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흙의 아들들

5장 달빛 아래 그림자

by 진동길

5장 달빛 아래 그림자


그날은 1975년 9월 스물사흗날 밤이었다.

추석을 보름 앞둔 밤이라, 달이 둥글었다. 보름달은 아니었으나, 보는 사람 마음이 먼저 보름을 만들어버리는 달이었다. 해원천 물은 달빛을 받아 은비늘처럼 번뜩였고, 들녘의 벼 이삭은 알이 차서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흔들렸다. 코스모스는 바람에 가늘게 허리를 꺾었고, 풀벌레 울음이 마당 끝에서부터 논두렁까지 촘촘히 이어졌다. 밤은 깊었지만, 세상은 아직 완전히 잠들지 못하고 어딘가 깨어 있었다.

윤 씨는 기백이를 재우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이의 숨소리를 들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다시 들이쉬고. 규칙적인 숨은 살아 있는 것들의 가장 조용한 증거였다. 다섯 살 아이의 얼굴은 달빛이 스며든 천 조각처럼 희미하게 떠올랐다. 윤 씨는 손을 뻗어 아이의 뺨을 가만히 만졌다.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오히려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살아 있는 것은 지켜야 한다는 말이, 그 따뜻함 속에서 더욱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 아이는 살아야 된다.’

윤 씨는 속으로 그 말을 되풀이했다. 자기가 여기 있으면, 아이는 죽는다—죽는다는 것은 목숨이 끊어진다는 뜻만이 아니었다. 최태국의 손에서 아이는, 사람으로 자랄 길을 잃고 짐승 같은 마음을 배우게 될 것이다. 아니면 자기처럼, 부서진 채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없는 게 낫다.’

그 말이 마음속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윤 씨의 목이 먼저 조여왔다. “없는 게 낫다”는 말은, 버리고 간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윤 씨는 그 사실을 모를 만큼 무디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그것을 말로 붙잡아둘 수가 없었다. 붙잡는 순간 무너질까 봐.

윤 씨는 일어섰다. 무릎이 후들거렸다. 다리에는 힘이 없었으나, 그럼에도 몸은 일어났다. 어느 날부터 윤 씨의 몸은 마음보다 먼저 결심을 실행하곤 했다. 오래 참아온 사람의 몸이란, 어느 순간 ‘이제는 더 못 한다’는 신호를 가장 먼저 내보내는 법이었다.

벽장을 열었다. 깊숙한 곳에서 보따리를 꺼냈다. 며칠 전부터 조금씩, 들키지 않게 준비해 두었던 것들. 옷 두 벌, 속치마 한 벌, 버선 한 켤레, 친정에서 가져온 노리개 하나. 그리고 할아버지가 남긴 『소학』 한 권. 손끝이 책등을 스칠 때, 오래된 종이 냄새가 올라왔다. 그 냄새가 화림리의 연못가, 버드나무, 할아버지 무릎을 불러왔다.

그리고 또 하나.

낡은 보자기에 싸인 문서.

윤 씨는 그 보자기를 풀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보기만 했다. 종이 몇 장이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윤 씨는 이미 이 집에서 뼛속까지 배웠다. 토지대장, 유언장, 도장이 찍힌 종이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 밤, 손이 떨리면서도 끝내 윤 씨의 손에 쥐어주던 그것.

“기백아, 이거는 니 거다.”

윤 씨는 잠든 아이를 향해 속삭였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숨이 이어졌다. 윤 씨는 그 문서를 아이의 베개 밑에 넣었다. 깊숙이, 더 깊숙이. 그리고 그 위에 작은 쪽지를 한 장 올려놓았다. 먹물이 번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썼다. 손이 떨려 글씨가 비뚤어졌고, 어떤 곳은 먹이 조금 번졌다.


'기백아
이거는 니 거다
크면 알게 될 끼다
엄마'


그게 전부였다.

