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일기

멍충이처럼, 나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by 진동길





내 오십 년 된 타자기는

사랑이라는 글씨를 고통이라고 바꿔 씁니다.

사람이라는 글씨는 그리움이라 고쳐 씁니다.

어떤 날에는 사람과 사랑이라는 말조차 헷갈려

눈물만 뚝뚝 흘리다 그냥

빈칸으로 남겨두기도 합니다.


내 오십 년 된 타자기에는

'나'라는 글자와 '혼자'라는 글씨가 없습니다.

사실 당신과 우리라는 글씨도 경계가 없어

아무 때나 기분 따라 함부로 바꿔 씁니다.

오십 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말이지요.


내 오십 년 된 이 친구는

기다림이라 말과 믿음이라는 말도

같은 뜻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보처럼 나를, 아니 당신을

오십 년이나 기다리는 이유인가 봅니다.


이 친구는 실망과 체념이라는 글씨도

어제와 내일이라는 말도 헷갈린답니다.

오십 년을 살아왔는데도 말이지요.

그것이 멍충이처럼 우리를, 아니 나를

어제를 내일처럼 내일도 어제처럼

내가 그렇게, 아니 우리가 그렇게

혼자서도 꿋꿋하게 당신을 아니 사랑을

갈망하며 기다리고 있는 이유인가 봅니다.


오늘도 어제의 고통과 그리움이

실망과 체념을 품고 기우는 달처럼

저산 너머로 아득해지고 있습니다.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라는 경계를 망각한 나는

우리 사랑의 아픔이

당신이라는 사람의 아픔과 같은 것이겠거니

그래서 이리 더디 오시겠거니

그래서 아직 못 오고 있는 것이려니

혼잣말을 탁탁 되풀이하면서

우리는 오늘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일도 어제처럼

당신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서로가 서로를,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그렇게 혼자 기다리고 있겠지요.


사랑이라는 글씨를 고통이라 바꿔 쓰면서

사람이라는 글씨는 그리움이라 고쳐 쓰면서

어떤 날에는 사람과 사랑이라는 말조차 헷갈려

눈물만 뚝뚝 흘리다 그냥

빈칸으로 남겨두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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