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오월은 계속 비 소식입니다. 덕분에 어디나 초록이 무성합니다. 첫 항암을 했어요. 부작용 없이 잘 먹고 산책도 했고요. 항암을 하면서도 저의 산책은 계속될 거예요. 너무 염려는 마세요. 시작이 좋으니 끝도 좋겠지요.
2021. 5. 12. 첫 항암을 마치고 걸었던 산책길.
그리운 샘.
첫 항암을 마쳤습니다. 긴장을 많이 한 채로요. 항암 전날 암병동에 가서 채혈도 했어요. 같은 날에 채혈을 하면 하루가 걸린다고 해서 하루 전날 갔답니다. 둘 다 오전에 했어요. 채혈은 금방 끝났고, 항암은 세 시간 반이 걸렸어요. 오전 8시부터 11시 30분. 앞으로 매주 이런 루틴이 될 거 같아요. 이틀 동안 병원을 가는 거죠. 3주에 한 번 하는 줄 알았는데 매주 간다는 소리를 듣고 처음엔 멘붕이 왔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나 싶었죠.제가 이겨낼 수 있을지 자신도 없었고요.
항암을 매주 받는다는 건 독일의 어머니 날에 알았어요. 5월의 둘째 주 일요일이었죠. 카타리나 어머니 댁에서 바바라가 그러더라고요. 카타리나 어머니가 항암 주기를 물으시길래 제가 3주에 한 번이라고 답했더니 바바라가 아닐 텐데, 매주 받을 텐데, 그러는 거예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난 대체 뭘 들은 건가 싶었어요. 의사가 9주를 두 번 하고 총 18회를 한댔는데. 그럼 맞잖아요, 9×2=18! 정신이 없어서 받아 적기만 하고 주기를 확인을 안 한 거예요. 다음날 클레멘스가 전화로 확인하니 매주가 맞대요.
암이라는 걸 알았을 때보다 충격이 더 컸어요. 암세포보다 제가 먼저 끝장나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항암 하는 날 아침 전날 채혈을 했던 여의사 샘이 또 오셨길래 물었죠. 한국에서는 보통 3주에 한번 항암을 한다고 들었는데 독일에서는 매주 항암을 하면 제가 견딜 수 있을까요?(실제로는 '살아남을 수 있겠냐'고 물었어요.) 의사가 웃으며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제 경우엔 매주 하는 게 맞다고요. 키와 체중을 고려해서 약의 용량을 정하나 봐요. 그래서 체중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고요.의사 샘도 쾌활하시고, 간호사 중 한 분도 친절하셔서 안심이 됐어요.
2021. 5. 9 독일의 어머니날 카타리나 어머니께 보낸 엽서와 바바라가 산 꽃.(사진 찍는 걸 깜박하고 보내서 카타리나 어머니댁에 가서 찍었다)
항암을 하는 곳은 대기실처럼 넓은 곳이었어요. 간호사 데스크를 중심으로 안마 의자 같은 게 7~8개 정도 창문과 벽을 따라 놓여 있고요. 의자는 가죽 소파처럼 생겼는데 발과 머리 부분의 높낮이 조절이 가능했어요. 어깨 앞에 심은 카테터(항암 포터)에 주삿바늘을 연결해서 링거액으로 대여섯 개쯤 항암 수액을 맞았어요. 링거대를 밀며 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었고요. 항암 전날 채혈을 할 때는 어떤 독일 할머니가 항암을 받으시며 신문을 보시더라고요. 한가한 카페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라 조금 생소했어요.
제가 항암을 할 때는 주변에 책을 읽거나 쉬는 분들이 많았어요. 병원 안에는 인터넷 연결이 안 되니까 폰은 아예 꺼내지도 못하고요. 저는 항암 하다 두 번 정도 졸았고, 화장실도 두 번 다녀오고, 자연요법 관련 책자를 읽었어요. 책을 들고 가는 걸 깜빡했거든요. 항암을 맞는 동안 아프거나 불편한 건 없었어요. 항암 후 보호자가 꼭 있어야 하는지도 간호사에게 물어보았죠. 언니가 따라와서 인터넷이 되는 산부인과 대기실에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자가운전만 아니라면 혼자 귀가해도 된대요. 역시 독일답다 싶었어요.
