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흙의 아들들

9장 성이 다른 씨앗

by 진동길

9장 성이 다른 씨앗

1978년 겨울(1978.12 ~ 1979.2)


무오년이 기미년으로 넘어가던 겨울. 달력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해원천 물빛은 끝내 맑아지지 못하고, 얼음과 흙이 서로를 물고 늘어졌다. 얇게 언 얼음 아래로는 검은 물이 더디게 움직였고, 물이 지나간 자리마다 흙은 살처럼 불어났다. 바람은 마을을 훑고 지나가며 담장 위의 눈을 조금씩 깎아 먹었다. 눈이 줄어드는 속도만큼, 집들의 속내가 더 또렷해지는 겨울이었다.


해원장 안채에는 새 달력이 걸렸으나, 종이의 새하얀 면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궁이 연기와 사람의 숨이 달라붙어 금세 누렇게 바랬다. 그 누런 기운 속에서, 아직 말로 불리지 않은 무엇이 자라고 있었다. 소문은 늘 그런 식으로 태어났다. 누가 먼저 꺼내지 않아도, 방 안의 공기부터 먼저 무거워졌다.


마당 장독대의 뚜껑들은 새벽마다 얼어붙었다가, 해가 뜨면 다시 풀렸다. 언 것과 풀린 것이 서로를 반복해서 속이는 동안, 집안의 비밀도 그렇게 몸집을 키웠다.




그해, 해원장 뒤채에 살던 아이 이야기가 그랬다.
사람들은 그 아이를 “강수만”이라 불렀다. 강씨 성을 가진 아이. 그런데 해원 사람들 눈에는, 그 성이 너무 가벼웠다. 이 집 담장에 붙어사는 아이는 본래 그 집 성을 닮아야 한다고, 사람들은 제멋대로 믿었다. 믿음은 근거가 없어도 단단해진다.


수만은 기백보다 세 살이 어렸다. 이제 겨우 네 살을 넘긴 아이였으나, 그 눈깔은 결코 네 살짜리의 것이 아니었다. 제 어미의 기침 소리에 숨을 죽이며 자라난 아이의 눈은, 이미 사람의 속을 다 읽어버린 노인처럼 깊고 서늘했다.


“저 애, 눈깔이 영….”

국밥집 뜨거운 김 너머로 누가 혀끝을 굴리면 누군가는 숟가락을 멈추었다.
“눈깔이 무슨 눈깔인데?”
“똑똑한 눈깔이지. 똑똑한데… 따뜻한 눈깔은 아이다.”
그 말이 나가자마자 누군가는 낮게 받았다.
“따뜻할 일이 있나. 태어난 꼴이 그라는데.”




태어난 꼴.
사람들은 그 말을 참 쉽게 했다. 태어난 꼴이 어쩌구, 피가 어쩌구. 남의 피를 재는 일에는 죄책감이 잘 붙지 않았다. 피는 멀리서 보면 늘 붉고, 가까이서 보면 늘 비릿하다. 가까이서 비릿함을 맡아본 사람만이 말을 아끼는데, 장터의 혀들은 가까이 가지 않고도 안다고 우겼다.


강수만의 어머니는 식모 출신이었다.
이 집에 들어온 지도 몇 해가 되었고, 늘 뒤채에서만 움직였다. 안채 쪽으로 발을 들이면 눈이 따라왔고, 눈이 따라오면 말이 따라오고, 말이 따라오면 값이 따라왔다. 그래서 그녀는 안채를 피해 살았다.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했다. 피할 수 없는 것은 몸으로 받았다.


그 겨울, 여자는 자주 쓰러졌다.
부엌에서 그릇을 닦다 말고 휘청했고, 뒤란에서 빨래를 비비다 말고 주저앉았다. 기침은 마른장작 태우는 소리처럼 길었고, 끝에 가서는 피가 섞였다. 막돌이 어멈이 뒤채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 안에는 약 냄새보다 젖은 흙냄새가 먼저 앉아 있었다.


