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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Oct 04. 2015

인내하고 있다면, 그것은 곧 사랑

지극히 구질구질한 일상의 그것

사람의 감정이란 단편적이지가 않다. 

가장 깊은 상처는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 받기 마련이다. 사랑과 신뢰가 두터운 관계일 수록 상처입히기는 더욱 쉽다. 

그래서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는 대게 순전한 사랑 또는 순전한 미움이라기 보다는 사랑과 증오가 뒤범벅이 된 채의 분간을 할 수 없는 상태일 때가 많다.


전에는 그런 게 못 견디게 싫고 어렵고 답답하고 슬펐다.

사랑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받으며 미워한다면 그건 남보다도 못한 관계가 아닌가 생각했다.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고 항상 관계에 거리를 유지하는 습관이 생긴데는 그런 애증의 관계 너무 많이 보며 자란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명절에 고향집에 내려갔다가 가족간의 관계가 참 재미있는 구조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동생은 아버지를 참 많이 참아주고, 반대로 아버지는 동생을 참 많이 참아준다.

오빠도 마찬가지. 아버지를 인내하고 용납하려 애를 쓰고, 아버지도 오빠를 용납하려 애를 쓴다.

엄마와 아버지와의 관계야 언제나 그래왔기에 말할 것도 없고,

엄마와 다른 자식들간의 관계도 마찬가지.


서로가 서로를 인내해 주는 관계라니. 전 같았으면 거기에 염증을 느꼈을 테다.

반복되었던 비극. 인내하는 자만 있을 뿐인 관계.

그런데 이번에는 전과 달리 도리어 거기에서 사랑을 느꼈다.


나에게 상처주는 사람, 나에게 못되게 굴고, 내 마음을 정말 몰라주는 사람.

그 사람을 계속 참아주고 인내하며  끊임없이 손을 내미는 것.

내 배려를 상대가 가치없이 내쳐버릴 걸 알면서도, 거기에 매번 상처받으면서도, 등 돌리지 않고 다음엔 무엇을 해줄 지 고민하고 있는 것.

 

그래, 이것은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신파이고, 무엇보다도 전혀 경제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지극히 현실적인 우리 삶의 사랑이다.

보는 사람만 없으면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며 이를 갈다가도, 쌓인 울분에 가슴을 칠 지라도, 끝내 외면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끌어안는 것.


이런 비효율적인 사랑관계가 이젠 슬프게 느껴지지 않는다. 답답하거나 화나지도 않고.

그냥 계속 계속 서로를 향해 노력하는 모습이 뭉클하리만큼 예쁘고 귀하게 보였다.

어쨌거나, 이것은 사랑이다.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더하는 법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비록 허물이 많고 부족해서 매순간 순간마다 서로를 아프게 하지만, 그 때문에 더욱 큰 사랑으로 서로를 인내해주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그것으로 되었다.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서로 용납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관계보다 끊임없는 인내로 서로를 용납해주는 관계가 더 진실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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