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신청한 아이들만 소풍을 갔다

독일학교 이야기 2

by 뮌헨의 마리


뮌헨의 아이 학교는 가톨릭 재단이었다.



뮌헨의 아이 학교는 가톨릭 재단이었다. 이름이 길어서 외우기도 힘들었다. 앙거의 테레지아 게르하르딩거 그룬트슐레(테레지아 게르하르딩거 초등학교) Theresia-Gerhardinger-Gründschule am Anger. 초등 4년과 중고등 과정 김나지움이 여학생들만 다니는 학교. 아직도 이런 학교가 있다니. 가톨릭이 강한 바이에른 지방이라 그럴 지도 몰랐다.
학교는 음악 특성화 학교라 음악에 재능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학교 맞은편의 뮌헨 음악학원에는 아이들이 악기를 배우러 다녔다. 우리 아이만 음악에 무관심했다. 영원한 화가 지망생. 우리 반의 학생 수는 22명. 2학년은 A와 B 두 개 반이다.


학교에는 방과 후 프로그램이 있었다. 방과 후를 학교에서 운영하는 대신 비용은 학부모가 지불했다. 돈만 내면 방과 후를 신청할 수 있어 이 학교에 아이를 보낸다는 학부모도 있단다. 같은 건물에 사는 오스카는 집 근처의 마리아힐프 그룬트슐레를 다니는데 그 학교에는 방과 후가 없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호트 Hort 라는 방과 후 무료 돌봄 기관으로 간다. 맞벌이 부부가 아니면 자리를 얻기 힘든 곳이다.

방과 후는 오후 4시까지. 방과 후 담당 교사는 따로 있었다. 급식비는 별도. 우리는 첫 학기 방과 후를 건너뛰기로 했다. 남편이 독일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첫 해라 지출을 줄이고 앞으로의 향방을 가늠하기로 했다.


부활절 방학 때였다. 아이들은 방과 후 활동 때 만든 주머니에 초콜렛과 사탕을 담고 귀가했다. 방과 후를 신청하지 않은 아이들은 빈 손이었다. 다행히 같은 버스를 타고 하교하던 카타리나가 초콜렛 몇 개를 나누어 주었다. 아이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런 배려는 없구나. 첫 부임한 새내기 담임 선생님에게 아쉬움이 컸다. 이런 문제는 경험의 유무와는 상관 없다.

방과 후 아이들만 오후 견학을 간 적이 있다. 방과 후를 하지 않는 아이들은 당연히 일찍 귀가했다. 그것까지는 괜찮다. 방과 후를 신청하지 않았으니 방과 후에 아이들이 무슨 활동을 하던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학급 소풍을 가는 날. 방과 후가 끝나는 오후 4시에 귀가하는 프로그램이라 방과 후 신청자만 데리고 뮌헨 근교의 박물관으로 소풍을 간다고 했다. 남편이 그럴 리가 있겠냐고 다시 한번 물어보란다. 담임 선생님은 해맑은 얼굴로 그렇다고 확인해 주었다. 함께 못 가는 아이와 부모의 심경을 헤아리지는 않았다. 규칙이라면 따라야 맞다. 그건 나도 안다. 규칙보다 더 신기했던 건 선생님의 태도였다.

아이는 자기도 따라가고 싶다며 울었다. 무거운 학교 가방 대신 가벼운 백팩에 맛있는 것을 넣고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싶어 했다. 친구들도 선생님도 다 떠난 학교에서 오전 내내 다른 반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그렇게 우리 반에 왔던 어떤 아이의 침울했던 모습을 아이는 똑똑히 기억했다. 자기가 그렇게 될까 겁도 났을 것이다. 아이는 그날 학교에 안 가고 싶다고 했다.

방과 후를 시키지 않는 학부모 이네스가 학교에 두 번인가 항의 편지를 보낸 덕분인지 담임 선생님이 그날 소풍을 가지 않고 아이들 세 명과 학교에 남았다. 이네스는 기뻐했고 나는 복잡했다. 반 아이들도 담임 선생님과 같이 가고 싶었을 텐데. 가장 좋은 것은 다함께 소풍을 가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왜 따라갈 수 없는지, 미안하지만 양해하시라는 말 한 마디만 있었더라도 좋았을 텐데.

그날 아이는 학교를 갔다. 남겨질 뻔했던 아이들이 울지 않은 건 고마웠다. 그러나 여전히 내게는 미완의 과제가 남았다. 규칙 절대주의는 강건했다. 전체로 보면 그것도 중요할 것이다. 규칙을 존중하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가 강철 심장으로 자라길 바라지 않기에. 뮌헨 생활 반 년이 내게 준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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