항암 후에도 부작용이나 다른 증상은 없었어요. 어지럽거나 메스껍지도 않았고요. 언니가 기다리는 대기실로 가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사과와 바나나도 먹었어요. 차맛도 과일맛도 항암 전과 똑같았어요. 클레멘스가 픽업을 와서 무사히 귀가했고요. 집에 오자마자 현미밥과 미역국을 먹었어요. 맛있더라고요. 오후에는 피곤이 몰려와 잠을 잤어요. 언니와 클레멘스가 교대로 산책을 가라며 깨우러 왔다가 가만히 놔두더라고요. 산책을 가긴 갔어요. 저녁 7시에요. 클레멘스가 걱정해서 멀리는 못 가고 산책길 입구를 열 번 왔다 갔다 했어요. 한국에서 재수술 후 병원 복도를 걷던 일이 생각났어요. 그날들을 무사히 건너와서 독일에서 항암을 시작한 게 꿈만 같네요. 제가 그토록 원하던 순간이니까요.
2021. 5. 8. 한국의 어버이날에 아이에게 받은 엽서.
샘.
독일의 어머니날인 무터 탁 Muttertag에는 카타리나 어머니를 찾아뵈었어요. 카드는 금요일에 미리 받으셨고요. 카드의 절반은 클레멘스와 알리시아와 제가 축하 메시지를 나눠 쓰고, 절반은 알리시아에게 그림을 부탁했죠. 축하 글이 그렇잖아요. 특별할 게 있나요. 어머니날 축하드려요. 멋진 하루 보내시길요. 끝. 그래도 좋아하셨어요. 힐더가드 어머니는 전화를 드릴 때마다 카드 얘기를 하신답니다. 요즘도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신다고요. 저도 알리시아에게 카드를 받았어요. 한국의 어버이날이 토요일이었어요. 한글학교 온라인 수업이 있는 날이라 다 같이 카드를 만들었나 봐요. 별 말은 없었어요. 사랑하는 엄마! 어버이날을 축하해. 알리시아가. 제가 항암을 하던 어제 알리시아는 친구 집에 파자마 파티를 가서 아직도 안 돌아왔답니다.
지난 주말에는 쇼핑도 갔어요. 알리시아도 저도 잠옷이 필요했거든요. 코로나 기세가 수그러지지 않아 쇼핑을 갈 때도 코로나 검사 확인서를 보여줘야 한대요. 시내 곳곳에는 코로나 무료 테스트 검사장도 생겼어요. 폰으로 접수를 하고 양쪽 코를 테스트하고 결과는 15분 만에 폰으로 왔어요. 레스토랑과 카페는 마스크만 착용하면 테이크 아웃 주문이 자유로운데 다른 가게나 옷 매장은 입장이 까다로웠어요. 입구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음성 결과를 보여주고, 인적 사항도 적어야 했어요. 매장 내 쇼핑 시간은 30분. 날씨는 온화했고 마리엔 플라츠와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몇 군데 들러도 못 사고, 마지막으로 들른 가게는 저만 들어갔어요. 언니도 알리시아도 지쳐서 벤치에 앉아 기다렸어요. 항암 하기 직전이었는데 셋 중 제가 제일로 생생했답니다.
간밤에 잠은 많이 못 잤어요. 자기 직전에 언니가 준 뜨거운 차를 머그컵 가득 마시고 잤다가 화장실을 네 번이나 갔거든요. 오후에 낮잠을 너무 많이 잔 탓이기도 하고요. 밤새 아프거나 아침에 일어나도 불편한 건 없었답니다. 부작용은 언제 오나? 아침에 일어나 생각했지요. 오른손이 저린 건 한국에 있을 때부터였으니 항암 부작용이라 우기긴 그렇네요. 어떤 부작용이 오더라도 의연히 맞서고 받아들일 생각이에요. 주말에는 모자 가게도 들러보고 가발 가게도 찾아봤어요. 가을에는 항암도 끝나고 머리도 나겠지요. 항암 하러 가는 날 알리시아가 묻더라고요. 엄마 머리는 오늘부터 빠지는 거냐고요. 글쎄요. 아직은 튼튼하게 잘 붙어있네요. 알리시아가 돌아오면 기뻐할 거 같아요. 샘, 독일의 오월은 계속 비 소식입니다. 덕분에 어디나 초록이 무성합니다. 항암을 하면서도 저의 산책은 계속될 거예요.너무 염려는 마세요. 시작이 좋으니 끝도 좋겠지요. 샘이 꿈꾸시는 힐링센터에 저도 동참하고 싶어요. 언제나 건강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