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서 첫 김치

독일에서 뭐 먹고 살지

by 뮌헨의 마리


뮌헨의 첫 김치는 조카 덕분이었다

까나리 액젓은 한국 슈퍼, 나머지는 독일 슈퍼에서


뮌헨의 첫 김치는 부산에서 온 조카 덕분이었다. 1월에 뮌헨에 와서 8월에 첫 김치라니. 김치에 대해서라면 나도 한 마디 걸칠 수 있다. 처음 독일에 왔을 때 3년 내내 김치만 담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뮌헨에 오자 게을러터졌다. 이유는 글쓰기였다. 시간이 없다는 것. 그런데 부산에서 조카가 오니 이모로서의 의무감이 발동했다. 조카 사랑은 된장찌게와 김치 맛 아닌가.


조카는 이태리로 갔다가 뮌헨이 좋아 뮌헨으로 왔다. 한국에서 다시 독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왔으니 비자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었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주소 등록. 비자 업무와 동일한 관청에서 주소 등록을 끝냈다. 조카가 할 일은 집 우편함에 본인의 성을 기입하는 것. 오전에 주소 등록을 갔더니 우리 앞에 대기자만 60명이었다. 오전 10시에 번호표를 뽑고 오후 4시경에 끝났다. 이런 게 독일이다. 빨리 빨리란 없다.


은행 계좌를 열기 위해 은행에도 들렀다. 은행 종류가 많아 고민하다 지점이 많은 슈파르카세Sparkasse 은행으로 정했다. 조카 나이가 만 25세가 안 되어 수수료는 면제된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만 25세가 되면 수수료를 낸단다. 조카 덕분에 득템하는 상식이다.
은행에서 추가로 요구한 것은 세무서에서 발급하는 개인 세금 ID 번호. 조카가 알바를 할 한국 식당에도 제출해야 한단다. 절차는 간단했다. 여권을 들고 세무서인 피난츠암트 Finanzamt(Deroystr.12)에 가서 신청만 하면 그 자리에서 발급 받을 수 있다. 중앙역에서 S반으로 다음 역인 하커브뤽케와도 가깝다.


남편의 나라라고 뭐든 남편이 알아서 해주니 이런 절차들을 알 도리가 없다. 이번에는 혼자 비자 신청도 해 보고 조카 일을 도와주느라 같이 다니다 보니 독일에 처음 오는 사람이 해야 할 과정을 상세히 알 수 있었다. 거기다 김치까지 담겠다는 의지가 샘솟은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소득이다.



조카와 아이를 데리고 점심때 빅투알리엔 마켓에서 생선 튀김을 먹고 걸어오다 채소 가게에서 알타리무를 발견했다. 사실은 크고 먹음직스러운 과일 쪽의 무화과에 먼저 꽂혔다. 조카도 나도 무화과를 좋아했다. 1개에 1유로라니. 조카가 비싸다 했을 때 나 역시 좀 비싸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1개씩만 디저트로 먹을까. 아이는 싫다고 했다. 노천 시장의 무화과는 갓 딴 것처럼 신선하고 맛있었다.

야채 코너를 둘러보다 알타리무를 보았을 때 갑자기 김치를 담아보고 싶었다. 알타리는 4개가 한 단이었다. 무가 단단하고 줄기와 잎은 싱싱했다. 가격도 착해서 3단에 7.50유로. 그날 저녁 퇴근하는 남편에게 배추 4단을 사 오라고 부탁했다. 저녁에 알타리와 배추를 절였다. 얼마 전 한국 슈퍼에서 까나리 액젓을, 독일 슈퍼에서 굵을 소금을 사놓은 것은 얼마나 절묘했는지.
재미있는 것은 남편이 가져온 영수증을 확인하니 배추 4통(2.90유로)과 생강 한 조각( 2.76유로) 가격이 얼추 비슷하다는 것.


알다시피 김치는 배추 절이기에서 승부가 결정된다. 숨이 너무 죽지도 기가 너무 살아서도 안 된다. 팔팔함이 적당히 가라앉아야 맛있는 김치가 된다. 그걸 딱 부러지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게 내가 김치 담그기에서 느끼는 매력이다. 뭐 어떻게 담가도 맛있다는 게 김치의 또 다른 묘미라면 어쩔 수 없고.

재료 준비도 복잡하면 안 된다. 김치 고수들의 비법은 그들만의 것이고 모든 일은 만만해야 엄두가 난다. 김치 담그기가 그렇다. 왕소금과 마늘과 고춧가루만 있으면 된다. 젓갈이 없으면 피시 소스로, 찹쌀가루 없으면 밥풀이나 밀기루로, 생강은 패스. 그런 불굴의 순발력만 있으면 외국에서도 김치 담그기는 일도 아니다.


밤에 물기를 빼놓고 너무 마를까 봐 봉지에 담아놓고 다음날 조카가 들고 온 찹쌀가루로 찹쌀풀을 끓여서 양념을 만들었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찹쌀풀에 고춧가루를 넣고 액젓과 소금과 설탕도 적당히 넣었다. 그 일은 모두 셰프급 조카가 알아서 척척 했다.
조카도 나도 마늘과 생강을 갈 만한 믹서가 없어 마늘을 한쪽씩 부수는 호두 깨기 비슷한 도구로 한쪽씩 부수었다. 이런 뜻밖의 불편함을 나는 즐기는 편. 그것도 없었다면 집에 있는 어느 돌로 찧어 볼까 궁리하던 중이었으니까. 서둘 일 없이 한가함으로 무장한 김치 담그기를 즐기는 방법은 이토록 무궁무진하다.


맛이 어땠느냐고? 당연히 훌륭했다. 막 양념에 치댄 김치를 따끈한 밥 위에 척척 얹어 먹어본 사람만이 안다. 입에 착착 감기며 밥을 부르는 갓 담은 김치 맛! 그것도 8월 중순을 막 지나고 있는 뜨거운 한여름에 매워서 입을 호호 불어가면서 말이다.
한 가지 단점은 맛있는 김치는 수육을 부른다는 것. 독일에도 삼겹살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고. 슈퍼에 가는 남편에게 삼겹살 한 덩어리를 사오랬더니 얼마나 참하게 썰어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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