 계획할 법한 나이가 되었을 텐데, 남은 이들은 눈부시도록 맑은 오늘 같은 날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자연스레 남겨진 이의 편에 서서 사랑하는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을 감히 헤아려본다. 제이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도로 위를 내달리는 내 사정이 어쩐지 송구스럽다. 목이 따끔거릴 정도로 메이는 노래와 달리 무정하게 밝고 찬란한 햇살에 괜히 눈만 끔뻑거린다. 


"엄마 노래 어때? 근데 우리 언제 도착해?"


해맑은 제이의 물음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목소리를 다듬고 간신히 내뱉은 말이라곤 그저 "사랑해" 이 말뿐. 


나는 꽤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것 같다. 4월은 날씨가 좋아서 제이와 어디로 나들이를 가면 좋을지 계획을 짜느라 바쁜 나날로 가득 채웠고 티비를 통해 추모 소식을 들을 때면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의 괜한 언쟁을 피하고자 가벼이 보고 넘기곤 했다. 그래서 제이를 통해 다시금 세월호를 되뇌게 된 나는 기억해야 할 것을 잊은 것 같아 조금 많이 부끄러웠다.










이전 06화 잘한다 잘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