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겐 균형 감각이란 게 있다. 어른들이 가끔 잊어버리는. 하루가 지나고 아이에게 한심했던 한밤의 간장 계란 비빔밥 사건을 털어놓았다. 아이는 뭘 그런 걸 가지고 호둘갑을 떠냐는 듯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괜찮아 엄마! 라면도 아니고. 그래도 밥이잖아."
아, 밥이니까 괜찮구나. 아이의 명쾌한 선언에 갑자기 속이 편안해지고 마음도 괜찮아졌다. 다음날은 가벼운 마음으로 자연치유센타에 다녀오려고 정오에 집을 나섰다. 집에 있어봐야 속만 답답하고 걷고 싶었다. 의사와 면담은오후 3시.시간이 넉넉해서 집에서 병원까지 어디로 어떻게 걸을지고민하며 거리로 나섰다. 신기하게도 그런 날은 꼭무슨 일이 생긴다.
우리 집 골목길을 나서자내 뒤에서 한국말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리가. 우리 동네에서 그럴일이 없는데.뒤를 돌아보니 아는 언니였다. 언니를 보자마자 아이고, 이렇게 딱 만나는구나 싶었다. 얼마 전에 항앙 시작하면 한 번 들르마 하셨는데, 내가 항암 후 상태가 가늠이 안 되어서 항암 중 뵙기는 어려울 거 같다고정중하게 방문을 거절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어쩌겠나. 가까운 카페에서 함께 차를 마시고 그리고도 시간이 남아 우리 집으로 와서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대접했다. (언니를 대접하며 나도 김치찌개 한 공기를 먹었다.)호의는 이렇게 되갚게 되어있다. 남의 마음이나 호의를 무시하지 말자.그날 배운 교훈이다. 언젠가는 꼭 갚아야 된다. 결론은일찍 갚는 게 낫다.
산책길, 햇살 가운데 그림자가 나.
자연치유센터에는 정각에 도착했다. 자연치유센터 여의사와는 그날 처음 만났다. 지난 2년 반나를 담당했던 Dr. 뵐펠 선생님이 퇴직하시고 새 의사를 선택해야 했는데의사 두 명 중 여의사를 선택했다. 내 암이 원래 자궁암이니 여의사가 낫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의사는 호의적이었다. 나이는 50대? 그녀에게 <항암사흘단식>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그녀도 동의했다. <항암사흘단식>은 임상 효과를 본 사례가 있으니 내게도 도움이 될 거라며.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의사를 만난 게 반가웠다.
그녀는 올해 9월부터 자연치유센터의 고주파 열치료가 중단된 것에 대해서도사과했다. 나는 이곳 뮌헨의 자연치유센터에서 오랫동안 고주파 열치료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기계가 고장이 났는데 고치는 것도 어렵고 새 기계를 구입하는 건 더 어려운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항암 후에 이곳에 입원해서 일반 환자에게 오픈하지 않는 전신 고주파 열치료를 받는 수밖에. 새로 만난 여의사와 미슬토 면역 주사에 대해서도 의논했다. 보통 미슬토 주사와 비타민 C 고용량 치료는 항암 중에는 중단했기 때문이다.미슬토는 집에서 주3회 맞고 있는데 항암 중에 맞아도 되는 검증된 것으로 바꾸고 용량도 줄여서주1회맞자고 했다. 암센터의 담당샘이 권했던 셀렌과 비타민 D 알약 섭취는 그녀도 동의했다. 특히 셀렌이 중요하단다. 그녀는 내 자궁암에는 '린젠 프로틴'을 섭취하는 것이 좋은데 그것에 대해서는 암센터 담당의와상의를 하는 게 낫겠다고 조언했다.
