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감 높고 똑똑하고 행복한 아이를 키우는 일.
어떤 부모인들 원하지 않을까.
좋아하는 육아서 작가들을 멘토 삼아 힘들 때마다 읽고 마음을 다져왔다. 육아의 핵심을 쏙 뽑아 축약한 방법론들이 어떤 아이에게는 적용되지만 내 딸에게는 먹혀들지 않았다.
아이를 보지 않고 방법론에 아이를 맞춰온 것 같다.
특히 인지가 느린 아이들, 공상의 세계를 탐험하느라 외톨이로 보내는 아이들, 예술, 창조성을 가진 아이들, 깊은 내면을 가진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결국은 배려 육아조차 결과로 평가되는 분위기 속에서 좌절하고 아이를 원망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결국 육아는 좌충우돌하는 시행착오의 과정일 뿐 정답이 존재하지도, 또 정답을 찾았다고 해서 그 정답이 영원하지도 않다. 이걸 깨닫는 데 10 년이 넘는 시간을 써버린 셈이다.
아이의 성공한 모습을 보며 일목 요연하고 화끈한 방법을 제시한 사람들을 괜히 원망도 해봤지만 아마 그분들도 가장 효과적이라고 ‘짐작’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일 뿐 현실은 계속 부딪치고 찾아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답은 내 아이에게 딱 맞는 ‘정답’은
없다는 것뿐.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영어를 잘하고, 책을 잘 읽고, 사교성이 좋고, 배려를 잘하는 모습은 목적지일 수도, 내 아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도,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도 안된다. 제아무리 훌륭한 아이 훌륭한 엄마라도 해도 여전히 아이는 말도 안 되게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엄마도 또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다.
아이를 키우며 유일하게 ‘유의미 있고’ ‘평온함을 안겨준’ 방법론이 있다면 가족들이 함께 찾아가는 시간에 있었다. 가정은 내 아이, 남편, 나는 복잡다단한 생각과 역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협상은 윈윈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어느 한쪽만 좋은 것이 협상일 리가 없다. 나도 상대방도 좋은 것을 찾아가는 과정. 남편, 내 아이, 나에게 맞는 방법론을 찾고, 시행착오하며 우리에게 딱 맞는 형태로 변모시키는 과정만이 의미가 있다.
늦된 아이를 대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론은
‘인정하기’, ‘내려놓기’.
여전히 실수하고 넘어지지만 위로해 주고, 이야기 나누는 가족이 있으니 조급함이 사라졌다.
결국 내 불안이로구나. 아이를 배려한다는 육아에서조차 성과 지향주의에 빠져 ‘함께’ 만드는 과정을 보지 못했구나. 결과나 방법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자 평화와 사랑이 샘솟는다. 인생은 과정이고, 그 과정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시도한 방법들을 다음 글부터 간략히 소개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