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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Nov 01. 2020

아름다운 비행

《아름다운 비행》(Fly Away Home), 1996년.

감독: 캐롤 발라드

제작: 컬럼비아 픽처스

각본: 빌 리쉬맨, 빈스 맥케인, 로버트 로댓        

  

# 아름다운 비행     


아름다운 비행은 엄마를 잃은 소녀 에이미가 아빠에 대한 적대감과 엄마와의 갑작스러운 애착 단절로 형성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적응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부모님의 이혼 후, 엄마와 함께 여행 중이던 13살 에이미는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고 3살 이후, 10년 동안 떨어져 살던 아빠와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러나 아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에이미는 엄마를 잃은 슬픔과 좁혀지지 않는 아버지와의 거리 사이에서 방황을 합니다.     


에이미: “학교 안 다닐래요. 그냥 죽는 게 낫겠어요.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죠?”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아직 어린 에이미의 입장에서 이해되질 않는 것이지요. 특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엄마의 부재와 아빠의 여자 친구 수잔의 등장은 에이미의 감정을 더욱 혼란스럽게 합니다. 결국 에이미는 학교를 가지 않고 혼자 보내는 시간은 늘어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숲을 개발한다며 헤집어 놓은 숲 속에서 어미를 잃은 기러기 알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점점 밝아집니다. 엄마를 잃었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낀 걸까요? 에이미는 숲에서 어미를 잃은 알을 집에 가지고 온 뒤 따스하게 감싸줍니다. 그리고 얼마 후 기러기 알들은 한 마리씩 부화합니다. 이제 막 부화한 새끼 기러기들은 에이미를 어미로 결정해버립니다. 각인과 애착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비행이 시작이 되려는 참입니다. 새끼 기러기들은 에이미를 어미로 알고 졸졸 따라다니고, 엄마를 잃은 에이미는 지극한 정성으로 기러기들의 엄마 역할을 감당합니다. 우여곡절이 있지만 에이미의 아기들은 (가짜) 엄마의 사랑으로 점점 커져갑니다. 에이미는 기러기 아기들을 키우며 아빠와 아빠의 여자 친구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학교에도 다니기 시작하지요.     


수잔: "내가 엄마를 대신할 순 없을 거야. 하지만 네가 허락한다면 친구가 되고 싶어. 그러자면 서로 믿어야 돼."     

그 사이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일어나고 우여곡절 끝에 기러기들을 날 수 있게 하자는 것에 동의한 에이미와 아빠, 한동안 각자의 일에 여념이 없습니다. 아빠는 비행기를 완성하기 위한 마무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에이미는 점점 자라는 거위들을 보살피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던 중 아빠가 모터를 단 비행기를 완성하게 되고 아빠는 기러기들이 자신의 비행기 뒤를 쫓아 날아오를 것이라는 큰 기대를 합니다.     


아빠: “내가 나는 법을 가르칠게.”     


하지만 에이미만 따르는 기러기들에게 아빠가 운전하는 경비행기는 그저 덩치 큰 물체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고민 끝에 아빠는 에이미를 위한 또 하나의 기러기 모양의 비행기를 만들게 되고, 에이미에게 비행실습을 가르칩니다. 마침내 에이미가 혼자 비행을 하던 날. 에이미의 모습을 지켜보며 응원하던 기러기들도 에이미를 따라 하늘을 향해 힘찬 질주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러기들도 에이미와 아빠와 함께 힘찬 날갯짓으로 하늘로 솟아오릅니다. 드디어 기러기들이 하늘을 날게 된 것이죠.  

   

아빠: "잘했어. 그거야. 잘하고 있어."     


기러기들의 엄마가 된 13세 소녀 에이미와 16마리의 기러기들의 아름다운 비행은 우리에게 가족의 의미와 행복, 그리고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평범한 일상을 무너뜨린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 각인과 애착     

트라우마와 각인은 많이 닮았지만, 이 둘의 사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멀지요. 이 둘이 맺는 열매도 달라서 하나는 긍정의 열매를 다른 하나는 부정의 열매를 맺습니다.    

 

'각인(imprinting)'이라는 용어는 동물행동학의 창시자로 손꼽히는 로렌츠(Konrad Zacharias Lorenz, 1903년 ~ 1989년)가 인공부화로 갓 태어난 새끼 오리들이 처음 본 대상인 자기를 마치 어미 오리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을 관찰하고, 이런 본능적인 행동을 '각인'이라고 명명하였는데요. 외형적으로 각인이 이루어지면 그 대상에 대한 강력한 추종 반응이 나타나지요. 기억이라는 저장소에 한번 각인된 것은 엄청난 위력이 가지고 있어서 우리의 추측을 뛰어넘고도 남습니다.     