“수만아. 니 어무이 또 이라나?”
막돌이 어멈이 물어도 아이는 대답을 잘 안 했다.
대답 대신, 아이는 눈만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여섯 살, 일곱 살짜리 눈이 아니었다. 살갗이 아니라 사람 속을 보는 눈이었다.


아이의 말은 늦고 몸은 약했다. 가끔은 몸이 뻣뻣해지며 눈을 뒤집고 쓰러졌다. 뒤채 사람들은 그걸 ‘발작’이라 하지 않고 “경기한다”라 했다. 말은 늘 순해 보이려고, 더 무서운 걸 더 순한 말로 덮었다.


소피아는 그 아이를 멀리서 본 적이 있었다.
안채 마루에 앉아 있을 때, 뒤채 쪽에서 작은 그림자가 지나갔다. 어깨가 좁고 발이 느린 그림자. 소피아는 그 그림자를 보고도 모른 척했다. 모른 척하는 일이 이 집에서는 가장 먼저 배우는 예절이었다.
그런데 모른 척하면서도 마음 한쪽이 자꾸 걸렸다. 그 아이는, 너무 이 집 같았기 때문이다.
누구의 씨인지—소피아는 짐작만 했지, 끝내 묻지 않았다. 묻는 순간, 이 집은 더 많은 걸 요구할 테니까.


기백은 더 먼저 알아챘다.
기백은 집안 곳곳을 다니며 냄새로 사람을 구분했다. 밥 냄새, 땀 냄새, 담배 냄새, 약 냄새. 뒤채는 늘 약 냄새가 났다. 약 냄새와 젖은 이불 냄새가 섞이면 그건 ‘숨이 약한 집’ 냄새였다. 기백은 그 냄새를 싫어했다. 싫어하는데도 자꾸 맡게 되는 냄새는 사람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이현은 그때 이미 글씨와 숫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세 살배기 아이가 사람보다 종이를 오래 보는 일은 이상했지만, 해원장에서는 “이상한 것”이 먼저 당연해졌다. 소피아는 그 아이의 시선이 어디로 자라는지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른 척했다. 이 집에서는 ‘어쩔 수 없다’가 가장 흔한 기도였고, 가장 흔한 변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뒤채에서 소리가 났다.
새벽이었다. 해원천 안개가 담장을 넘어오던 때.


“아이고—!”


여자 목소리가 한 번 터지고, 그 뒤로는 기침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막돌이 어멈이 문을 박차고 나갔고, 뒤채 하인들이 허둥지둥 뛰어갔다. 소피아는 안채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소리에는 늘 사람의 사정이 붙어 있었다. 사정은 붙어 나오면 떼어내기 어렵다.


막돌이 어멈이 뒤채 문을 열었을 때, 여자는 이미 반쯤 꺼져 있었다.
눈은 뜨고 있는데, 눈동자는 어디에도 초점을 두지 못했다. 가슴은 얕게 들썩였고, 입술은 말 대신 숨만 새었다. 아이 강수만은 방구석에 앉아 있었다. 아이는 어머니를 붙잡고 울지 않았다. 울지 않는 아이는 더 무섭다. 울음이 없는 자리에 무엇이 들어앉는지 사람들은 알기 때문이다.


“어…멈….”
여자가 겨우 소리를 만들었다. 말이 아니라 먼지 같은 소리였다.
막돌이 어멈이 얼굴을 가까이했다.
“와이라요. 말해보이소.”


여자는 눈을 힘껏 굴려 어딘가를 가리키려 했다. 손끝이 떨렸다. 그 손끝이 가리킨 곳은 문밖이 아니고, 안채 쪽도 아니었다. 그저… 공중이었다. 공중에 매달린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했다. 막돌이 어멈은 그 손끝을 보고, 무릎이 잠깐 풀렸다. 잡으려는 게 공중이면, 그건 이미 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산파 박 씨가 불려왔다.
그녀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먼저 아이를 봤다. 아이 얼굴에 잠깐 시선이 박혔다. 산파는 이런 얼굴을 안다. 누가 인정하지 않는 얼굴. 인정이 없으면 얼굴이 먼저 굳는다.
산파가 여자의 맥을 짚고 고개를 흔들었다.


