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퍼센트의 나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11월의 어느 흐린 오후, 내 집 화장실에서 나는 100퍼센트의 나 자신과 마주친다. 예쁘다고 할 수 있는 여자는 아니다. 입고 있는 플리스 잠옷은 입은 지 20 시간이 넘었다. 머리카락 뒤 쪽에는 나쁜 잠버릇이 달라붙어 있고, 나이도 마흔을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화장실 거울 앞에서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100퍼센트의 나였던 것이다.
눈을 똑바로 뜨고 거울 속의 나와 마주한다. 단 몇 초에 불과했지만, 내 의식이 날카롭게 깨어났고 줄곧 시끄러웠던 머릿속에 정적이 흘렀다. 눈 코 입의 끝이 미세하게 아래로 쳐지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재작년보다 1mm는 내려왔을 것이다. 미간 주름이 11자로 잡혀 어떤 상황에서도 손쉽게 신경질적이고 진지한 표정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눈가 잔주름의 모양이다. 눈 끝에서 시작해 방사형의 거미줄 모양으로 점점 크기를 늘려가고 있다. 이것은 손금처럼 어떤 운명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모른다. 내 삶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주름은 더 깊고 넓어진다.
어느 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 나도 원래 미간 주름이 깊었는데, 30년 동안 이마를 문질렀더니, 날 봐라. 주름이 없지.
- 과연. 아버지, 그것은 우리 집안에만 내려오는 비책 같은 것입니까.
- 테레비에서 본 것이다.
30년 전에도 사람들은 주름과 싸웠고, 확실히 아버지의 얼굴은 나이에 비해 주름이 없다. 어머니 말씀으로 그것은 지성피부의 축복이라고 하셨다. 젊은 시절에는 얼치기 같은 열정만큼이나 얼굴에 유분도 풍족해 온갖 트러블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 유분기 덕에 주름은 덜 진다는 것이다. 모공과 주름의 트레이드오프다.
무척 기분 좋은 11월의 일요일 오후다. 다만 삼십 분이라도 좋으니까 나 자신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하고 싶은 것이 대체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런데 도대체 어떤 식으로 말을 걸면 좋을까?
안녕, 나 자신. 단 삼십, 아니 십 분이라도 좋으니까 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습니까.
바보 같다. 마치 도를 아십니까 하고 묻는 것 같다.
어쨌거나 거울 속의 나는 대화에 익숙하지 않다. 이런저런 하찮은 핑계를 대기 일수다. 샤워를 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다던가. 오늘은 나갈 일이 없지만 머리를 감은 지는 이틀이 되었는데 괜찮을까 라던가. 비가 오는데 다 집어치우고 뭐 술이나 한잔 하는 게 어떨까 라던가.
물론, 100퍼센트의 나를 만나 대화를 하는 일이 쉬울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 간단하게 이루어질 일이 었다면, 사람들이 "나를 찾아 떠난다"며 돌아올 수 없는 긴 여행을 떠나거나 방황하는 일도 없을 테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같은 책은 써지지도 않았을 거라고. 그저 먹방 판타지라고 해도.
나는 샤워를 하고 나와 소파에 앉는다.
머릿속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맥주 한잔 하기 좋은 날씨 구만.
쓰기 시작했을 때의 계획대로라면, 이 이야기는 "옛날 옛적에"로 시작해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로 끝나야 하지만, 원래 인생이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걸 하루키 선생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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