윤 씨는 더 쓰고 싶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꼭 다시 만나자, 너를 버린 게 아니다—수십 문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꺼내지지 못했다. 글씨를 더 이어가는 순간, 눈물이 종이 위로 떨어져 먹물을 흩트릴 것 같았다. 아니, 먹물보다 더 큰 것이 흩어질 것 같았다. 윤 씨는 입술을 지그시 물고 쪽지를 그대로 덮었다.

보따리를 챙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아이는 입을 반쯤 벌린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한쪽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작은 손바닥을 펴 놓은 채. 어린아이의 잠은 깊어서, 세상이 무너져도 모를 잠이었다. 윤 씨는 그 깊음이 원망스러웠다. 동시에, 그 깊음 덕에 지금 떠날 수 있었다.

‘엄마가 미안하다.’

윤 씨는 소리가 날까 봐 숨으로만 울었다.

방문을 열었다. 삐걱, 작은 소리가 났다. 윤 씨는 그대로 굳어 섰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내려앉았다. 그러나 집은 조용했다. 사랑채 쪽에서 최태국의 코 고는 소리가 멀리서 울렸다. 술 냄새가 바람을 타고 방 안까지 기어들어왔다. 윤 씨는 그 냄새를 들이마시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살짝 돌렸다.

마루를 건넜다. 발소리가 나지 않게. 맨발이었다. 신을 신으면 ‘사람이 떠난다’는 소리가 날 것 같아서.

마당으로 내려섰다. 흙이 차갑고 부드러웠다. 이슬이 내린 흙은 발바닥에 젖어들었다. 윤 씨는 그 젖음이 어쩐지, 오래전부터 자신을 붙잡고 있던 이 집의 촉감 같았다.




달빛이 환했다.

밤이었지만 낮처럼 밝았다. 해원장 뒤란의 감나무가 검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홍시가 주렁주렁 달려, 달빛에 검붉게 반짝였다. 열매라는 것은 원래 익어가는 동안 더욱 무거워지는 법인데, 그 무거움이 달빛 아래서 더 또렷했다.

윤 씨는 감나무 아래를 지나며 잠깐 멈췄다.

‘기백이 탯줄이 저 밑에 묻혀 있제.’

가슴이 조여들었다. 발이 땅에 붙어버린 듯했다. 돌아가고 싶었다. 아이를 끌어안고, 다시는 놓지 않고 싶었다. 이 집의 모든 것을 깨부수고라도. 그러나 윤 씨는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그 힘이 없다는 것을. 힘이 없는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최태국 같은 인간을 꺾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서 윤 씨는 걸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 애썼다. 돌아보는 순간, 발이 다시 감나무 아래로 되돌아갈 것이 분명했으므로.

뒷문이 보였다. 윤 씨는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녹슨 쇠가 차갑고 거칠었다. 그 차가움이 손끝을 넘어 심장까지 올라오는 듯했다. 천천히 들어 올렸다. 삐걱. 문이 열렸다.

바람이 불어왔다.

가을바람이었다. 차갑고 건조했다. 벼 익는 냄새, 흙냄새, 강물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바람은 마치 “이제는 나가라”고 말하는 듯도 했고, “이제부터가 더 무섭다”고 경고하는 듯도 했다.

윤 씨는 문을 나섰다.




들녘이 펼쳐졌다.

달빛에 비친 벼는 은빛 물결 같았다. 바람이 불면 출렁였고, 물결은 한쪽으로 몰렸다가 다시 퍼졌다. 윤 씨는 그 사이를 걸었다. 보따리를 품에 꼭 끌어안고, 맨발로.

벼 이삭이 종아리를 스쳤다. 바스락, 바스락. 풀벌레가 놀라 튀었고, 개구리가 잠에서 깬 듯 울었다. 어딘가에서 올빼미가 길게 울었다. 윤 씨는 그 울음이 마치 누군가의 오래된 한숨처럼 들려, 더 빨리 걸었다.

