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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Sep 15. 2023

6살 아이의 아침 배웅을 받는다는 건

매일 아침 남편과 제이를 먼저 밖으로 내보내고 조금 더 여유를 가지며 출근 준비를 시작하거나, 함께 나가면서 집 앞 도로에서 헤어지는 게 일상이었는데, 요즘 들어 내 안에 기분 좋은 울렁거림을 주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가끔 남편이 늦게 출근할 때 제이가 잠옷을 입은 채 쪼르르르르 멋쩍은 듯 따라 나와 엘리베이터까지 나를 배웅해 주는 일이다. 현관문까지 야무지게 닫고 나와선 내 손을 꼬옥 감싸 쥐며, 나를 데려다주겠다며 으쓱하며 웃는다. 


 '엄마 저기 있던 커다란 건물도 다 부셨나봐?(현재 집 앞에 새로운 단지가 들어서기 위한 철거 작업이 한창이다), 우와 엄마 포크레인이 엄청 많아, 근데 엄마 지하철 타러 가는 길 아니야? 길 막혔으면 어떡해!, 엄마 저-기 우리 영화 봤던 데다 그치? 까투리 재밌었는데,, 다음에 또 보러 가자!' 

엘리베이터가 18층에 이를 때까지 쉴 새 없이 옆에서 종알거린다. 더 이상 둘러볼 것이 없으면 내 오른쪽 허벅다리를 감싸 안으며 '힝 엄마랑 더 놀고 싶은데, 나도 같이 데려가' 라며 응석을 부린다. 어디 하나 안 귀여운 구석이 없는 제이의 모습을 하나라도 놓칠까 봐 그녀의 몸짓, 발짓, 손짓, 그리고 연신 올록볼록 움직이는 입가를 눈에 살뜰히 그러담아본다. 


띵-18층입니다. 너무도 빨리 올라온 엘리베이터 소리에 제이도 나도 서운한 마음이 밀려드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이제 들어가 보라며 등을 떠밀어도 제이는 연신 괜찮다며, 엄마 먼저 타라고 한다. 

'엄마, 내가 문 닫힐 때까지 기다려줄게, 나 혼자서 숫자 누르고 들어갈 수 있으니까 걱정 마~좋은 하루 보내 사랑해!' 110cm도 채 안 되는 조그만 아이가 너무도 자신감 있게, 의젓하게 서서 나를 배웅해 준다. 기특한 녀석. 째깐한 녀석이 듬직하게 서 있는 자태를 보니 아이의 몸에 차곡히 쌓인 시간의 흐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내 문이 닫히자, 벅찬 감정이 몰려오고 명치 아래에서부터 묵직하게 울컥하는 느낌에 눈물이 차오르는 건 막을 길이 없다. 제이의 섬세한 재간에 아침부터 눈물바람이다.  


나와 인사를 나눈 후 홀로 남게 되는 제이의 시간을, 그리고 집에 들어가기까지 1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한 평 남짓한 공간 안에 혼자 남아 있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빙그르르 돌아 두어 발 내디딘 후 오른쪽으로 꺾고 안쪽에 위치한 현관문을 향해 다시 일곱 발걸음을 옮겨 도어록 앞에 서겠지. 손바닥을 대고 6개의 숫자를 조심스럽게 꾹꾹 누른 후, 두 손 힘껏 손잡이를 잡아 당기고선 분명 폴짝 뛰어 들어갈 거야. 어쩌면 현관문 앞에 놓인 분홍색 자전거에 눈이 갈지도 모르겠네. 괜히 자전거 벨을 한번 울려보거나, 킥보드에 매달린 리본 수술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만져볼지도.' 예상되는 그녀의 몸짓을 손가락을 대고 따라 그리듯 살며시 가늠해 본다. 운이 좋게 17층에 엘리베이터가 잠시 서면, 토도독 뛰어가 도어록을 누르는 제이의 소리를 들으며 나의 불안감을 가라앉힐 수 있을지 모른다. 


아이를 혼자 둔 그 잠깐의 시간에, 그 보다 더 오랜 시간을 서로 떨어진 채 보내게 될 언젠가를 생각해 본다. 아이의 삶과 나의 삶이 어떤 이유로든 중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또한 거리를 유지하고 존중해야 함을 늘 되뇌면서도 어쩐지 이 찰나의 시간이 영원같이 느껴져 그 거리가 너무도 광활하게 덮쳐온다. 그런 관계를 거뜬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자만을 비웃듯, 그날의 아침에 나는 연신 목이 따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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