항암 후 중요한 두 의사와의 면담이 모두 끝났다. 가정의(주치의)와 자연치유센터 새 담당의. 내 경우 매주 항암을 해야 하고총18회를 받아야 한다. 백혈구 수치가 아무리 좋아도 빨라야 5개월이 걸린다. 그러므로 항암 중에 협력해야 할 의사가 암센터 담당의 뿐만은 아닌 것이다. 다른 두 의사들과의 협업도 심리적으로 중요하다. 이 모든 과정을 바쁜 남편의 도움 없이 나 혼자 해결할 수 있었던 것도 큰성과다. 코로나가 준 선물이라고 할까. 내가 암 선고를 받은 게 코로나가 시작하던 해여서 병원에서 수술과 항암과 방사선 치료 때 보호자 동반이 불가했던 게 당시에는 힘들었어도 결과적으로는 내 독일어를 향상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삶은 이렇게 아이러니로 채워진다.
늦은 오후의 산책길의 석양빛.
병원에서는 오후 4시에 집으로 출발했다. 아침부터 벼른 산책을 안 하면 나만 손해지. 그래서 걸어왔다. 1만보를 채웠다. 채우려고 채운 게 아니라 걷다 보니 채워졌다. 힘들었다. 집에 오자 기운도 없는데집에는아무도 없었다. 힘들다고 하소연할 가족이 없으니 더 진이 빠졌다.알고 보니 아이는 가라테 수업을 갔고, 남편은 집에서 10시간을 일하다 산책을 갔던 것. 사정을 알고 나니기분도풀렸다. 그날은 저녁을 거를 생각이었다. 어쩌다 이틀 연달아 점심 때 김치찌개를 한 공기씩 먹었고, 그후로 배가 불렀다.<항암사흘단식> 동안 저염식을 하다 김치찌개를 먹으니 너무 자극적이었던 것 같다. 저녁을 안 먹는다 생각하니우울해졌다. 먹는 즐거움이 이렇게나 컸나 새삼 놀랐다.
아이는 가라테를 다녀온 후 기분이 좋아보였다. 아이가 기분이 좋으니 내기분도 좋아졌다. 엄마가 저녁을 못 먹겠다는 말에는안됐다는 표정으로 적극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나서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다.
" 엄마, 나 대단하지 않아? 내가생각해도 나 너무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애!" 그건 인정.올가을에 8학년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내가 무슨 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아이가 또 말했다.
"엄마, 나 공부할 때마다 타이머 재잖아. 내가 6학년 때부터 타이머를 쟀는데 그게 얼마나 되는 줄 알아? 15일이나 돼!!! 놀랍지 않아?" 진짜 놀랐다. 1만 시간이라도 되는 줄 알고.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크게칭찬해 주었다. 아이가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좋은 일도 없으니까. 그런데 더 뜬금없는 건 다음이었다.
"엄마, 내가 생각해 봤는데 아침이랑 저녁은 무척 중요한 거 같아. 일어나서 처음 먹는 음식이랑 마지막으로 먹는 음식이잖아." 그건 그렇지. 그런데 다음 질문이 이랬다.
"엄마, 나 라면 하나 끓여 먹어도 돼?"
"저녁이 중요하다며? 그런데, 라면?"
"응!" 산뜻한 대답에배시시한 웃음까지. 졌다!
아이는 라면 면발을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게 네모 반듯한 모양 그대로 끓여와서 내 옆에서 오래오래 한 젓가락씩 먹었다. 면발을 너무 익히면 맛이 없다나. 그 냄새 아시잖나, 라면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선언했다. 엄마도 내일 라면 하나 끓여서 혼자서 다 먹을거야! 그리고도 아이 옆을 떠나지 않고 꼭 붙어서라면 네 젓가락을 얻어 먹는 데 성공했다. 어찌나 맛있던지! 그리고 다시 속이 더부룩해졌다. 라면을 먹기 전 부드러운 바나나와 토마토로 겨우겨우 달래놓았던 속이그렇게 살짝 헝클어졌다. 이것은 항암 잘 시작해 놓고 이틀 동안 음식으로 망한 이야기.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정신 똑바로 차려서 끝까지 잘해 보자고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과도 같다.다음날 라면은 먹었을까? 아니. 내 속은 아직도 완전히 괜찮지가 않다.양배추와 배추로 백김치라도 담아야겠다. 속이 시원하게. 죽단식 후에도 보식이 중요하다는 걸 이렇게 또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