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에 시를 썼다. 기다리던 짐이 도착하자 집도 정리되었다. 비자도 해결되고 아이는 학교에 적응했다. 도시는 신록으로 가득 차고 산책길은 날마다 푸르름이 더했다. 뮌헨 생활도 익숙해져 비상 열쇠를 맡길 만한 이웃까지 생겼다. 문제가 생길 게 없었다.
집을 나서면 잔디 공원이었다. 주말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온종일 그곳에서 놀았다. 뮌헨의 골든 타임이었다. 누구나 잔디 위에 누워 해를 즐겼다. 해는 오래도록 머물러 주었다. 황금빛으로 변해 가는 석양도 사람들을 집 안으로 몰아넣지는 못했다. 잔디 공원과 이자르 강을 사이에 두고 산책길과 자전거 길이 나란히 이어졌다. 강가 쪽 잔디밭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틈만 나면 집밖으로 나왔다.
아이와 걸어서 등하교를 했다. 공원을 가로질러 이자르 강이 내려다 보이는 산책길로 오르면 나무가 무성한 길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사방이 초록이었다. 겨울 내내 봄을 기다렸는데, 봄이 오자 몸도 마음도 시들해졌다. 기다리는 일이 더나은 경우도 있는 모양이었다.
글쓰기도 주춤했다. 일기도 수기도 아닌 글들. 석 달 넘게 들고 다닌 노트북을 펴기가 지겨워 책만 펼친 날도 있었다. 그때 언니가 10년 전에 쓴 내 시들을 보내왔다. 예전에 이메일로 받은 것을 여지껏 보관했다가 한 편 한 편 사진에 담아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이런 시들을 썼구나. 어떤 것은 기특하고 어떤 것은 찬란했다. 다시 쓰라면 못 쓸 것 같았다.
시로 돌아가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쓰고 싶다고 써지는 게 시라면 다행이게. 시가 그리 만만한가. 감도 삘도 사라지고 없었다. 이럴 경우엔 기다리는 것 만한 고역이 없다. 시집을 들고 산책을 하다나무들의 뿌리와 몸통과 잎과 줄기를 찍었다. 물웅덩이에 고인 물이 반짝 빛나는 것도 좋았다. 웅덩이 위로 나뭇잎이 어른거리다 사라지는 것도, 4월에 강가에 홀로 섰던 나무가 한 뼘이나 자라 흔들리며 여물어 가는 모습도 흐뭇했다.
어쩌다 시를 몇 개 줍는 날도 있었다. 강물 속에 반짝이는 것들.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조약돌. 그 시간들을 재빨리 건져 올리면 어떤 시들은 물고기처럼 혹은 모래알처럼 손가락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비가 오는 날엔 우산을 들고 다리 위에 서 있기도 했다. 강물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의 수다를 듣느라 어둠이 다리 밑까지 밀려오는 줄도 몰랐다. 그런 날엔 빗방울들이 강물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비행했다.
꽃을 보며 걷는 날도 많았다. 매일 꽃과 함께 걸었다. 다리를건너면 아이 학교까지 큰 길가에 꽃집이 세 개나 있었다.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는 카페나 레스토랑들처럼 꽃가게들도 가게 앞에 꽃바구니와화분들을 내놓았다. 꽃집 앞을 지날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같은 꽃이라도 오전에 다르고 오후에 달랐다. 오늘 보이던 꽃이 다음날 사라지기도 했다. 몇몇은 전날보다 더 피어나고, 몇몇은 고개를 꺾었다. 그때 만난 꽃들. 튤립, 라벤더, 로즈와 작약과 카네이션. 그리고 탐스러운 색색의 다알리아들.
강가 서점에는 낮고 커다란 창이 세 개나 있었다. 일주일마다창가에 꽃을 꽂듯 새 책을 장식했다. 책들과 눈을 맞추는 일은 하루 두 번 일과가 되었다. 어떤 날은 하루키가, 어떤 날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어떤 날은 한나 아렌트가 있었다. 창가에 머무는 햇살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책방의 창가에 서서 아이가 테이크 아웃 조각 피자를 먹거나, 때 이른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동안 무거운 책가방을 창 밑에 두고 책들과 눈을 맞추던 오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