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소아를 보았다

까사 페르난두 페소아

by 뮌헨의 마리


페소아를 만나러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그럴 리가 있나. 그래서도 안 되지.


여행이란 이런 맛이지.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호텔을 나서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저녁 가족 모임 1시간 전에 호텔방으로 돌아와 기분 좋게 정돈된 침대에 엎드려 글을 쓰는 것.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담근 채 깜빡 졸기도 하는 것. 호텔방의 미니 와인바 코너에서 땅콩 봉지를 뜯는 것. 다들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에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새어머니 혼자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시작부터 새어머니의 심기가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리스보아 Lisboa가 리스본을 부르는 오리지널 이름이라는 것을 여기 와서 알았다. 핑크 도시답게 이름도 얼마나 예쁘던지. 리스본은 영어. 독일어로는 리사본 Lissabon. 페소아를 만나러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그럴 리가 있나. 그래서도 안 되지. 하마터면 못 갈 뻔했다. 둘째 날의 미션은 28번 트람을 타고 리스본의 좁고 경사진 골목을 달리는 일. 호텔 앞에 28번 트람 정류장이 있었으나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하고 시티 투어 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돌기로 했다.

건축일을 했던 새어머니를 따라 시티 투어 중 하차한 곳은 국립 타일 도자기 뮤지엄 Museu do Azulejo. 건물 외벽이 황폐해 보여 안에 뭐가 있겠나 하고 따라 들어갔다가 깜짝 놀란 곳. 수도원을 뮤지엄으로 바꾸었는데 타일 도자기의 끝을 보여 주었다. 시내로 돌아와 트람 28번을 타고 언덕을 올랐다. 남편에게 미리 페소아 뮤지엄 위치를 알려주고 도움을 요청한 덕분에 가장 가까운 곳에 하차. 관심 있는 사람이 없어서 나 혼자 관람했다.


페소아 뮤지엄인 까사 페소아 Casa Fernando Pessoa에서는 그를 그린 세 작품 앞에 서자 가슴이 뛰었다. 단순하고 정갈한 방과 타자기 앞에서도. 페소아를 만나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 그의 불안의 책을 손에 들어도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을 것 같았다. 표를 파시던 나이 드신 여자분의 친절도 감동적이었다. 비록 그분이 적어 주신 종이와 깨알 같은 글씨는 남편의 구글 검색 앞에서 큰 소용은 없었지만.


페소아를 보고 오는 길에는 경사길에서 노을빛으로 빛나는 건물의 지붕과 노을에 물든 핑크빛 도시를 감상하기도 했다. 내친김에 시내까지 내려와 페소아가 즐겨 찾았다는 카페 브라질레이라를 찾아갔다. 카페는 천정이 높아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이었고, 카페 앞 페소아 동상은 소박하고 친근했다. 여기서 알뜰 팁 하나. 까사 페소아를 방문한 표로 까사 주제 사라마구에 가면 단돈 1유로로 입장이 가능하단다.


저녁 일정은 약간 피곤했다. 인턴을 하는 형네 조카가 사는 곳을 방문했고, 대형 쇼핑몰까지 30분을 걸어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리스본까지 와서 쇼핑몰이라니! 저녁 10시에 밥을 먹고 택시로 호텔에 돌아온 시간은 자정. 졸면서 사진을 찾고 글을 적었다. 저녁 7시부터 12시까지 잃어버린 5시간이 아쉬웠다. 내일은 마지막 날. 까사 주제 사마라구를 둘러볼 시간은 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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