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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준 Jan 25. 2016

생에 최악의 실수

짧은 글 깊은 생각 (이상준의 CEO 수필집)

[최악의 실수 (상)]


수년전 한방식품 회사에서 기획 팀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제품 개발 부서는 따로 있었지만,
획기적인 제품이  출시되지 않아 회사에서는  


부서 구분 없이 신제품 아이디어를 모집했고,
나는 홍삼차 티백을 기획했다.


운이 좋게도 홍삼차 티백을  제품화하기로 결정이 되었고,
최초 기획자인 내가 TFT 팀장(임시 프로젝트 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나도..... 참..... 열정적이었다.ㅜㅜ......


협력업체에 홍삼 티백을 의뢰해서 샘플을 10가지 정도 받았고,
그중에서 적당히 로스팅 된 딱 맘에 드는 샘플을  결정한 후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기다렸다.


회사 간부들 조차도 내가 기획한 홍삼차를  궁금해했고, 
먹어 보고 싶다고 샘플을 달라고 하나 둘 주다 보니,
샘플이 한 개 밖에 남지 않았다.


그 한 개 남은 샘플은 고이 간직해서
나중에 oem제품이 나오면  비교해야 하니,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샘플 홍삼차 티백 한 개를 서랍에 넣고 잠갔는데, 
그때 잘 오시지도 않던 회장님이 회사로 방문하신 거다.


그러고는 이사님이 나보고 잠시 회장실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어 그래 이 팀장 수고 많지? 이번에 홍삼 티백 만들었다지? 나도 맛 좀 볼까?"
'아..... 티백  하나밖에 없는데......'


회장님 앞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감히 회장님 앞에서....


'티백 하나 남아서 안됩니다.'
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쌩하니 달려가 그 한 개를 사용해 버렸다.


아..... 이런.....

그리고 며칠 후


oem으로 완성된 홍삼 티백이 회사에 도착했는데,
우려했던 일이 터져버렸다. 
맛이 내가 결정한 맛과 확연히 다른 것이다......


협력업체 담당자에게 말했다.
"차장님 이거 지난번 제품이랑 맛이 다르잖아요~ 로스팅이  덜됐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똑같은데.... 지난번 샘플 하고 비교해 보세요."

'아... 누가 모르나요..... 샘플이 있으면 입 아프게 말 안 하죠.....ㅜㅜ'


어쩔 수 없이 슈퍼 '을' 중의 '을' 이 되어 부탁을 드렸다.


"차장님 로스팅 한 번만 더 해주시면  안 되나요??"
"안돼요!!! 로스팅 다시 하려면 티백 모두 뜯어서 다시 만들어야 하는데...."

아......

무려 1억 원이다.


내가 기획해서 만든 홍삼 티백이 무려 1억 원어 치다....

내가 이렇게 회사 돈 1억을  날리는구나..............    


[최악의 실수 (하)]

                                                                     <당시 근무 했던 한방식품 회사 사진>

 

날려 버린 1억....


밤새 잠 도 못 들고 뜬 눈으로 지새운 채 
아침 일찍 출근해서 
두장의 문서를 쓰기 시작했다.  


하나는
'프로젝트 실패  보고서'였고,


또 하나는 
'사직서'였다.


이 모든 책임을 사직서로 대신하려는 
비겁하고도 철없는 내 마음이었다.


모든 열정도 없어지고 이제 
며칠 동안 인수인계를 하고 책상을 정리할  생각밖에 없던 
내게

어느 이사님이 부르셨다.


"이 팀장 큰  실수했다고??
알고 있네.... 그런데, 이 팀장 어떤 사람이 실수를 하는지 아나?"


"네???"


"바로.... 일을 하는 사람이  실수하는 거야....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실수도 없는 거지...."


'ㅠㅠㅠㅠㅠㅠㅠ 엉엉'


겉으로 울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너무나 위로가 되는 말씀이셨다.

이사님은, 문제라는 것은 답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고 하셨고,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생겼다.


항상 슈퍼 갑, 클라이언트의 입장이던 나는


슈퍼'을'이 되어 거래처 차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비굴하게.....


"차장님 저 이 팀장입니다. 저 내일 지리산 공장으로 가서 그 홍삼 티백 몇 달이 걸리더라도 제가 다 자를게요.
한 번만 더 로스팅 해주세요..... 제발 ㅜㅜ"


홍삼 티백 공장이 지리산에 있어
나는 서울에서 지리산으로 갈 생각을 했고,


몇 개월이 걸리더라도 내가 티백을 뜯는 작업을 각오했다.
회사? 어차피 사표 쓸 각오하니 못할 것도 없었다..


그때 그 거래처 차장님.....
"하...... 알겠어요.... 팀장님이 티백 뜯어봐야 1년도 더 걸려요. 팀장님이 그렇게 까지 말씀하시니..... 공장 인부들한테 말할게요. 우리 회사 수익도 대폭 줄어든다는 것만 아세요. 아... 그리고, 지리산에는 진짜 와야 해요. 로스팅 팀장님이 확인해야 하니까요...."


"아.... ㅜㅜㅜㅜ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표 쓸 각오로 자존심 없이 드린 부탁이 먹힌 것이다.


나는 혹시나 약속시간에 늦을까, 잠을 자지 않고 밤 11시에 서울에서 출발
오전 6시에 지리산에 도착한 다음 차에서 잠을 잤고,
모든 일은 순조롭게  해결되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샀던 지리산 노란 참외는 세상에서 제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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