“힘이 다 했네예.”


막돌이 어멈이 입술을 깨물었다.
“살릴 수는… 없나예?”

“ … ”
산파는 고개를 흔들며, 한숨으로 말끝을 흐렸다. 흐린 말은 사람을 덜 아프게 하지 못한다. 다만 덜 책임지게 해 준다.


여자는 그날 낮을 넘기지 못했다.
죽음은 조용히 왔다. 조용한 것일수록 더 잔인하다. 큰소리로 부수고 들어오는 죽음은 사람에게 준비라도 시키는데, 조용히 닫히는 숨은 준비할 틈도 안 준다. 여자는 눈을 감기 전에, 아이를 한 번 봤다. 오래 봤다. 그리고 마지막에 입술만 움직였다.


“수만….”


아이 이름이었다.
그 한 마디가 남기고 간 것은 사랑이었고, 동시에 빚이었다. 남겨진 아이가 갚아야 할 빚.




그 소식은 해원천 물길보다 빨리 안채로 들어갔다.
최태국은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막돌이 어멈이 말을 꺼냈다.


“나으리… 뒤채 그….”


최태국은 담배를 한 번 깊이 빨고, 연기를 내뿜었다.
“죽었나?”


그 목소리는 놀람도 슬픔도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막돌이 어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는… 어찌…”
최태국이 담배를 발로 비벼 껐다. 마치 벌레를 밟듯이.
“애는 남겨두고.”
“나으리, 그 애는….”


막돌이 어멈이 말을 삼키려 했다. ‘그 애는’ 뒤에 붙을 말이 너무 많아서였다. 그 애는 아프다, 그 애는 약하다, 그 애는 불쌍하다, 그 애는—.


최태국이 막돌이 어멈을 쳐다봤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마라.”
그리고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사람 하나 죽는다고 집안이 흔들리나.”


그 말이 차가워서가 아니라, 너무 ‘당연한 듯’ 해서 더 무서웠다. 당연한 말이 되면 사람은 사람을 버릴 때 망설임이 없다.


막돌이 어멈은 그날 저녁, 소피아에게도 말을 전했다.
소피아는 잠깐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덜 본 척할 수 있다.


“애는…?”
“애는 울지도 않습니더.”
“안 울어요?”
“예. 울음을 잃어뿟는지도… 모릅니더.”


소피아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울음을 잃은 아이는, 나중에 무엇을 얻게 되는지 그녀는 어렴풋이 알았다. 울음 대신 계산을 얻고, 애착 대신 거리를 얻고, 따뜻함 대신 차가운 지혜를 얻는다. 어떤 지혜는 사람을 살리고, 어떤 지혜는 사람을 죽인다.


며칠 뒤, 여자의 장례는 소박하게 치러졌다.
뒤채 사람 몇, 산파 박 씨, 막돌이 어멈.
최태국은 얼굴도 안 비쳤다. 소피아는 안채에서 기도만 했다. 기도는 길지 않았다. 이 집은 귀가 먼저 열리는 집이니까.
기백은 담장 너머로 몰래 봤다. 아이는 무덤 앞에서도 울지 않았다. 대신 땅을 오래 봤다. 땅을 보는 눈은 뿌리로 간다. 뿌리는 나중에 줄기가 된다.




그날 밤, 강수만은 뒤채 방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밥은 식었고, 국은 기름이 굳어 있었다. 아이는 숟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 빨리 먹지 않았다. 서두르면 누군가가 ‘급한 놈’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급한 놈은 늘 손해를 본다. 아이는 이미 손해가 무엇인지 아는 얼굴이었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기백이었다. 기백은 문턱에서 멈추었다. 문턱은 이 집에서 늘 경계였다. 넘어가면 관계가 되고, 관계가 되면 책임이 된다. 기백은 책임이 싫었다. 그런데도 발은 거기까지 갔다.


