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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순산

꿈에도 소원은 순산

by 다비드

짠짠이 30주 차가 넘어가며 완연한 임신 후반기가 되었다. 아내는 배가 많이 나와서 수면을 포함한 모든 활동이 버거워졌고 출산휴가 시점을 고민하게 되었다. 출산 직전에 한 달이라도 시간을 갖느냐 아니면 출산 후 육아 기간에 최대한 몰빵 하느냐. 우리는 출산 전에 마지막으로 방학(?)을 가지자는 차원에서 35주 차에 출산휴가 시작. 약 7년간 직장인으로 고군분투한 아내의 첫 쉼표. 사실 쉼표라기엔 온전히 쉬는 목적은 아니지만. 그래도 출산휴가 초반 1주 정도, 아내는 출근하지 않는 아침을 신기해하며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기! 하지만 아내 성격 상 얼마 가진 못했고 취미 열차의 막바지 투혼과 출산 준비로 열심히 시간을 채우더라. 직장인에서 육아인으로, 부부가 사는 집에서 세 가족이 살 집으로, 부부에서 부모로 서서히 준비하는 시간. 내 개인적으로는 출근할 때 인사하고 퇴근하면 맞아주는 아내 모습이 영 좋았다. 왠지 가장이 된 듯한 뿌듯한 느낌. 이런 맛이면 혼자 벌어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 집 진짜 가장께서 외벌이 시 가계 재정수지 예상 데이터로 팩트 폭력을 날려주시는 바람에 후다닥 정신을 차렸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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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째 출근 중인 저도 쉬고 싶... 을리가 있겠습니까. 열심히 벌어서 처자식을 먹여 살리겠읍니다.


아내는 출산휴가에 들어가고 나서 본격적으로 육아용품 확보에 들어갔다. 여러 경로로 조사한 육아용품, 출산 가방 용품 리스트를 급속히 채워 넣기 시작. 이전에 괌 여행에서 사 오거나 주변 지인들로부터 선물을 받아 채워진 것도 있었지만 그건 대부분 부피가 작은 것들이었고 이제 본격적으로 큰 물건들을 준비했다. 지구의 환경과 우리의 가계 재정을 위해 육아 선배들이 쓰던 물품들을 적극적으로 구걸하기로(...). 선배들은 선배님이시니까, 동기/후배들에게는 내가 술이랑 밥 많이 샀다는 핑계로 철면피 깔고 들이댔다. 다행히 아내의 인망 덕에 구걸 작업(?)은 순조로웠는데, 만삭이 된 아내와 함께 약속을 잡아서 만나면 알아서들 물품을 싸주거나 언제 주겠다고 약정을 했다. 그리고 나눔 한다는 소식이 있으면 부리나케 낚아채고. 평일 저녁과 주말에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물건 받으러 열심히 지인들 집을 누볐다. 덕분에 유모차, 카시트, 매트 등 굵직한 물건들을 포함하여 많은 물품들을 확보하고 그 핑계로 같이 술도 먹고 일석이조. 또 한 번 깨닫지만, 술 많이 먹길 잘했다. 우리가 허투루 살지 않았어!


출산용품.JPG 출산용품 56종, 출산 가방 용품 15종이 있던 표. 육아 선배가 보더니 "필수적인 건 얼추 있네"라고(...).


육아용품 구하고 출산방법 정하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마지막 방학을 어떻게 보내느냐도 중요한 일이었다. 육아 선배들의 조언은,

1. 실컷 자라.
2. 아이랑 못 가는 식당 충분히 가라.
3. 둘이서 열심히 보고 듣고 놀아라.

모두 지당하신 말씀들. 우린 1번은 조금 소홀히 하고 2번과 3번은 열심히 실천했다. 인덕원으로 이사 오고 나서 가기 힘들어진 서울 식당들, 짠짠이 나오면 더 가기 힘들 테니 일부러 시간 내서 다녔다. 아내의 서울 식당 베스트 라인업은 한 번씩 순회. 앞으로 펼쳐질 배달 인생을 맞이하는 전야제인 마냥 신나게 먹고 다녔다.(그리고 실제로 현재 배달 인생이 되었음. 배달앱 고객 등급이 쭉쭉.)

보고 듣고 노는 거는 거창한 건 없고 영화관 가고 전시회 가고 박물관 가고 조금 먼 공원 좀 다니고 그랬다. 36주 차에 개봉한 어벤저스 엔드게임을 보면서 아내랑 아이언맨을 보내기도 하고 안양천을 천천히 걸으며 벚꽃 구경도 하고 국립중앙박물관에 계신 약사불에게 순산도 빌었다.


20190222_173757.jpg 약사불님 백 번이라도 부르고 공양하겠나이다.


유도 분만 날짜를 5월 9일로 정했다. 두둥. 이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남은 날들을 앞에 두고 아내에게 소소한 이벤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연애기간 포함 12년간 이벤트 한 적도 거의 없고 성공한 적은 더더욱 없는 남자. 그래도 이번에는 뭔가 보여주겠다는 내 사리사욕을 위해 아내와 함께 활동하는 합창단을 이용해먹기로 했다. 출산 전 인사를 하기로 한 마지막 연습 모임 날에 서프라이즈를 하기로. 거창하게 사람들을 미리 섭외하는 그런 건 아니고 작은 꽃다발과 사소한 플래카드를 준비했다. 다소 어처구니없는 이벤트에 다들 폭소했지만 즐겁고 훈훈하게 마무리. 아내는 세상 창피해하다가 그냥 체념하고 기뻐하기로(...). 그래도 기억에 남았다는 측면에서는 성공한 이벤트인 걸로. 이제 정말 짠짠이를 만날 날이 코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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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짠! 이! 순! 산! 기! 원! 우리 마누라 순산하고 꽃길만 걸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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