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믿음의 실체

by 진동길


장미에게…


봄볕을 즐기고 있는데, 장미가 내게로 와 물었다.


"동백꽃도 피었는데... 나는 언제쯤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봄이 왔다고 모두 꽃을 피워야 하는 것은 아니란다. 서두르지 말고 조바심도 내지 말기를. 너의 때가 곧 올 거니까. 부르실 날을 기다리며 단단히 뿌리를 뻗고 줄기와 잎사귀부터 내어보렴."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아야 전열기를 사용할 수 있고 장작을 패야 아궁이에 불을 지필 수 있듯이. 사람에게 변화라는 말은 장미가 꽃을 피우는 것과 다르지 않겠지. 봄이 왔다고 장미도 꽃을 피워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나의 장미는 오월에 피는 꽃이니까.


서두르지 말고 조바심도 내지 말고 그 사이 단단히 뿌리를 내리자. 줄기와 잎사귀가 나오면 곧 때가 올 것이기에. 반응이 먼저가 아니고 행동이 우선이기에.



믿음의 역학, 생명=사랑*믿음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땅에 살지만 하늘의 질서를 따르는 이들의 삶이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 속에서 약속된 하늘의 법칙을 따릅니다. 이들은 생명의 근원과 죽음을 초월한 사랑을 신뢰하며 영원한 약속(covenant, διαθήκη)을 믿고 살아갑니다.


엄밀히 말해서 믿음(belief, πιστεύω)은 생명(life, ζωή)의 문제입니다. 믿음은 한 사람의 삶의 의미와 방향까지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의 의미와 실존의 까닭을 묻는 실체입니다.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증이자 증거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증이자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믿음의 힘


한 남자가 고장 난 대형 냉동창고 속에 갇혔습니다. 냉동창고 안에서 문을 두드리고 고함을 지르고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스스로 냉동창고의 문 열기를 포기하게 됩니다.


‘난 여기서 나갈 수 없어! 곧 얼어 죽을 거야!’라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그는 정말 그의 믿음대로 얼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은 현대 과학과 의학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었습니다. 사인을 검사했던 경찰은 그 냉동창고 안의 온도는 영상 15도였으므로 사람이 얼어 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고, 그는 건장한 남성으로 특별히 앓고 있는 병도 없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어가면서 냉동창고 벽에 “춥다. 너무 춥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춥다. 오! 하느님 구해주세요.”라는 기록을 남겼다고 합니다. 차가운 냉장고에 갇힌 믿음. 냉랭히 식어가는 그 믿음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 범인이었습니다.




διαθήκη=계약


생ㆍ노ㆍ병ㆍ사가 그렇듯이 모든 인간은 지켜야 하는 약속과 함께 생존합니다. 불가역적인 약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지요. 바꿔 말하면 약속을 폐기할 수 있는 존재는 신 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되돌릴 수 없는 약속에서부터 기억되어야 하고 또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그 약속에서부터 자라나는 포도나무줄기와 같지요.


신앙인에게 믿음은 하느님과 관계되고 그분과 맺은 약속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은 하느님이라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점은 하느님께서 그 약속의 주인이시라는 점이지요.


하느님께서 약속의 주인이시라는 말의 의미는 약속을 맺으시고 폐기하실 수 있는 분은 하느님 한 분뿐이라 말이지요.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그분께서는 약속을 완성하시는 분이시라는 점입니다. 사랑의 약속입니다.




ἀγαπάω=신의 사랑


인간을 사랑하는 신의 사랑. 그 믿음의 실체가 십자가로 드러났습니다. 십자가는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는 인류에 대한 신의 사랑입니다. 생명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신의 사랑이 십자가로 드러났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에페 2,8.)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3,15.)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증언된 신의 영원한 사랑의 약속. 그 계약의 증표를 보고 믿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사랑의 십자가를 보며 되새기고 보이지 않는 신의 사랑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한순간도 잊지 않고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인간에 대한 신의 신뢰. "내가 너를 낳았노라" "내가 너를 죽기까지 믿고 또 사랑하노라"하시는 신의 신뢰가 십자가 달려있습니다.


그것은 큰 값을 치르고 완성한 고귀하고 거룩한 전유물이 되었습니다. 인류의 죄와 죽음과 고통과 두려움을 이겨낸 신의 사랑입니다.


때문에 십자가에 달린 구원의 표징. 신의 사랑의 표징은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생각해 볼 이야기


1. 행복 불행: 비교 상대적 불행과 절대적 불행, 내면의 불행과 드러난 불행. 예) 아주 짧은 시간 바라본 저 사람의 외모만으로 나의 처지, 저 사람의 차와 집만으로 그의 부모와 출신과 배경을 보고 그와 나의 삶의 자리까지 미루어 짐작하고 평가하고 판단하게 된다.


2. 원망하고 투덜거리면 현실이 바뀐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삶의 조건과 배경은 반드시 존재한다. 절대적 불행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것처럼 쉽게 변화되거나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내 삶으로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4. 신앙의 힘이 있다. 하느님께서 지금 이 조건으로 나를 파견하신 까닭은 분명 그분의 뜻이 있을 것이고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복음적인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5. 하느님 자녀됨의 당당함이 요구된다. 새로운 법이 주어졌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겨야 한다. 세상의 권력과 힘의 논리가 추구하는 욕망 법과 하느님의 법 가운데에서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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