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는 생각에. 사람이 몹시 그리운 날에.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마르 7,16)
세상에나혼자뿐이고나만낙오자된것같은날에.세상은어둠이된다.그칙칙한어둠속에서나는오직나혼자이다.그날에는나만깨끗하고내생각만옳다.모두다부질없고‘나는나이다'라는것을더욱확신하게된다.지구가다른별들과함께태양을중심으로돌고있다는말을당연한사실로믿고있는지금이세상에도.빛이물결처럼파장을일으키며동시에입자로내게스며들고있다는이미오래된과학적사실도도무지받아들일수없다.나는내가중심이고나는나혼자이다.하지만참으로아이러니하게도사람이몹시그리운날에.이런생각이나를압도한다는것이다.나아닌다른것들이모두부질없이느껴질때사람이더그립다.살고싶다.그래서나는너를만나러간다.너의 안부가궁금하다는핑계를대며.소주한잔같이마시고싶다고나는너에게로간다.살고싶어서나의 지구는태양과다른별들을만나러간다.그가나에게어떤의미가된것처럼나도그에게로가서어떤의미가되고싶다.
'communicatio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사소통, 친교, 만남, 나눔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지요. 이 말을 묵상해 보면 인간이 밥만으로 살 수 없다는 옛 말이 공감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심리학자는 로고스세러피((logotherapy)라는 치료 방법을 찾아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로고스세러피. 글자 그대로 우리말로 풀어보면 ‘말씀치료’, ‘의미치료’인데요. 어떤 대상과 말씀을 나누고 또, 다른 대상으로부터 나와 너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인간에게는 삶의 중요한 일이자 욕망 가운데 하나라는 것에 고개를 주억이게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친교, 만남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는 말은 인간의 삶,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의 ‘관혼상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요. 커뮤니케이션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더욱 쉽게 다가옵니다. communication은 ‘함께’라는 뜻의 'com'과 예식 특히 장례예식을 뜻하는 ‘munus' 혹은 친교 특히 영적 친교를 뜻하는 'munio'와 만난 합성어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참 특이한 점은 장례예식을 뜻하는 ‘munus'라는 말속에는 선물, 혹은 예물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옛사람들에게 인간의 일생에서 태어남과 죽음. 즉 영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일이 매우 큰 일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관혼상제와 같은 ‘친교적 만남’을 통해서 옛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다’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영적 친교예식 중에 만남을 갖고 있습니다. 더불어 사람을 살리는 선물인 생명의 말씀(로고스)으로 또 음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사(missa, 파견) 예식이 끝나면 우리는 다시 세상으로 파견됩니다. 누군가에게로 가서 나도 선물이 되고 기쁜 말씀으로 스며들기 위해 세상으로 파견되는 것이지요. 사랑이라는 에너지를 가득 안고 말입니다.
세상이 어둠으로 가득 찰 때, 혼자라고 생각될 때, 또 누군가 몹시 보고 싶어질 때, 그리워하지만 말고 일어나 세상으로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 안에서 빛이 사라지려 할 때, 누군가에게로 가서 내가 그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깨우십니다. “일어나 가자! 누군가에게로 가서 우리 함께 그와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되자!”라고 그분이 우리를 북돋우십니다.
"일어나 가자.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로 가자. 생명의 말씀을 가슴에 안고 사랑을 나누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