해원천이 가까워졌다. 물소리가 들렸다. 졸졸졸—해원천은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섬진강으로 가는 물, 그리고 언젠가 바다로 가는 물. 할아버지가 말하던 “낮은 데로 흐르되 끝내 바다에 이른다”는 그 물.

다리가 보였다.

나무다리였다. 해원장과 화림리 쪽을 잇는 다리. 윤 씨는 그 다리를 여러 번 건넜다. 시집올 때도 이 다리를 건넜다. 빨간 가마를 타고. 그때는 달도 이렇게 밝았던가. 그때는 왜,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보이지 않았던가.

‘그때는 몰랐제. 이 다리가 지옥으로 가는 다리인 줄.’

윤 씨는 다리 입구에 섰다. 숨을 한 번 고르고, 발을 내디뎠다. 나무판이 삐걱거렸다.




다리 위에 섰을 때, 윤 씨는 멈췄다.

물을 내려다봤다. 해원천 물은 달빛에 반짝였고, 그 반짝임 아래로는 검고 깊은 것이 숨어 있었다. 물이란 늘 그렇게, 위에서는 빛나고 아래에서는 모든 것을 삼킨다.

‘여그서 뛰어내리면…’

잠깐, 아주 잠깐.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죽을까. 아니면 살까.’

윤 씨는 난간도 없는 다리 위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저고리 끈이 가볍게 펄럭였다. 물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윤 씨는 그 물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말했다.

‘죽으면 안 된다. 살아야 된다. 기백이가… 언젠가 날 찾을 낀데.’

윤 씨는 한 번 뒤돌아섰다.

해원장이 보였다. 기와지붕이 달빛에 검게 빛났고, 담장은 희게 드러났다. 뒤란 감나무가 어둠 속에서 한 덩어리로 서 있었다. 그 안쪽 어딘가에서, 기백이가 자고 있었다. 윤 씨는 자기 가슴을 한 번 세게 눌렀다. 숨이 새어나올까 봐.

‘미안하다, 기백아.’

윤 씨는 돌아섰다. 그러나 걸음을 내딛을 수 없었다.




기백이가 잠에서 깬 것은 동트기 직전이었다.

아이는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희미한 새벽빛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방 안이 너무 조용했다. 늘 들리던 숨소리, 옆에서 몸을 돌리며 이불을 만지는 소리, 가끔 낮게 새어나오 던 엄마의 숨결—그게 없었다.

“엄마…?”

기백이는 몸을 일으켰다. 옆을 봤다. 엄마가 없었다. 이불은 개켜져 있었고, 차가웠다. 엄마가 방금까지 여기 있었다면 이불은 따뜻해야 했다. 아이는 그 차가움을 손끝으로 느끼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엄마!”

기백이는 벌떡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갔다.

“엄마! 어데 갔노! 엄마!”

대답이 없었다.

기백이는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맨발이었다. 이슬에 젖은 흙이 차갑고 미끄러웠다. 아이는 그 차가움을 느낄 틈도 없이 뛰었다. 안채, 사랑채, 행랑채, 부엌, 창고. 어디에도 엄마는 없었다. “없다”는 사실이 점점 현실이 되어, 아이의 목을 조여왔다.

그때, 기백이는 뒷문이 열려 있는 것을 봤다.




기백이는 뒷문을 나섰다.

들녘이 보였다. 하늘이 회색에서 분홍으로, 다시 주황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침이라는 것은 늘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온다. 벼는 바람에 흔들렸고, 안개가 낮게 깔렸다.

그리고 저 멀리, 해원천 다리가 보였다.

다리 위에, 작은 인영이 하나 있었다.

“엄마—!”

기백이는 목이 찢어지도록 소리쳤다.

“엄마! 엄마! 가지 마라!”

그 인영이 멈춰 섰다. 천천히 돌아봤다.

윤 씨였다.

