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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Oct 21. 2022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라고!

진짜로 안 아픈데?


제인 오스틴의 <엠마>를 읽는 사이 10월이 다 가고 있다(위). 프랑스 카페에서 먹은 항암 다음날 아침 식사(가운데). 두번째 항암 당일날 카페에서 먹은 점심 샌드위치(아래).



금요일 이른 아침 림프 마사지를 받고 산책을 갔다. 어디로 갈까 고민은 하지 않았다. 반대로 가야지. 병원 앞 프랑스 카페로. 작은 카푸치노 한 잔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바삭 구운 크라상 하나. (이상하게도 우리 동네 빵집들은 크라상이 맛이 없다. 특히 독일 빵집들. 그나마 이태리 카페와 터키 빵집은 나은 편.) 오래 앉아 글도 쓰고 책도 읽으려고 차도 같이 주문했다. 총 7.30€. 8유로를 주니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20대 여성이 티 없이 밝은 미소로 감사 인사를 전한다. 70센트의 미소는 정말 멋졌다! (차를 마시고 뜨거운 물을 한 잔 부탁했더니 똑같이 멋진 미소로 가져다주었다! 독일에서 팁이라는 친절은 반드시 내게로 되돌아온다는 진리를 다시금 뼛속에 새기는 시월의 아침이었다.)


사실 전날도 이 카페에 왔었다. 두 번째 항암을 마치고 오후 방사선 치료까지 두 시간을 여기서 보냈다. 카푸치노 한 잔과 작은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먹었는데 얼마나 맛있던지! (이럴 땐 나도 내가 항암 환자가 맞나 싶음..) 오전 8시에 시작한 항암은 정확히 12시에 끝났다. 몸이 벌써 적응을 한 건지, 약한 항암의 효과 덕분인지 첫 번째 항암보다 확실히 덜 피로했다. 이번 항암 때는 시간 동안 책을 읽고 두 시간은 잤다. 화장실은 매시간 총 세 번 가고. 방사선 치료는 오후 2시였다. 얼마나 환상적인 시간 배분인가. 난 왜 이렇게 운이 좋은지. 병원 뒤편 숲길로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카페로 걸어오며, 이렇게 운이 좋고도 이 안 나으면 운명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잖나, 죽음보다 이 먼저 찾아온 것도 운이 좋았던 거라고 우길 수 있으니까. 두 번째 사는 기회를 얻은 셈이므로.


약한 항암의 효과는 컸다. 첫 번째 항암 때는 이틀 동안 피곤했는데 두 번째는 피로감이 없어서 방사선을 마치고 걸어서 돌아와서도 잠을 자지 않았다. 잠이 안 오는 걸 어쩌나. 대신 침대용 큰 쿠션에 기대어 다리를 높이 올리고 두세 시간을 쉬었다. 재밌는 동영상도 보면서. 저녁을 먹고는 나 혼자 힐더가드 어머니와 안부 전화도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 피곤해 보이는 남편과 공부로 바쁜 아이를 대신해서. 밝고 힘 있는 내 목소리를 들으시고 어머니가 기뻐하셨다. 어머니와는 이런 얘기 저런 얘기로 22분 42초간 통화를 했다. 여자라는 연대감은 훌륭하다. 이제는 힐더가드 어머니와 둘이서도 마음의 부담 없이 20분의 통화는 느끈하게 할 수 있다. 코로나가 시작되던 2020년 3월부터 지금까지 1년 7개월이란 시간이 준 선물.



프랑스 카페를 나와 산책로로 가는 길엔 동네를 하나 지나야 한다. 여기가 또 얼마나 예쁜지!



첫 번째 항암을 마치고 글을 올리자 한국의 언니들이 전화와 톡을 했다. 우리 조카의 엄마인 선희언니가 먼저 전화를 했다. 내 상태가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을 안 언니가 안도하며 항암 중인 언니 절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친구분은 항암은 물론 방사선 치료 때도 이틀은 구토 때문에 물만 마신다 했다. 내가 놀란 건 방사선 치료가 끝나면 3시간 동안 병원에서 자고 간다는 대목이었다. 나는 전이된 가슴뼈와 척추 근처의 림프절 두 군데에 방사선 치료를 아야 해서 각각 10분씩 길어야 20분이면 끝나는데. 치료가 끝나면 벌떡 일어나 5킬로를 걸어서 귀가할 정도로 멀쩡한데. 거기다 아무거나 잘 먹고. 병원에서 자는 건 상상도 할 수 없고, 방사선 치료 중이나 후에도 통증은커녕 피로감도 없다. 구토는 당연히 없고.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면 첫 방사선을 할 때처럼 눈을 감고 누우면 우주를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를 우주로 초대하는 소리 같다. 불안이나 공포 같 건 설 자리가 없다.  짧은 시간에 깜빡 졸기까지.


