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의 마리 Nov 10. 2023

아이에게 라면을 얻어 먹었다

젓가락으로 딱 네 번

끓인 사진은 다음에..



아이들에겐 균형 감각이란 게 있다. 어른들이 가끔 잊어버리는. 루가 지나고 아이에게 한심했던 한밤의 간장 계란 비빔밥 사건을 털어놓았다. 아이는 뭘 그런 걸 가지고 호둘갑을 떠냐는 듯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괜찮아 엄마! 라면도 아니고. 그래도 밥이잖아."


아, 밥이니까 괜구나. 아이의 명쾌한 선갑자기 속이 편해지고 마음 괜찮아다. 다음날은 가벼운 마음으로 자연치유센타에 다녀오려고  집을 나다. 집에 있어봐야 속만 답답 걷고 싶었다. 의사와 면담 오후 3시. 간이 넉넉해서 집에서 병원까지 어디로 떻게 걸을지 고민하며 거리로 나섰다. 신기하게도 그런 날은 꼭 무슨 일이 생다.


우리 집 골목길을 나서자 뒤에서 한국말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리가. 우리 동네에서 그럴 일이 없는데. 뒤를 돌아보니 아는 언니였다. 언니를 보자마자 아이고, 이렇게 딱 만나는구나 싶었다. 얼마 전에 항앙 시작하면 한 번 들르마 하셨데, 내가 항암 후 상태가 가늠이 안 되어서 항암 중 뵙기는 어려울 거 같다고 중하게 방문을 거절한 적이 있었다. 러니 어쩌나. 가까운 카페함께 차를 마고 그리고도 시간이 남아 우리 집으로 와서 점심으로 찌개를 대접했다. (언니를 대접하며 나도 김치찌개 한 공기를 먹었다.) 의는 이렇게 되갚게 되 . 마음이나 호의를 무시하지 말자. 그날 배운 교훈이다. 언젠가는 꼭 갚아야 된다. 론은 일찍 갚는 게 낫.



산책길, 햇살 가운데 그림자가 나.



자연치유센터에는 정각에 도착했다. 자연치유센터 여의사 그날 처음 만다. 지난 2년 반 나를 담당했던 Dr. 뵐펠 선생님이 퇴직하시고 새 의사를 선택해야 했는데 두 명 중 여의사를 선택했다. 내 암이 원래 자궁암이니 여의사가 낫겠다 판단했기 때문. 음 만난 는 호의적이었다. 나이는 50대? 그녀에게 <항암사흘단식>에 대해 솔직하게 말다. 그녀도 동의했다. <항암사흘단식>은 임상 효과를 본 사례가 있으니 내게도 도움이 될 거라.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의사를 만 게 반가웠다.


그녀는  9월부터 자연치유센터의 고주파 열치료가 중단된 것에 대해서도 했다. 나는 이곳 뮌헨의 자연치유센터에서 오랫동안 고주파 열치료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기계가 고장이 났는데 고치는 것도 어렵고 새 기계를 구입하는 건 더 어려운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항암 후에 이곳에 입원해서 일반 환자에게 오픈하지 않는 전신 고주파 열치료를 받는 수밖에. 새로 만난 여의사와 미슬토 면역 주사에 대해서도 의논했다. 보통 미슬토 주사와 비타민 C 고용량 치료는 항암 중에는 중단했기 때문이다. 미슬토는 집에서  3회 맞 있는데 암 중에 맞아도 되는 검증된  바꾸고 용량 줄여서 주1회  했다. 센터의 담당샘이 권했던 셀렌과 비타민 D 알약 섭취는 그녀도 동의했다. 특히 셀렌이 중요하단다. 그녀는 내 자궁암에는 '린젠 프로틴'을 섭취하는 것 좋은데 그것에 대해서는 암센터 담당의 상의 하는 게 겠다고 조언했다.