그녀는 다리 위에 서서 기백이를 바라봤다. 보따리를 든 채, 맨발로,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린 채로. 그 얼굴이 어떤 얼굴인지 기백이는 멀어서 보지 못했다. 다만, 엄마가 ‘여기 있다’는 사실만이 눈에 박혔다.

기백이는 뛰기 시작했다.

들녘을 가로질러, 벼를 헤치며, 넘어지고 일어나며. 다섯 살 아이의 다리가 낼 수 있는 속도로, 심장이 찢어질 만큼.

“엄마! 가지 마! 엄마!”

윤 씨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아이를 바라봤다. 그 바라봄 속에는, 말로 다 담지 못할 것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기백이는 뛰었다. 그러나 들녘은 넓었다. 다리는 멀었다. 그 거리는 아이에게 너무 멀었다.

“엄마—!”

윤 씨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기백이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엄마! 가지 마라! 엄마!”

기백이는 울면서 뛰었다. 벼 이삭이 발목을 찔렀고, 아이는 넘어졌다. 무릎이 흙에 부딪쳐 따끔했지만, 그 따끔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다시 일어나 뛰었다.

“엄마—!!”

윤 씨는 멀어져 갔다.




기백이가 해원천 가에 도착했을 때, 윤 씨는 이미 다리의 끝에 있었다.

기백이는 다리 입구에 섰다. 숨이 찼다. 목이 쉬었다. 눈물이 얼굴을 적셨다. 눈물은 뜨거웠고,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아이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견디지 못해 입술을 떨었다.

“엄마…”

아이에겐 너무 먼 거리. 저 멀리, 윤 씨의 뒷모습이 보였다.

보따리를 든 채 맨발로 걸어가는 뒷모습.
바람에 치마가 펄럭이는 뒷모습.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뒷모습.
아침 햇살 속에서 더 작아 보이는, 외롭고도 단단한 뒷모습.

“엄마…”

윤 씨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걸어갔다. 다리를 건너, 저편 강둑으로, 숲길로, 화림리 쪽으로.

기백이는 다리 위로 뛰어올랐다. 나무판이 삐걱거렸다. 물소리가 아래서 더 크게 들렸다.

“엄마! 엄마!”

그러나 윤 씨는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숲 너머로 사라졌다.




기백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 한가운데, 나무판 위에.
햇살이 비쳤다. 아침이 왔다. 새가 울었다. 강물은 졸졸 흘렀다. 세상은 여전히 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무심함이 아이를 더 아프게 했다.

하지만 기백이의 세상은 멈췄다.

“엄마…”

아이는 속삭였다. 목소리는 쉬어 거의 들리지 않았다.

“엄마가… 나를… 버렸어…”

그 말은 아이의 입에서 나왔지만, 뜻을 다 알지 못하는 말이다. 말이 먼저 튀어나오고, 그 뒤에 의미가 덮쳐오는 법이다. 기백이는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눈물이 더는 나오지 않았다. 이미 다 흘렀고, 눈은 따가웠고, 목은 말랐다.

“엄마가… 나를… 버렸어…헉. 헉. 헉.”

숨이 자꾸 목에 걸렸다.




막돌이 어멈이 기백이를 발견한 것은 한참 뒤였다.

그녀는 해원장 안팎을 뛰어다니다가, 마침내 해원천 다리에서 아이를 발견했다.

“도련님! 도련님!”

기백이는 반응이 없었다. 그저 저편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숲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도련님, 집으로 가자. 응? 아이고… 발이 다 젖었네.”

막돌이 어멈이 아이를 안아 들었다. 아이는 축 늘어졌다. 인형처럼.

“엄마…”

막돌이 어멈은 대답을 못 했다.

“엄마가 나를 버렸어.”

막돌이 어멈은 입술을 깨물었다. 울음이 목구멍에 걸렸지만, 울면 아이가 더 깨질까 봐 울지도 못했다. 그저 아이를 꼭 끌어안고, 해원장으로 돌아왔다.




최태국이 일어난 것은 해가 제법 높이 떴을 때였다.

