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초등학교의 아침 미사

우리 반 학부모 이네스와 화해하다

by 뮌헨의 마리


그 일을 통해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것도 있음을 배웠다.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많다. 사는 게 다 그렇지. 이것을 취하면 저것을 놓을 줄도 알아야지.



아이의 초등학교는 가톨릭 재단이다. 특이하게도 같은 재단의 유치원만 남녀 공학. 초등학교인 그룬트 슐레 Grundschule와 인문계 중고등 학교인 김나지움 Gymnasium, 상업계 중고등 학교인 레알 슐레 Realschule는 여학교다. 가톨릭 재단이니 당연히 수녀님 교사들이 많을 거라 걱정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적었다. 그게 왜 걱정이냐고? 세계문학을 읽어보시라. 남녀를 불문하고 지나치게 엄격해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성직자 교사들이 얼마나 많나. (그런데 예를 들려고 하니 작품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


예전에 몇 번 말한 대로 사실은 대부분의 수녀님들이 퇴직하셨기 때문. 젊은 성직자가 줄어드는 추세는 한국이나 독일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리하여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들 역시 일부 노수녀님 들을 포함 전부 여자 교사들이다. 내가 아이의 남녀 공학 김나지움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이유다. (아이가 김나지움에 무난히 진학해 줄 경우에 한해서.) 아이의 절친인 율리아나 엄마도 비슷한 고민 중. 율리아나 엄마는 우리 학교 여자 김나지움을 다니다 레알 슐레로 미끄러진 케이스다. 그래도 그게 낫단다. 반대는 여러모로 훨씬 힘들다고. '내가 경험자잖아!' 율리아나 엄마가 그럴 때마다 웃지 않을 수 없다.


율리아나 엄마가 생각 중인 김나지움은 우리 동네에서 멀지 않은 모양이다. 헝가리에서 돌 때부터 이주해서 뮌헨에서 살았으니 뮌헨에서 나고 자란 거나 마찬가지인 율리아나 엄마에게 나는 적극 묻혀갈 용의가 있다. 내가 뭘 아나. 남편 역시 뮌헨에서 초중등 과정을 거쳤지만 만 13세에 재혼하신 부모님과 미국으로 건너가서 대학까지 다녔으니 독일 사정에 어두운 건 마찬가지. 우리 시누이 바바라도 뮌헨에서 대학을 마치고 직장인으로 살고 있으나 싱글에다 아이를 낳고 키워보지 않았으니 이 분야는 꽝이다. 이런 건 애를 키워본 사람들만 아는 영역이라서. 아이는 멋도 모르고 신났다. '그럼 율리아나랑 같은 김나지움에 갈 수 있는 거야?' (제발 그러기를 엄마도 바란다!)



아참, 그래서 아이 학교에는 종교 수업뿐 아니라 미사도 많다는 것.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부모들의 참관도 적극 권한다. 나는 작년에 몇 번 참석했다가 올해엔 거의 안 갔다. 그 이유는 아는 사람만 아는데 작년 칠월 여름 방학을 앞두고 우리 반 학부모 중 알바 엄마 이네스와 사이가 틀어졌기 때문. 이네스도 나도 나이 많은 학부모라는 애환과 둘 다 방과 후를 시키지 않고 12시 30분에 애를 픽업했기에 매일 학교에서 만나는 사이였다. 내가 정신줄을 놓고 학교 앞 카페에서 글쓰기에 빠져있던 어느 날. 이네스의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달려갔는데 이 분이 불 같이 화를 내더라는 .


돌아보면 그때 이네스도 나도 갱년기 초기였다. 우리 둘 다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을 뿐. 다행히 나는 연말쯤 깨달았다. 내가 미쳤나 싶을 정도의 감정의 파도타기를 통해서. 뮌헨에서 1년 남짓 만나던 독서 모임까지 희생하면서. 그 일을 통해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것도 있음을 배웠다.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많다. 사는 게 다 그렇지. 이것을 취하면 저것을 놓을 줄도 알아야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법을 나는 모른다. 그 후에는 당연히 이네스와 불편한 사이가 되었고, 학교 앞이나 행사에서 만나도 서로 모른 척 얼굴을 돌렸다. 이네스도 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날 아침 내가 학교 미사에 간 것은 아이가 꼭 와야 한다고 하도 난리를 쳤기 때문이다. 바로 그날 아침 이네스를 만났다. 아이의 설레발 때문에 내가 제일 먼저 미사실에 갔다. 창문에 비치는 아침 햇살도 좋았다. 화해의 과정은 싱거울 정도였다. 두 번째로 온 이네스가 내 옆에 앉아도 되냐고 물었고, 내가 망설임 없이 환한 미소로 좋다고 답한 게 다였다. 이네스가 내 근황을 물었고, 나는 몇몇 일상을 들려주었다.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고맙다 이네스! 방학이 끝나기 전 우리가 화해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 그녀도 나와의 화해를 오래 모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망설임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오래 고민하고 생각한 사람의 행동이었다. 그날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 약간의 긴장감이 남아 있었다. 화해는 받아주는 자의 몫이 절반이다. 용기를 내 준 그녀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날 아침엔 클라우디아도 만났다. 학교 운동회 날 이른 아침에 나와 함께 봉사했던 엄마. 작년 우리 반 학부모 대표가 우리 둘만 쏙 빼놓고 그날 도움을 준 엄마들에게 인사말을 날리자 점잖게 남편분이 단톡 방에 등장하여 우리의 존재를 알렸던 헝가리 출신 엄마다. 클라우디아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내 옆으로 살그머니 와서 말했다. '너 그 톡 봤니?' 내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말했다. '그거 내가 우리 남편에게 시킨 거야! 우리만 쏙 빼고, 그게 뭐니?' 와하하! 그런 거였어? 역시 여자들이 칼자루를 쥐는 게 맞다. 그래야 집이고 세계고 자고로 평화가 찾아오는 법!



p.s. 결론적으로 나는 그날 미사에 집중을 못했다. 이 글을 올리려면 미사 사진도 한 컷 멋지게 찍어주셔야 하는데 옆에 있는 이네스가 내가 손에 폰을 쥐고 있는 꼴을 못 보기 때문.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애보다 폰으로 글쓰는 데만 관심이 있다고 믿는 듯해서. 사진도 와이파이도 안 되는 2G 폴더폰을 쓴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 그녀로서는 그럴 만도 하다. 아무튼 이네스 눈치 보느라 폰만 만지작 거리다 막판에 벌떡 일어나 사진을 쾅 찍어버렸다! 시어머니도 아니고 내가 왜 이네스의 눈치를 보아야 한단 말인가! 소심하게 중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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