항암 후 중요한 두 의사와의 면담이 모두 끝났다. 가정의(주치의)와 자연치유센터 새 담당의. 내 경우 매주 항암을  18회를 받아야 한다. 백혈구 수치가 아무리 좋도 빨라 5개월이 걸린다. 그러므로 항암 중에 협력해야 할 의사가 암센터 담당의 뿐만은 아닌 것이다. 다른 두 의사들과의 협업도 심리적으로 중요다. 이 모든 과정을 바쁜 남편의 도움 없이 혼자 해결할 수 있던 것도 큰 성과다. 코로나가 준 선물이라고 할까. 내가 암 선고를 받은 게 코로나가 시작하던 해여서 병원에서 수술과 항암과 방사선 치료 때 보호자 동반이 불가했던 게 당시에는 힘들었어도 결과적으로는 내 독일어를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은 이렇게 아이러니로 채워진다.  



늦은 오후의 산책길의 석양빛.



병원에서는 오후 4시에 집으로 출발했다. 아침부터 벼른 산책을 안 하면 나만 손해지. 래서 걸어왔다. 1만보를 채웠다. 채우려고 채운 게 아니라 걷다 보니 채워졌다. 힘들었다. 집에 오자 기운 없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힘들다고 하소연할 가족이 없으니 더 진이 빠. 알고 보니 아이는 라테 수업을 갔고, 남편은 집에서 10시간을 일하다 산책을 갔던 것. 사정을 알고 나니 기분 풀렸다. 그날 저녁을 거를 생각이었다. 어쩌다 이틀 연달아 점심 때 김치찌개를 한 공기 먹었, 그후로 배가 불렀다. <항암사흘단식> 동안 저염식을 하다 김치찌개를 먹으니 너무 자극적이던 것 같. 저녁을 안 먹 생각하 우울해졌다. 먹는 즐거움이 이렇게 컸나 새삼 놀랐다.


아이는 가라테를 다녀온 후 기분이 좋아보였다. 아이가 기분이 좋으니 내 기분 좋아졌다. 엄마 저녁을 못 먹겠다는 말에 안됐다는 표정으로 적극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나서 뜬금없이  말했다.


" 엄마, 나 대단하지 않아? 내가 생각해도 나 너무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애!" 건 인정. 올가을에 8학년이 되고 나서여전히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내가 무슨 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아이가 또 말했다.


"엄마, 나 공부할 때마다 이머 재잖아. 내가 6학년 때부터 타이머를 쟀는데 그게 얼마나 되는 줄 알아? 15일이나 돼!!! 놀랍지 않아?" 진짜 놀랐다. 1만 시간이라도 되는 줄 알고.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해 주었다. 아이가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좋은 도 없으니까. 그런데 더 뜬금없는 건 다음이었다.


"엄마, 내가 생각해 봤는데 아침이랑 저녁은 무척 중요한 거 같아. 일어나서 처음 먹는 음식이랑 마지막으로 먹는 음식이잖아." 그건 그렇지. 그다음 질문 이랬다.


"엄마,  라면 하나 끓여 먹어도 돼?"


"저녁이 중요하다며? 그런데, 라면?"


"응!" 산뜻한 대답에 배시시 웃까지. 졌다! 


아이는 라면 면발을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게 네모 반듯한 모양 그대로 끓여와서 내 옆에 오래오래 한 젓가락씩 먹었다. 면발을 너무 익히면 이 없. 그 냄새 아시잖나, 라면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선언했다. 엄마도 내일 라면 하나 끓여서 혼자서 다 먹을거야! 그리고 아이 옆을 떠나지 않고 꼭 붙어 라면 네 젓가락을 얻어 먹는 데 성공했다. 어찌나 맛있던지! 그리고 다시 속이 더부룩해졌다. 라면을 먹기 전 부드러운 바나나와 토마토로 겨우겨우 달래놓았던 속 그렇게 살짝 헝클어졌. 이것은 항암 잘 시작해 놓고 이틀 동안 음식으로 망한 이야기.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정신 똑바로 차려서 끝까지 잘해 자고 스스로에게 거는 주도 같다. 다음날 라면은 먹었을까? 아니. 내 속은 아직도 완전히 괜찮지 않다. 양배추와 배추로 백김치라도 담아야겠다. 속이 시원하게. 죽단식 후도 보식이 중요하는 걸 이렇게 또 배워가는 중이다.  



라면으로 저녁을 먹은 다음날 아침 아이의 책상 위엔..
매거진의 이전글 항암 다음날 1만 3천보를 걸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