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에서

백차

by 진동길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젖은 눈시울로 화장을 지웁니다.


언제부턴가 내 몸에 배였던

당신의 향기가 사라질 즈음에만 오셨지요.


매일 바치던 기도 대신

오늘은 청소를 하고 거울 앞에 앉았습니다.


즐겨 드시던 찻잎과 찻잔을 꺼내놓으며

찻잔에 흐르는 눈물 다시 훔쳐 닦습니다.


곡우 전날, 밤새 날이 좋아

새벽이슬 맞으며 거두었던 찻 잎이

덖지 않아 백차가 되었습니다.


찬 서리가 내리고, 그다음 날

문을 두드리겠다 하시어


너무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찻물로

슬픈 화장을 지웁니다.


행여 다시 가실 걸음에

내 향기가 배이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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