숙취로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그는 물을 찾으러 부엌 쪽으로 가다가, 집안이 소란한 것을 들었다.

“워째 시끄럽노?”

막돌이 어멈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나으리! 마님이… 마님이 안 계십니더!”

“뭐?”

최태국은 안채로 달려갔다. 윤 씨의 방을 뒤졌다. 옷장이 열려 있었고, 옷 몇 벌이 없어졌다. 이불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 차가움이 곧바로 최태국의 분노로 바뀌었다.

“이 계집이…!”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분노는 상처가 아니라, 체면의 금이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의 표정이었다.

“야! 막돌이 어멈! 마을 사람들 불러라! 지금 당장 찾아야 된다!”

“예, 나으리!”




사흘 동안 수색이 계속되었다.

해원천을 따라, 화림리로 가는 길을, 산골짜기를, 숲을, 논밭을. 마을 사람들이 동원되었다. 최태국은 돈을 풀었다.

“윤 씨 찾는 사람한테 백만 원 준다!”

그러나 윤 씨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흘째 되던 날, 최태국은 수색을 중단했다.

“됐다. 더 찾지 마라.”

“근데 나으리…”

“죽었겄제. 어디 강에 빠져 죽었든가.”

그는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애초에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어디 남자 따라갔겄제. 어차피 그런 계집이었다.”

그 말은 집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더 깊이 얼렸다. 막돌이 어멈은 입을 다물었다. 기백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다만 손끝이 잠깐, 아주 잠깐 움찔했다. 아이는 문턱 아래에 시선을 박아 둔 채, 눈동자만 먼 데로 미끄러져갔다. 마치 그 말이 방 안에 떨어져 굴러다니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척하려는 듯이.




기백이는 일주일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밥도 거의 먹지 않았다. 물만 조금 마셨다. 엄마의 방에 앉아 창밖만 바라봤다. 막돌이 어멈이 다가가면 피했고, 최태국이 부르면 얼굴을 돌렸다.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않았다. 아이의 눈이란 원래 사람을 찾아붙는데, 기백이의 눈은 사람을 피해 달아났다.

열흘째 되던 날 밤, 기백이는 베개 밑에서 뭔가를 만졌다.

낡은 보자기였다. 손끝에 거친 천이 걸렸다. 기백이는 조심조심 그것을 끌어냈다. 보자기 안에는 종이들이 들어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 종이에서 나는 묵은 냄새, 군데군데 단단히 찍힌 붉은 도장 자국. 검은 글씨들이 줄을 맞춰 빽빽이 박혀 있었지만, 기백이에게는 그것이 글인지 그림인지조차 분간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이는 알았다.
엄마가 자기를 위해 숨겨둔 것, 엄마가 남기고 간 것.

맨 위에 작은 종이가 한 장 더 얹혀 있었다. 종이 끝이 살짝 접혀 있었고, 먹이 번져 얼룩진 자리도 보였다. 기백이는 종이를 손바닥으로 펴 보았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면서도, 글씨의 모양이 낯익었다. 엄마가 부엌에서 장독대 옆에 적어두던 글씨들이다. 장날에 막돌이 어멈에게 시키며 끄적이던 선들. 아이는 글을 읽지 못했지만, 엄마 손이 지나간 자국은 알아보았다.

기백이는 종이를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먹 냄새와 엄마 방 냄새가 섞여 났다.
아이의 눈꺼풀이 한 번 크게 깜빡였다.

기백이는 아무 말 없이, 종이들을 다시 보자기 속에 가지런히 넣었다. 혹시라도 구겨질까 봐, 작은 손으로 몇 번이나 매만졌다. 그때 문밖에서 기척이 스쳤다. 막돌이 어멈이 문지방에 잠깐 섰다가 안을 들여다봤다. 그녀의 눈이 아이 손끝에 붙은 작은 종이 한 장에 머물렀지만, 막돌이 어멈은 숨을 한 번 삼키고는 아무 말 없이 문틀에서 몸을 떼어 조용히 물러났다.