강수만은 고개를 들었다. 두 아이의 눈이 잠깐 마주쳤다.
기백은 먼저 눈을 피했다.
강수만은 피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는 눈은 상대를 더 먼저 약하게 만든다.


“니… 이름 뭐고?”
기백이 툭 던지듯 물었다.
강수만은 한참 뒤에야 대답했다.
“수만.”
“성은?”
“강.”


기백은 코웃음을 치려다 말았다. 웃으면 자신이 더 가벼워질 것 같았다.
“니 아부지는….”
그 질문은 끝까지 가지 못했다. 질문을 끝까지 밀면, 그 끝에서 자신도 같이 찔릴 것 같아서였다.


강수만이 그때 아주 조용히 말했다.
“여기서는… 말하면 안 되는 거 많다.”


그 말이 너무 어른 같아서, 기백은 순간 화가 났다.
“니 뭔데 어른 말 하노.”
강수만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하지 않는 것이 이 아이의 힘이었다.


기백은 발길을 돌렸다.
돌리면서도 등 뒤가 간질거렸다. 뒤에서 누가 보고 있는 느낌. 보고 있다는 느낌은 사람을 자꾸 굳게 만든다. 굳은 사람은 언젠가 부러진다.


안채 쪽에서는 그날도 최태국의 목소리가 났다.
돈 이야기, 땅 이야기, 길 이야기.
이 집의 미래는 늘 땅 위에 그려졌고, 사람은 그 그림 속에서 발처럼 움직였다.


강수만은 뒤채 창문 틈으로 안채 불빛을 봤다.
불빛은 따뜻해 보였지만, 따뜻함은 늘 문턱 안쪽에서만 머물렀다.


방 안에는 아직도 어머니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젖은 이불 냄새, 약 냄새, 그리고 기침 끝에 섞이던 피의 비릿함.
그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사라지면 안 되는 것 같았다. 사라지는 순간, 어머니의 얼굴까지 지워질까 봐.


그런데 그 냄새들 사이로, 다른 냄새가 자꾸 섞여 들어왔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던 냄새. “저 애는 뭔가 냄새가 난다” 하고, 근거 없이도 확신해 버리는 그 말의 냄새.


수만은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을 줄 몰랐다.
다만 사람들이 자기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릴 때, 눈이 먼저 찡그려지는 걸로 알았다.
그 찡그림이 억울했다.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태어난 자리만으로 이미 더럽혀진 것 같아서.


아이는 울지 않았다.
울음을 내면 이 집에서는 더 빨리 잡아먹힌다는 걸, 어머니의 등을 보며 배웠다.
어머니는 늘 “괜찮다”를 먼저 말했고, 괜찮지 않은 날에도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어머니를 살린 게 아니라, 오래 미루어 죽게 했다는 걸 수만은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수만은 창문에 이마를 살짝 댔다.
유리는 차가웠고, 차가움은 어머니 손등을 닮았다.
불빛은 환했지만, 환함은 자기 쪽으로 넘어오지 않았다.


그는 입술을 달싹였다. 소리가 나지 않게.
들키면 말이 되고, 말이 되면 값이 되고, 값이 되면—사람이 되는 걸 빼앗기니까.


“엄마….”


그 한 마디가 목구멍에서 막혔다.
이 집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일조차 조심스러웠다.
수만은 그 조심스러움 속에서, 자기 몫의 서러움을 처음 만졌다.
크게 울지도 못하고, 따져 묻지도 못한 채로 가슴 안쪽에만 고여 있는 물 같은 것.


그는 다시 창밖을 봤다.
안채의 불빛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건 불빛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었다.
수만은 아주 낮게, 자신에게만 들리게 중얼거렸다.


“사람도… 땅도… 기억한다.”


그 말은 이를 갈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잊히지 않겠다는 다짐도 아니었다.
그저, 잊히면 너무 억울해서—어머니가 여기서 버틴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게 될까 봐, 그는 기억이라는 것에 매달렸다.

서자는 그렇게, 남이 달아주지 않은 이름표를 제 가슴에 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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