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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니 Oct 06. 2022

꽤 괜찮은 사람들 3

마, 그거 내려놔라.

 태우는 내 책상에 있던 피규어에 관심을 가졌다. 제법 퀄리티 있는 물건이긴 했다.

 일본에 자주 왕래하는 이모부가 선물로 주신 거였다.

 아마 이름 모를 게임이나 영화의 캐릭터였을 거라 추측된다.


 태우는 그 피규어를 달라고 요구했다.

 어이없는 주장이었고 단칼에 거절했다.

 약간 기죽은 목소리로 생각을 재고해 줄 수 없냐는 식으로 재차 물었다.

 나도 선물 받은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나중에는 애원까지 했지만, 나는 굽히지 않았다.

 그럼 어디에서 샀냐고 물었고 질문에 답했더니,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꼭 갖고 싶은 눈치였다. 그리고 태우는 평소에 질척거리는 법을 몰랐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태우가 전학 가던 날. 그 피규어를 선물했다.

 작별 인사를 하기 전 그러니까, 등교 직후였다.

 태우는 뛸 듯 기뻐했다.

 나는 그까짓 게 뭐라고 저렇게 행복해할까 싶었다.

 어떻든 그렇게 가기 싫어하던 전학을 앞두고도 반색을 하며 좋아하니 적임자에게 잘 넘겨준 것 같아 나도 보람을 느꼈다.

 우리는 같은 날, 서로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선물의 수위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기는 하지만).

 태우는 전학을 가서도 종종 전화를 걸어왔다. 편지도 보냈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직 그 친구의 노력만으로 우리 사이가 지탱되고 있었다.


 새 학기에 적응하고 있을 때 즈음이었다.

 집에서 모처럼 NBA 농구 게임을 하고 던 차에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 화면으로 야구모자를 쓴 태우가 서 있었다.

 나는 어서 오라면서 환대를 했고, 우리는 게임을 2인용으로 이어서 플레이했다.

 태우는 키가 좀 컸다는 것 말고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시장을 보고 돌아온 엄마가 좋은 소식이라도 들으셨는지 무척 들떠 있으셨다. 엄마는 친구의 방문을 확인하고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던 꽃이 그려진 접시에 키위와 과자를 내주셨다.

 우리는 키위부터 하나씩 베어 물었다. 설익은 나머지 너무 새콤해서 인상을 찡그려졌다.

 앞서 맛을 본 태우의 반응을 살피느라 고개를 돌렸고, 태우는 어두운 표정으로 키위를 씹으며 농구팀을 고르고 있었다.

 남들은 잘만 살고 있는데 혼자 제자리인 기분을 느꼈던 걸까.

 게임도 슬슬 시들해질 무렵, 태우는 가볼 곳이 있다며 일어났다.
 엄마가 저녁을 먹고 가라고 만류하는데도 기어이 집을 나섰다.

 한 시간쯤 지나서 아버지께서 오셨는데, 생각지도 못한 것을 들고 있었다.


 그건 바로 태우에게 선물했던 피규어였다.



The characters and incidents in this series, althouh inspired by actual events, have been fictionalized for dramtic purposes, and are not intended to depict actual individuals or ev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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