영화 ‘아름다운 비행’에서도 주인공(?) 기러기들이 처음 눈을 떴을 때, 에이미를 막무가내로 따르는 장면이 아름다우면서도 귀여운데요. 다른 동물들 중에서 특히 오리과는 자기가 엄마라고 점찍은 대상과 물리적으로 최대한 가까이 있으려 하지요. 그 대상이 무생물인 고무장화라도 한번 어미로 각인된 그 대상을 계속 쫓아다니는 대표적인 동물이지요.     


이런 각인은 가장 본능적인 형태의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동물들에게 그 결정적인 시기는 안타깝게도 매우 짧은 순간에 이루어져 버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단 새끼의 마음속에 새겨진 자국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지요. 영화 ‘아름다운 비행’에서 야생 기러기들이 소녀 ‘에이미’를 어미로 인식하고 난 후에는 다른 누구에게도 사랑을 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각인은 해리 할로의 붉은털원숭이 실험에서도 확인되었습니다. 가짜 어미 실험을 이어가던 어느 날, 할로는 예기치 않게 눈과 코가 없이 담요만 뒤집어 씌운 가짜 어미를 새끼 원숭이와 함께 우리 안에 서둘러 집어넣게 되었습니다. 새끼 원숭이는 얼굴 없는 어미를 사랑했고 키스를 퍼붓고 이로 깨물며 애정표현을 했지요. 나중에 훨씬 예쁘고 매력적인 원숭이 가면을 쓴 가짜 어미가 완성되었지만, 새끼 원숭이는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고, 이미 각인되고 애착이 형성된 가짜 어미의 얼굴에 가면을 씌우려 했을 때는 공포심에 비명을 지르거나 우리 한쪽 구석으로 달려가 난폭하게 우리를 흔들고 성기를 움켜쥐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각인과 함께 따라오는 이론은 애착 이론인데요.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은 영국의 심리학자 존 볼비(Edward John Mostyn Bowlby, 1907년 ~ 1990년)가 1958년에 짧은 논문을 발표한 뒤,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요. 그가 말하는 ‘애착’은 영아가 정상적인 감정, 사회적 발달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 이상의 주 보호자(primary caregiver)와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으로 동물의 각인은 단기간 내에 일어나지만, 사람의 애착형성은 장기간에 걸쳐 일어난다고 합니다. 애착 형성 과정서에 문제가 발생하면 분리불안장애, 회피성 성격장애, 우울증, 학습장애 등이 생길 수 있다고 하지요.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해리 할로(Harry Halow)의 가짜 원숭이 실험은 애착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입증했다. 유아기의 원숭이들은 우유를 든 금속 재질의 가짜 어미보다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가짜 어미를 더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그의 단편소설에서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했지요. 그리고 1905년에 출생한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Harry Halow)도 세계 대전 이후 인류에게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그가 활동했던 1930~50년대, 인류와 학문의 관심은 이론과 실험의 범주에서 벗어난 비과학적인 학문에는 무관심한 경향을 보였지요. 특히 '사랑'이라는 애매모호한 주제는 더욱 심리학자들로부터 터부시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특히 애착(愛着, attachment: 특별한 정서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에 대한 심리학적 논의는 영양을 공급하는 보상 차원에서 생기는 것으로 이해했고, 아기가 엄마에게 매달리는 것은 젖을 보고 갈증이 나거나 배가 고팠기 때문으로 간주했습니다.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 1904년 3월 20일~ 1990년 8월 18일)는 강화와 처벌이라는 기존의 패턴대로 아이들을 이해했고, 존 왓슨(John Broadus Watson, 1878년 1월 9일 ~ 1958년 9월 25일)은 심지어 자녀 양육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아이의 욕구를 지나치게 충족시켜주어서는 안 됩니다. 밤에 잘 자라는 키스도 해주지 마십시오. 대신 아이의 방에 불을 끄기 전에 간단한 인사와 함께 손을 흔들어주십시오."     


당시 심리학의 결론은 사랑이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양육의 조건 또한 될 수 없었습니다. 사랑이 생명에게 본능적으로 추구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에 의해 사랑은 부모의 보살핌에 대해 아이가 보상으로 느끼는 합리적 결과물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할로는 의심했고 질문했지요. 애착과 사랑이란 무엇인가? 생명을 살리는 것 사랑이 영양을 공급하는 보상 차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일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마침내 그는 이 모든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의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실험'을 시작하기로 결심합니다.     

# 잔인한 실험: '사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인류의 미스터리 중 하나인 사랑과 그 본질에 대한 실마리를 세상에 전한 할로.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할로 자신은 유아기부터 극심한 애정결핍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지요. 그의 인생은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했고, 때문에 온전한 사랑을 이루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그가 사랑이라는 형이상학적이고 신학적이며, 미스터리 한 주제에 과학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것은 역설 중에 역설입니다.  

