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하고 나서 피임 없는 세상에 입문하여 잠시 동안 자유롭고 편한 마음으로 지냈다. 첫 두 달 정도였던 것 같다. 초기에는 본격적으로 일정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몸과 마음을 맡겼다.
그런데 안 생겼다.
석 달째가 지나가니 슬슬 초조함이 다가왔다. 날짜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어플도 깔았다. 일종의 계획도 세우고 주변 가까운 지인들 중 육아 선배들에게 조언도 구했다. 이 과정에서 아내의 베프가 남긴 명언.
"임신에 필요한 건 스나이퍼가 아니야. 따발총이지. 과녁이 뜨면 죽어라고 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고로 이 분은 저 전략으로 본인이 원하던 둘째를 곧장 가졌고 지금은 두 아들을 즐겁게 키우고 있다.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친구가 본인 자신도 좀 키워줬으면 좋겠을 정도로 훌륭한 엄마라고. 두 아들을 키우면서 커리어를 계속 이어 나가고 있는 멋진 친구다. 게다가 레어템인 여성개발자! 여하튼 우리도 어설프게나마 뭔가 준비를 하고 다시 본격적으로 달렸다.
잠시 화면 조정 시간입니다(...)
그런데 안 생겼다.
시간이 꽤 지나가니 둘 다 마음의 짐이 생겼다. 특히 아내는 매월 일종의 성적표를 받는 느낌이 스트레스라고 했다. 그제야 의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 직장 근처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운이 좋게도 근처에 난임으로 유명한 병원이 있었다. 이 병원은 분만을 하지 않는 병원이란다. 난임 해결을 위한 여러 솔루션을 갖췄고 아기가 안정기를 거쳐 기형아 검사를 마치면 분만할 산부인과로 옮긴다고 하니 일종의 졸업(?)을 하는 임신 학교 느낌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연예인도 다녔다는 유명한 병원이었다. 어쩐지 데스크 직원이 고자세더라.
아내는 난임 검사 날짜를 받아서 병원에 다녀오더니 나팔관 조영술을 했고 엄청나게 아팠다고 했다. 검사를 했는데 나팔관이 막혀있어서 바로 뚫었다고(!). 결국은 나팔관이 막혀있어 임신이 안 되었다는 거다. 아내는 자기 몸에 일종의 이상이 있었다는 사실에 속상해했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원인이 밝혀지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게다가 겁을 먹기도 전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종의 치료를 해버리니 속 시원하기도 했다. 이제 장애물을 해결했으니 날짜를 받고 배란유도제도 처방받았다.
이 험난한 난관을 다 거쳐서도 한참을 고생하는 부부들에 비하면 우린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2주간의 해외출장을 가게 되었다. 뭔가 기대할 만한 상황이라고 생각을 못했기에 아무 생각 없이 출장지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 아내와 영상통화를 하며 2주를 보냈고 그 사이 일이 늘어나 출장은 1주일이 연장되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출장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던 어느 오후에 아내에게서 사진이 한 장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