다음은 나의 열혈 지지자인 J언니(사실은 언니를 위해 이 글을 쓴다). 새벽 두 시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이 깨는데 언니가 내 첫 항암 글을 읽고 장문의 톡을 썼네. 요지를 한 마디로 압축하면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라고, 이 바보야!' 아침에 일어나 내가 답했다. 안 힘든데 힘들다고 해야 하나? 안 아픈데 아프다고 해야 하냐고? 통증도 없고, 구토도 없고, 입맛만 좋은데? 나도 알지. 이걸 누가 믿겠냐고. 우리 언니도 작년에 독일까지 와서 내 항암을 도와주며 자기 눈으로 보고서야 믿었는데. 통증 없지, 구토 없지, 잘만 먹지. 우리 언니 덕분에 심지어 1차 항암 5개월 동안 매월 1킬로씩 찌기까지 했다! (그 살들은 아직도 내 몸에서 사라져 주실 생각을 안 하신다는 게 함정. 그런 우리 언니도 이번 2차 항암 때 또 오시겠다고 난리를 쳐서 말리느라 내가 얼마나 진땀을 쏟았는지.)


나도 안다. 항암의 삼종 세트가 통증, 구토, 체중 감소라는 걸. 선희언니 친구분도 20킬로가 빠졌다고. 거기다 탈모라는 공포는 어떻고. 다행히 난 1차 항암 때도 머리카락이 1/3만 빠져서 완전 탈모를 경험한 내 항암 동료 이어리스보다 머리카락이 두 배는 빨리 자랐다. 짐작컨데, 내가 특별한 부작용 없이 항암을 할 수 있었던 건 약한 항암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처럼 공격적인 항암이 아닌 소극적인 항암법. 나만 부작용이 없었던 건 아니고 나보다 나이가 스무 살이나 많은 70대 중반인 이어리스도 탈모 말고는 아무 부작용이 없었다. 그녀와 나는 똑같은 자궁암이었고, 항암 약도 같았다. 나는 전통적인 수술과 항암을, 그녀는 레이저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순서대로 했다. 나보다 스무 살이나 많으면서도 체력은 나보다 좋았던 그녀의 몸상태가 좋은 결과를 가져왔던 게 아닐까 싶다. 독일은 나처럼 50대 중반의 암환자를 보기가 어렵다. 70-80대 환자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그 연세의 연로한 분들이 부작용을 겪으시리란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두번째 항암날의 산책로(위/가운데). 가을 향기와 공기가 맛있어서 벤치에 앉아 바라본 풍경은 또 어떻고(아래)!