   

사실 애초에 할로의 연구는 그의 스승인 터먼(Lewis Madison Terman, 1877 ~ 1956) 교수가 연구하던 지능 실험에서 크게 벗어날 생각이 없었습니다. 다만, 대상이 유인원으로 확장됐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실험은 인간과 유전자가 95% 일치한다고 알려진 붉은털 원숭이를 대상으로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할리가 원숭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턱에 묻은 우유를 닦아내고 그 수선을 치우려고 하자 새끼 원숭이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몸을 바닥에 던지거나 뒹굴며 앞발로 수건을 움켜잡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왜?” 할로의 질문은 시작되었고, 그 잔인하고도 위대한 실험이 시작됩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붉은털 원숭이는 이제 두 명의 가짜 어미를 맞이하게 되지요. 딱딱한 철사로 만들어졌지만 우유를 줄 수 있는 오미와 우유를 줄 수 없는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어진 어미였습니다. 어린 새끼 원숭이는 어떤 어미를 선택했을까요? 정확히 새끼 원숭이는 어떤 어미에게 애착을 보였을까요? 할리는 실험의 결과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철사로 만들어진 어미와 천으로 만들어진 어미) 그 격차는 젖을 주는 일차적 기능이 어미와의 친밀하고 빈번한 몸의 접촉을 위한 것이라고 제시할 수 있을 정돌로 컸다.”     


새끼 원숭이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천으로 만들어진 어미하고 보냈습니다. 철사 어미에게서만 젖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사 어미에게는 젖만 얻어먹고 다시 천으로 만들어진 어미에게로 되돌아가곤 했습니다. 심지어는 천으로 만들어진 어미를 통해 전기충격으로 고통을 주거나, 강한 찬바람을 불어 새끼들이 우리 난간에 부딪치게 하거나, 몸이 얼어붙을 만큼 찬 물을 퍼붓거나 뾰족한 것으로 인해 자신의 몸이 찔려도 천으로 된 어미를 단념하지 않았지요. 그 어떠한 고문도 그 사랑을 좌절케 하지 못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신은 너무도 강해서 천으로 된 어미가 아무리 상처를 주어도 새끼들은 다시 기어 왔고 아무리 추워도 엉뚱한 곳에서 따뜻함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천으로 된 가짜 어미에게 안겨있는 동안 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할로는 이 잔인하고도 위대한 실험으로 사랑이 입맛이 아닌 스킨십으로부터 시작되고 커져간다는 것을 입증하게 되었습니다.      


# 해리 할로우의 역설      

1958년 미국 심리학회 회장으로 선출된 할로는 ‘사랑의 본질’이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연설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장식했습니다.     


“자녀의 양육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행위에 있어 미국의 남성이 여성과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만한 본질적 능력을 육체적으로 타고났음을 알게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이 포유류로서 원초적 능력 때문에 집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할로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를 듯했습니다. 천으로 만든 가짜 어미가 먹이를 주는 어미보다 더 중요하고 친어미 못지않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증명했기 때문이죠. 매디슨 주 위스콘신 대학에서는 ‘폐기 처분된 모성애’라는 제목으로 보도 자료를 배포했고 방송에서도 그대로 보도되었지요. 정말 모성애는 폐기 처분된 것일까요?     


할로의 역설은 그의 심리학적 실험과 증명이 하늘을 날던 이듬해에 드러나게 되는데요. 천으로 된 가짜 어미 밑에서 자란 원숭이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음이 밝혀졌습니다. 가짜 어미 밑에서 성장한 원숭이들은 짝짓기도 할 수 없었고 폭력적이며 반사회적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암컷은 수컷을 공격했고, 그중 일부는 몸을 흔들고, 자신을 물어뜯었으며, 팔 위에 난 상처를 벌여 털 사이로 피가 솟아나게 하는 등 자폐적인 증상을 보이는가 하면, 어떤 원숭이는 자신의 손을 통째로 씹어 먹기도 했습니다.     


할로의 연구는 마침내 ‘강간 침대’라고 이름 붙인 장치까지 고안하게 되는 데요. 결국 강간 침대에 의해 어미 없이 자란 암컷 원숭이 스무 마리가 새끼를 낳았지만, 어미의 일부는 새끼들을 죽였고, 일부는 냉담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정상적으로 행동한 어미는 단지 몇 마리뿐이었지요.     


할로: “인정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뉴욕 타임스 기자의 질문에)     


# 가족의 탄생과 성장     

가족의 탄생과 성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할로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실마리는 풀어냈지만, 이후 그의 연구 성과와 그의 일생이 보여준 알코올 중독증과 극심한 우울증 등은 할로의 제자들에게 많은 과제로 남겨졌습니다.     


가족은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입니다. 부모와 아이, 모두가 함께 사랑을 먹고, 사랑을 느끼며, 사랑을 키워가는 생명체와 다르지 않지요. 가족은 아름다운 비행을 함께 준비하는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입니다. 아름다운 비행을 위한 본질적인 사랑의 표현과 시작은 바로 ‘나 자신부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참조: 로렌 슬레이터,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에코의 서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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