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그림자놀이처럼

무르나우의 뮌터 하우스

by 뮌헨의 마리


인생은 그림자놀이처럼 흔들리다 가는 것.


가브리엘레 뮌터 <피아노 앞의 칸딘스키>, 무르나우성 뮤지엄 Gabriele Münter <Kandinsky am Harmonium> 1907, Schloßmuseum Murnau



뮌헨 근교에는 독일의 여성 화가 가브리엘레 뮌터 Gabriele Münter가 칸딘스키 Kandinsky와 함께 10여 년 간 살던 곳이 있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방 소도시 무르나우 Murnau. 그들이 살던 집은 가브리엘레 뮌터의 성을 따서 뮌터 하우스 Münter-Haus 라는 뮤지엄이 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나. 독일 온 지 2년 만에 벼르고 별러서 간 날인데 문이 닫히다니. 코로나 이후 오픈 일정은 2020. 6. 16(화). 6월 초의 2주간 핑스턴 방학이 끝나고 나서였다.


6월부터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온 독일의 분위기 때문에 당연히 뮌터 하우스도 문을 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코로나 때문에 아직 오픈을 안 했을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중순이 다 되도록 줄기차게 비가 오고 축축한 유월이었는데 우리가 휴가를 간 이틀 동안은 날이 눈부시게 푸르렀다. 뮌터와 칸딘스키가 떠난 지도 오래.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그들의 삶과 사랑과 애증과 고통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나는 이 작고 사랑스러운 도시와 첫눈에 사랑에 빠져 버렸고.


처음 시누이 바바라가 휴가를 가자고 제안한 곳은 무르나우와 가까운 오스터제 Ostersee(동쪽 호수)였다. 오스터제에서 무르나우는 차로 20분. 뮌헨에서 무르나우는 남쪽으로 70Km 떨어져 있다. 뮌헨 중앙역에서 자동차나 기차로 1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바바라가 하루 먼저 오스터제로 출발하고 다음날 오전 아이와 내가 기차로 합류했다. 도착 첫날부터 무르나우 방문을 제안한 건 나였다. 무르나우에도 슈타펠제 Staffelsee라는 멋진 호수가 있다. 저 멀리 알프스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호수를 바바라가 거절할 리가 없다.



알프스가 보이는 무르나우의 호수 슈타펠제(위) 뮌터 하우스(아래)



무르나우에서는 바바라를 위해 슈타펠제 호수부터 들르기로 했다. 독일어로 제 See는 호수를 가리킨다. 그럼 바다는? 메어 Meer. 호숫가 야외 레스토랑에서 점심부터 먹었다. 레스토랑을 나와 오른쪽으로 야외 비치 잔디밭이 이어져 있었다. 여름날이면 누구나 이런 곳에서 비치 타월을 깔아놓고 쉴 수 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수영복 차림으로 호숫물에 뛰어드는 건 당연한 일. 그러라고 있는 곳이니까. 하루 종일 놀 수 있음. 입장권 없음. 간식을 사 먹을 수 있는 매점 키오스크 Kiosk에는 야외 테이블도 있다.


무르나우까지는 차로 갔다. 뮌터 하우스 위쪽 골목길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서 시내로 갔다. 뮌터 하우스를 못 본 것도 아쉽지 않을 만큼 무르나우 시내는 작고 아담하고 예뻤다. 바바라가 좋아하는 옷가게도 들르고,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먹느라 목적지인 무르나우 성 뮤지엄에 도착했을 때는 문 닫기 일보 직전. 카운터를 보시던 독일 아주머니가 대놓고 다음날 오라 하심. 그런 날도 나쁘지 않다. 나무 그늘 아래 선선한 바람 불어오는 무르나우 성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2020. 6월 무르나우 시내(위) 가브리엘레 뮌터 <5월의 어느 일요일 무르나우 메인 스트리트> 1924년, 개인 소장(아래)



다음 날도 무르나우에 갔다. 무르나우 성으로 가기 위해 지나는 길이 뮌터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차도 다니지 않는 2킬로 남짓한 시내의 쇼핑 거리. 우리가 무르나우를 방문한 날은 금요일 오후와 토요일 오후였다. 코로나를 무사히 지나서 일상으로 돌아온 시간. 노천카페와 노천 레스토랑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무르나우 성 카페에서 점심을 먹고 뮤지엄을 관람했다. 뮌터의 그림이 많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복인가. 뮌터의 그림 중 내가 가장 사랑하게 될 <초록옷을 입고 누워 있는 여인>을 만나게 될 줄이야. 초록 드레스와 붉은 담요와 노란 책의 강렬한 대비. 그리고 그녀의 초록눈!


또 있다. 칸딘스키를 그린 뮌터의 작품 '피아노 앞의 칸딘스키'. 영어로는 피아노지만, 독일어 원제는 '풍금'이다. <피아노(풍금) 앞의 칸딘스키> 같은 그림은 나에게 감동을 다. 인생의 명암을 느끼게 하는 순간은 사랑하는 사람만이 포착할 수 있으므로. 그들은 10년을 함께 살다 전쟁 때문에 헤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칸딘스키가 러시아로 돌아간 것. 본처와 이혼하고 그녀와 결혼을 약속했던 칸딘스키는 귀국 후 이혼을 하기는 했다. 젊은 러시아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서. 뮌터는? 깊은 상처로 10년 동안 붓을 놓았다고.


이후 칸딘스키는 자신의 작품을 돌려줄 것을 요청했다. 뮌터의 반응은? 예전의 렌바흐 뮤지엄 편에서도 말했듯이 그녀는 뒤끝 있게 거절했다. 나치의 칸딘스키 작품 박해를 피해 현재의 뮌터 하우스 지하에 비밀 벽장을 만들어 그의 작품을 보관하다가 말년에 뮌헨의 렌바흐 하우스 Lenbach Haus에 자신의 작품과 함께 모두 기증했다. 칸딘스키가 그린 뮌터의 초상화만봐도 그런 강단과 결기가 느껴진다. 칸딘스키도 뮌터와 비슷한 톤의 작품을 한 점 남겼다. <(여) 가수>. 단순하면서도 아름답다. 인생은 저 그림들 속 주인공들처럼 그림자놀이 같은 것. 그렇게 한순간 흔들리다 가는 것.



가브리엘레 뮌터 <초록색 옷을 입고 누워있는 여인><칸딘스키와 에르마 보시> (위/아래 가운데). 칸딘스키 <가브리엘레 뮌터의 초상><가수>(아래 좌/우)


keyword
이전 09화렌바흐 하우스의 소울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