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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Sep 20. 2023

잘한다 잘한다

아이의 칭찬은 엄마도 춤추게 한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못하는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힘이 든 지 더 해볼 수 있는지 자신 있게 말하는 아이의 모습은 언제나 반짝인다. 내가 보기엔 썩 잘 그리는 그림이 아니어도, 어설픈 가위질이어도 어제보다 조금 더 귀엽게 입을 그릴 수 있게 되고, 굴곡진 이음매도 혼자서 자를 수 있게 된 작은 변화 자체가 본인에게는 자신감이고 자랑이다. 


아이에게 '잘한다'는 건 타인과의 비교를 통한 평가가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졌기 때문에 기꺼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이다. 물론, 다른 이들과 비교도 하지만 그 비교가 본인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만 이루어진다. 


"이 시나모롤은 채은 언니가 더 잘 그리긴 했는데, 내 그림에는 하트를 많이 그려 넣어서 더 귀엽고 사랑스러워."


제이의 눈에 그림을 잘 그린다는 건 누가 더 대상과 똑같이 정교하게 그렸냐가 아니라, 좋아하는 대상을 향한 마음을 어떻게 담았느냐인 거다. 시나모롤에 푹 빠져있는 제이는 그 마음 수만큼의 하트를 빈 종이 가득 채웠고, 개수로 부족한 표현은 온갖 반짝이는 스티커와 귀여운 폼폼으로 덧붙여 어떻게든 넘치는 마음을 욱여넣으려 했다. 비록 똑같이 그리지는 못하지만,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사랑을 표현할 수 있기에 제이는 자신의 그림에 꽤나 만족했다. 


 '잘한다, 잘했다'라는 발화의 주체가 타인이어야 하는 게 익숙한 나는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잘한다'가 영 못 미덥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끊임없이 나의 부족함을 들추고 헤집으며, 노력을 채찍질하는 게 오히려 더 익고, 스스로를 기꺼이 인정해 주고 보듬어주는 말이 생경하다. 그래서 제이가 스스로 잘한다, 예전보다 더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자기 안에 잘 자리 잡고 있구나 싶어 대견하면서도 부럽다. 나의 눈은 어디를 헤매고 있는지... 아이가 엄마는 무얼 잘하냐고 물을 때면 난 여지없이 우물거리고 만다. 그래 내가 뭘 잘하더라... 한참을 고민을 하면, 아이가 냉큼 말해준다. 


" 엄마 책 잘 읽잖아. 까먹은 거야? 왜 까먹었어~나는 엄마가 읽어주는 책이 제일 재밌는데~ 그리고 요리도 잘하잖아 나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엄마는 잘하는 거도 많은데 왜 자꾸 까먹어!" 


맞다, 책 읽어주는 거 잘하지 나. 근데 요리는 아닌데... 의기소침해 있는 내 기분을 맞춰주려 해 줘도 먹지도 않은 음식을 들이미는 건가. 앞뒤 말의 진심이 조금 다른 거 같지만, 그래 제이 네가 말해주는 거면 다 맞는 거겠지. 내가 잘하는 것들 까먹지 말아야지, 꼼꼼하게 기억해 뒀다 언제든 자신 있게 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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