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선수 이영표는 2002 월드컵의 영웅이다. 화려한 어시스턴트와 플레이로 박지성 선수와 함께 2002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스포츠 선수와 내향성?
스포츠 선수, 특히나 현대의 프로 선수들은 운동 능력 못지않게 쇼맨십과 자기 PR 기술이 중요하다. 요즘 운동선수들은 연예인 못지않게 말도 잘하고 다재다능하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파이팅 넘치는 자세, 동료, 감독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그러나 최고의 자리에 오른 몇몇 선수들을 보면 이런 편견을 의심하게 만든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아서 존재감이 크지 않은데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사람들은 과연 불가능을 가능케 한 신화일까.
전 스피드 스케이트 세계 챔피언 이상화 선수를 보자.
이상화 선수는 뛰어난 기량 못지않게 강한 멘탈과 성숙한 자세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슬럼프를 극복한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밴쿠버 올림픽 이후 슬럼프가 왔다.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던 때가 2011년 아시안 게임이었다. 경기하기도 전에 나를 금메달로 정해버리더라. 잠도 못 자고 웃고 있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최고의 성적을 내는 것도 어렵지만 그 자리를 유지하는 건 더 어렵다. 고통스러운 훈련을 이겨내기도 벅찬 상황에서 전 국민의 기대감이라는 부담까지 떠 앉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이상화 선수는 “슬럼프는 자기 내면에 있는 꾀병이라고 생각한다. 슬럼프를 슬럼프라고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답한다.
이상화 선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자나, 언론의 기대를 애써 물리치며 “나는 나”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자기와의 싸움에만 매달렸다. 연습을 빠지지 않으려고 광고 촬영도 마다했다. 기대감, 부담감, 부상, 컨디션 등은 단지 ‘상황’에 불과하고, 결국 상황과 무관하게 자기와의 외로운 싸움을 견디고 이겨냄으로써 ‘스포츠는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말을 증명했다.
그래. 혼자 하는 스포츠라면 내면에 집중하는 내향적인 성향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축구와 같은 팀 스포츠라면? 단체 스포츠라면 모름지기 사교성이 뛰어난 외향적인 사람들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이영표 선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영표 선수는 중학교 시절 나와 다른 선수 사이에 떨어진 볼을 자신의 볼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면서 훈련을 마치고 개인 드리블 연습을 시작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서는 체력을 키우고 싶어 줄넘기 2단 뛰기 천 개를 개인 훈련에 추가했다. 처음에는 100개씩 10번에 나눠했으나 2년 후에는 한 번에 천 개를 할 정도로 체력이 향상되었다.
이어 90 분을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지고 싶다는 소망에 이르렀다. 이후 새벽 5시에 일어나 산을 뛰었다. 어느 순간 지치지 않고 뛰는 자신을 발견했고, 중간에 떨어진 볼을 다 자신의 볼로 가져올 수 있었다.
건국대 재학 시절 후배, 동기들이 국가 대표로 선발되는 가운데에서 본인은 선발되지 않는 위기가 찾아왔다. 자신보다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사람들이 선발되는 것을 보면서 노력보다 재능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회의를 느꼈다. 그렇지만 개인 연습을 쉬지는 않았다. 결국 이영표 선수의 노력은 보상을 받아 1999년 국가 대표로 선발된 이래로 은퇴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누락되지 않고 대표팀의 자리를 지켰다.
이영표는 현란한 드리블의 공격수로도 뛰어났지만 상대의 수를 잘 읽는 수비수로도 활약을 했다. 공격과 수비 전환에 능하다는 의미는 내 플레이에도 강하지만 다른 사람의 움직임과 전체 경기의 흐름을 보는 것도 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팀 스포츠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능력이 중요한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자주 어울리고, 금세 친해지고, 재미있는 농담을 나누는 ‘사교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보다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고, 기쁨을 나누고, 어려울 때 격려하는 ‘성숙한’ 사교성이 더욱 중요하다. 이런 유형의 사교성은 공감과 배려 능력이 뛰어난 내향적인 사람들의 장점이기도 하다.
이영표 선수는 강철 체력에 부상도, 실수도, 기복도 없이 성실하고 안정적인 축구로 신뢰를 얻었지만, "내가 주목받으면 팀 전체의 결과를 망칠 수 있다"고 말한 바를 몸소 실천한 행보가 그를 더 가치 있는 선수로 만들었다.
동시대의 또 다른 축구 영웅 박지성 선수 또한 왜소한 체격과 평발로 주목받지 못하는 가운데에서도 막무가내 같은 훈련을 버틴 것으로 유명하다. "남들 눈에 띄지 않으니 깡다구 하나로 버티는 것이었고 남이 보든 안보든 열심히 하는 것이 미덕인 줄 알고 살았다. 난 그렇게 보잘것없는 나의 조건을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라고 말한다. 선수로서의 부와 명예를 쌓고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자기 관리, 지독한 개인 훈련, 겸손한 발언 등으로 성공한 축구 선수를 뛰어넘어 닮고 싶은 인물이 되었다.
겉으로 강하고 힘이 넘치는 스포츠 분야이지만 기량을 향상하고 좋은 성적을 이끌어 내는 비결은 여느 분야와 다를 바 없다.
혼자만의 외로운 연습을 참아낼 수 있는 투기,
좋아하는 것을 향한 열정,
흔들리지 않는 자기 관리,
동료들을 이끌고 압도하지 않고 화합시키는 능력
스포츠 세계에서 고독함과 외로움을 견디는 혼자만의 연습, 개인기보다 전체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영표 선수는 내향적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것이 아니라 내향적이기 때문에 성공했음을 증명하는 수많은 예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영표 선수는 은퇴 후 한국 방송 공사의 축구 활동하면서 냉철한 시선, 정확한 분석, 경기 예측, 따뜻한 조언으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어려운 사람과 축구 꿈나무를 돕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젊은이 여러분…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후보선수처럼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무거운 마음으로 구석진 한쪽 벤치에 앉아 있습니까?
그러나 그곳이야말로 더 강해지고 겸손해지며 더 배울 수 있는 최고의 장소입니다.
여러분이 앉아있는 벤치, 그곳은 분노와 불만, 상심의 장소가 아니라
희망과 겸손, 그리고 노력의 장소여야만 합니다.
피하고 싶고 실패와 절망 가운데
‘과연 이 길이 내 길인가’ 하는 두려움 속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성공한 사람들이 지나간 바로 그 길 위에 있군요.
깊은 절망감, 그것은 성공의 절대조건입니다”
이제는 내향성에 덧씌워진 오해와 편견을 벗어버릴 때가 되었다. 관심 주제에 빠져드는 집중력, 고독한 연습, 경청 능력, 진지함, 책임감, 성실함, 신뢰감, 배려심은 내향적인 사람들의 소중한 자산이다. 조용조용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집중하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극에 예민하고,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는 듯이 보이는 아이들의 이면에는 이 아이들을 밝은 미래로 이끌 보석 같은 자질이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