2차 항암을 하며 아쉬운 건 딱 하나. 마리오글루 샘이 안 계시다는 것. 남편은 어디로 가신 건지 물어봐라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디로 가셨다는 것을 안 순간 다시는 샘을 못 본다는 게 기정 사실이 되어버리니까. 그럼 너무 아쉽고 기운이 빠질 테니까. 새로 담당이 되신  크고 시원시원한 30대 여의사 Dr. 링크 Link와는 본 지는 오래되었어도 별다른 친근함이나 다정함을 못 느껴 데면데면한 사이다. 매주 항암 때도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대신 이번에는 새로 온 젊은 여의사 항암 포터에 주삿바늘을 꽂아주면서 말했다. 자기 이름은 Dr. 슈나이더다. 만일 무슨 일이 있으면.. 그다음 말은 못 들었다. 감동해서. 좋은 뜻인 것 같았다. 마스크를 하고 있는데도 상냥한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이나 <오만과 편견> 같은 민음사 표지의 아름다운 여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두 번째 항암은 간호사 이사벨라와 진행했다. 우리 암센터에는 4명의 간호사가 있는데 가장 키가 큰 40대 후반 간호사가 제일 무뚝뚝한 편이라면, 또 한 명의 40대 간호사는 유일하게 친절한 편에 속한다.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50대로 보이는데 기숙사 사감이나 깐깐한 여학교 교감샘처럼 인상이 단호하시다. 그날은 이중 한 명과 만난 것. 이상하게도 나는  두 명의 간호사를 아직도 구분을 못하는데, 둘의 인상이 너무 비슷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을 보며 느낀 건 50대가 되어서 친절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것. 이건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진리다. 그분들 탓이 아니라 호르몬 탓이란 건 50대가 되어봐야 아는데 이게 유일한 비애라면 비애. 그날의 담당은 이사벨라였다. 편의상 다른 간호사는 이라이자 라 하자. 이사벨라는 심술궂게 보이기 쉬운 미간에 깊이 아로새겨진 주름과 알 듯 말 듯 심중을 헤아리기 힘든 미소를 지녔. 차라리 미소를 보여주지 않는 편이 낫겠다 싶은 그녀가 아무 말 없이 알약 세 개를 던져줄 때. 그런 때는 정말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이틀 동안 먹으란다. 근데 왜 세 개? 실수란다. 두 개만 먹으란다. 참을성 없는 환자가  물을 밖에. 언제 먹는지는 알아야지. '무슨 약인가요? 부작용 약인가요?' 그렇다네. 구토 나면 먹으라고. 구토 나냐, 물은 적은 없었고. 착한 환자처럼 고맙다며 챙겨 왔다.


두 번째 항암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걸은 김에 주치의에게 들러 다리 부종 치료를 위한 림프 마사지 6회분 무료 처방전도 받았다. 이걸 테라피 하는 곳에 제출하면 건강보험에서 지원해준다. (6회분 본인 부담금은 45€). 또 내친김에 6개월에 한 번씩 무료로 받는 압박 팬티스타킹도 찾으러 갔다. 1주일 전에 주치의에게 처방전을 받아 주문했는데 본인 부담금은 57유로. 이것도 건강보험에서 부담해준다(원래 가격은 170유로란다). 독일에서 항암을 하며 가장 좋은 건 암수술과 암 치료가 전부 무료라는 것! 독일의 의료 시스템은 느리지만 할 건 다 한다는 게 내가 받은 인상이다. 매달 천문학적인 보험료를 내는 사 보험료 환자들은 당연히 치료도 빠르고 어디서나 환대를 받겠지. 힐더가드 어머니의 사 보험료 가격은 아직 못 여쭤봤지만, 카타리나 어머니와 오토 아버지는 당신들이 하도 강조하셔서 알고 있다(두 분의 건강보험 사 보험료는 매달 2000유로).


사진은 못 찍었지만, 어제 산책할 때 본 풍경 하나. 코뿔소 코 같은 투박한 BMW 차 앞모습. 앞창에 노란 낙엽들이 떨어져 있으니 그 모습까지도 귀엽게 보이더라는. 마치 슈렉을 보는 느낌. 또 하나. 지평선과 수평선을 보는 듯한 평이한 앞모습의 폭스바겐 VW 차 위에도 낙엽은 수북했다. 그 순간 독일 국민차의 대명사인 그 차가 풍기는 단조로움이 대번에 용서가 되더라는. 이제 카푸치노도 다 마셨고, 크라상도 먹었고, 식은 차도 마시고, 글도 마쳤으니 다시 걸어서 집으로 갈 시간이다. 우리 주치의 내과 앞 빈티지 가게에서 가볍고 따스하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롱 니트 가디건을 봤는데, 11월에 닥쳐올 추위에 대비해서 하나쯤 장만할까 한다. 지금 입고 있는 코트가 한겨울 용은 아니라서 안에 받쳐 입기 좋을 것 같았다. 한국 슈퍼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정직하게 번 월급으로 내돈내산의 즐거움도 누리고 기분도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 두 번의 항암과 제인 오스틴을 읽는 사이 시월도 가고 있구나.



두번째 항암 다음날 아침의 산책로. 카페로 가는 산책로의 마지막엔 로또 가게가 있다. 내 인생의 로또는 무엇? (암이라는 오바는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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