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미정 Dec 05. 2016

다가오는 것들.......

또 하나의 인연을 떠나보내고 드는 단상

 나이 든다는건 인연과 헤어질 일이 많다는 의미...

이번 가을에도 우릴 두고 훌쩍 하늘 나라로 먼저 가버린 친구 땜에 많이 힘든 나날들이었던 듯 합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일들,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친구와의 추억들, 말기암으로 힘들어하던 친구의 모습......  호스피스 교육 받으며 삶을 떠나보낼 때 이러하리라  추측해본 일들이 머릿속에 뒤범벅 되어 한발자욱 앞으로 디디기 힘든 느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의도하지 않은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의 시처럼.

만일 근심에 가득 차, 서서 응시할 시간이 없다면
이게 도데체 무슨 인생인가.

나뭇가지 아래 서서 양이나 소들처럼
오래 응시할 시간이 없다면.

숲을 지나며, 다람쥐들이 풀밭에
나무 열매를 숨기는 것을 볼 시간이 없다면.

백주대낮에도, 밤하늘처럼
별들로 가득 찬 시냇물을 볼 시간이 없다면

미의 여신의 시선에 뒤돌아서서,
그녀의 발이 어떻게 춤을 추는지 볼 시간이
없다면.

눈가에서 시작된 그녀의 환한 미소가
입가로 번질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면
얼마나 가여운 인생인가

근심으로 가득 차 잠시 멈춰 서 바라볼 시간조차 없다면


어쩜 삶이란 '다가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 불안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B (birth)와 D (death) 사이의 C (choice)...

과거의 기억들로 형성된 두려움과 불안을 어떤 선택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투쟁의 과정.

 그 방편으로 우린 돈, 명예, 권력 등을 추구하기도 하고, 때론 종교에 귀의하기도 하고 윤리적으로 그릇된 허상을 쫓기도 하지요.  그러다 무릎 꿇고 좌절로 괴로워하기도 하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어둠을 헤메는 밤낮도 경험합니다.

나이 먹으면서 다가오는 것은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회한이 더욱 많은 것이라는 것, 문득 그런 생각이 들 즈음,  프랑스 영화 '다가오는 것들'을 보았습니다.

파리의 고등학교 철학 교사로, 아내로, 두 자녀의 엄마로 그리고 홀로 죽음의 그림자를 두려워하며 불안증에 시달리는 엄마를 돌보아야 하는 중년의 여인 역할을 이자벨 위페르가 쿨하고도 멋지게 연기해 내는 영화.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이별 통보를 하지 않나, 성장하여 곁을 떠나버린 아이들, 결국 죽음의 세계로 영원한 이별을 고한 엄마.

그러나 그녀는 담담하게 앞에 놓인 일들을 처리해 나갑니다. 30대 중반의 여성 감독이 철학 교수인 부모님 덕에 터득한 멋진 철학적 담론들이 중간 중간 소개되며 영화의 품격을 높입니다.

그 중 하나, 알랭의 <행복론> 중

행복은 원하는 것을 얻을 때가 아니라 무언가를 진정으로 원하는 과정 속에 있다


주인공은 다 잃어버린 듯한 공허함에, "내가 뭔지,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는 나의 신분도 의무도 모른다"라고  읎조리기도 하지만, "애들은 독립했고 남편도 엄마도 떠났지. 나는 자유를 되찾은거야. 한번도 겪지 못했던 온전한 자유. 놀라운 일이야.이건 낙원이쟎아"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안주하던 그녀가 가족을 잃었을 때 철학을 통해 맺은 인연, 제자에게 한 말들.  

파리라는 도시에서의 상실감을 제자의 삶의 터전인 전원에서 위무 받기도 하지만 결국 다름을 알아야 하고......


그리하여 집에 찾아온 손주를 안고 노래하죠.

그 모든  회한을.

맑은 샘물가를 나 거닐다가
그 고운 물 속에 내 몸을 담갔네
오래전 사랑했던 당신을 나 잊지 않으리

참나무숲 아래서 내 몸을 말렸네
가장 높은 가지에서 꾀꼬리는 노래했지
오래전 사랑했던 당신을 나 잊지 않으리

꾀꼬리야 노래하렴 즐거운 맘을 가진 너
내 마음은 웃음 짖고 내 마음은 눈물짓네
오래전 사랑했던 당신을 나 잊지않으리

나는 연인을 잊었다네
그럴 일도 아니었는데....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 그것만 있다면......

웃다가 울다가, 기뻐하다가 슬퍼하고,  그런 인생을 살다가도 문득 떠오를 사랑했던 기억.


떠난 친구를 보고 오던 날,  한 친구가 말하더군요.

"우리 00이를 잊지 말쟈"라구요.

다가오는 날들에 겪어야 할 상실감을 사랑의 기억으로 채우기 위해 열심히 움직여야 되겠네요.

영화 속 그녀가 그러하듯이.........

매거진의 이전글 "겟 아웃"을 보고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