기백이는 그 종이들을 다시 보자기에 꼭 싸매어 벽장 깊숙한 곳에 숨겼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엄마가 남기고 간 유일한 것, 엄마와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되었다.




가을이 깊어갔다.

벼는 다 익었고, 추수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낫을 들고 들녘으로 나갔다. 벼를 베고 단을 묶어 논두렁에 세웠다. 말없이, 오래 해온 일처럼. 세상은 사람 하나의 상처 따위와 상관없이 제 계절을 굴렸다.

기백이는 뒤란 감나무 아래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봤다.

홍시는 다 익었다. 막돌이 어멈은 감을 따서 말렸다. 달큰한 냄새가 마당을 채웠지만, 기백이는 먹지 않았다.

‘엄마가 좋아하던 감인데.’

기백이는 해원천 쪽을 바라봤다. 저 다리 너머로 엄마가 갔다.

‘엄마는 돌아올 끼다. 꼭.’

그 믿음은 아이가 스스로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줄이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 줄은 조금씩 닳아갔다.




겨울이 왔다.

첫눈이 내렸다. 해원장 마당에도, 뒤란 감나무에도, 들녘에도, 해원천 다리 위에도. 눈은 모든 것을 같은 색으로 덮어버리며, 마치 “모든 것은 잊혀질 수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에는 눈이 덮이지 않았다.

기백이는 뒷문 밖에 서서 눈을 맞았다.

차가운 눈송이가 얼굴에 떨어져 녹았다. 눈물처럼.

‘엄마도 이 눈을 보고 있을까.’

기백이는 해원천 쪽을 바라봤다. 다리는 눈에 덮여 희게 보였다. 그 하얀 다리 위에서, 아이는 여전히 엄마의 뒷모습을 본다.

보따리를 든 채 맨발로 걸어가는 뒷모습.
돌아보지 않고 멀어지는 뒷모습.

그 뒷모습은 기백이의 가슴 속에 새겨졌다. 상처로, 그리고 자라나는 무언가로. 아이는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아직 몰랐다. 다만 그 무언가가, 평생 자신을 움직일 것임을 어렴풋이 알았다.

“엄마…”

기백이는 속삭였다. 목소리는 바람에 실려 사라졌다.

“나 여기 있다. 여기…”

대답은 없었다. 눈만 내렸다.




그해 겨울을 지나, 봄이 왔다.

감나무에 새순이 돋고, 들녘에 보리가 자랐다. 해원천 얼음이 녹았다. 물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 길을 갔다.

그러나 윤 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기백이는 달라졌다.

말이 줄었다. 웃지 않았다. 눈빛이 차가워졌다. 아이가 차가워진다는 것은, 세상이 아이를 따뜻하게 잡아주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가끔, 기백이는 벽장 깊숙한 곳에서 보자기를 꺼내어 들여다봤다. 엄마가 떠나며 남긴 것. 엄마가 자기에게만 남긴 것. 그러면 엄마는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었다.

기백이는 보자기를 다시 꼭 싸매어, 벽장 더 깊숙한 데—손이 잘 닿지 않는 데—숨겼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자주 주먹을 쥐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빨리 커야 한다는 것. 그래야 저 다리 너머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다짐하고 확인하는 몸의 반응 같았다.

해원장 뒤란의 감나무는 새 잎을 틔웠다.
해원천은 여전히 흘렀다.
들녘에는 봄바람이 불었다.
세상은 돌아갔다.

하지만 기백이의 시간은—그날, 그 다리 위에서 한 번 멈춘 뒤—다시는 예전처럼 흐르지 못했다.

엄마의 뒷모습을 본 그날.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뒷모습.

그것은 기백이의 첫 상처였고, 첫 버림받음이었으며, 앞으로 자라날 어떤 마음의 씨앗이었다. 그 씨앗은 흙 속에서처럼 조용히, 그러나 끝내—싹을 틔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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