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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Dec 19. 2021

누구에게나 좋은 시절이 있다


순식간에 지나간 한 해였다.


달력을 보니 벌써 12월, 2021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쯤 난 뭘 하고 있었을까? 기억을 하려 해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작년 12월에 썼던 글이 있을까?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다행히 12월 29일에 발행한 글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적고 있었다.

 


2020년은 회사 밖으로 나와 혼자 걸어가는 준비단계의 시간이었다.

2021년 12월,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조금씩 시도해나가며 꾸준히 나아가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을 쓰는 것도 멈추지 않고.




회사 밖에서 살아남으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던 그때의 순간이 기억났다.



"2021년 12월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문구에 갑자기 나 자신이 좀 부끄러워졌다.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을 줄 알았고 갈 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막막하게만 느껴졌을 때 거의 1년 만에 다시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봄이었다.


회사 근처 원룸에 방을 얻어 살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내가 독립을 하다니.








여름이 왔다.  


매일 아침 출근을 할 때마다 마음이 불안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아무 준비 없이, 계획 없이 그만둔다 것이 무서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출근과 퇴근을 반복했다.




"너무 힘들면 그만둬도 돼. 회사 안 다닌다고 굶어 죽지는 않아"


주말마다 집으로 오는 딸의 표정이 너무 어둡자 엄마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그 말 한마디에 안도가 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더욱 그만둘 수 없었다. 









퇴근 후에는 무조건 걸었다.


강변길을 따라 한 시간 반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걷고 나면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여름밤마다 나를 찾기 위해 애를 썼다.  







하루하루를 버티며 아무 결정도 못한 채 그렇게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회사 내부 인원에 교체가 생겼다.


이 또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 이런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건가, 남은 자는 어리둥절했다.








그렇게 한숨을 돌리고 나니 그동안 놓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살아가야 할 곳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거의 한 달 동안 주말마다 집을 보러 다녔다.


어느 아파트 단지 내에 들어갔는데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아, 벌써 가을이구나"


어떤 날은 15층에서, 어떤 날은 4층 아파트 복도에서 아래를 쳐다보며 눈호강을 했다.   


가을의 끝무렵이었다.


드디어 내가 살아갈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우리 좋은 시절에 다시 만나자"


몇 년 만에 만난 지구 반대편에서 온 친한 언니가 이 말을 남기고 떠났다.


당시만 해도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이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앞으로 좋은 날은 더 이상 없을 것만 같았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  


올 한 해를 돌아보니 힘든 날도 있었지만 좋았던 순간들도 분명 있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글로 풀어내다 보니 알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앞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마다  "좋은 시절에 만나자"라는 언니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매일 밤, 나도 모르게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잠에 들고, 가슴이 벅차오를 때도 있다.



돌아보니,


따뜻했던 만남이 있었던 만큼 올 한 해도 좋은 시절이었다.


잊지 말자.


우리  누구에게나 좋은 시절이 있다는 것을.






아, 그러고 보니 "멈추지 않고 계속 글을 써 내려가겠다"는 작년의 약속을 지킨 건가?


꾸준함과는 거리가 먼 내가 아직까지 글쓰기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 너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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