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고 신성한 음식문화로 6차 산업화
지역 활성화 전략이라는 분야에 대하여 연구하다가 문득 재미있는 사실을 알았다. 1차 산업의 종류를 영어로 번역하다가 깨달은 일이다. 영어 단어 중, 임업은 Forestry, 축산업은 Livestock industry, 수산업은 Fishing Industry, 2차 산업의 공업은 Industry이고 광업은 Mining industry인데 농업은 'Agriculture'라고 표기한다. 농업에만 문화를 나타내는 'Culture'가 들어간다. 땅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문화라는 의미일까, 하고 새삼스럽게 농업이라는 분야에 대하여 경의를 갖게 된다.
그러고 보니 땅을 통해서 이루어진 농경문화에는 우리 삶과 밀접한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는 DNA가 있는 것 같다. 여러 지역의 땅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생산물로 만들어지는 그 지역만의 특성이 살아있는 음식문화가 그렇고, 지리적 특성에 따라 독자적인 생산지가 그렇다. 포도가 자라기에 적합한 토양을 갖고 있는 지역의 와인 생산지에서는 그 지역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만들어내고, 콩을 재배하기에 적합한 산지에서는 콩을 소재로 한 간장 및 된장 등 가공업이 발달하여 소중한 지역자원으로 발전하게 마련이다.
땅에서 생성된 생산물을 활용한 파생산업은 역사와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서 또 다른 문화로 거듭 발전하게 된다. 농경문화에서 음식문화로, 음식문화에서 축제 문화, 여가문화 등등으로.
내가 거주하고 있던 규슈는 우리나라와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는 지역으로서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농산물이 풍부하며 100년 이상의 전통을 지켜온 농경문화가 많이 남아있었다. 사회적 환경이 변화하고 사람들의 생활 패턴도 바뀌어서 농업에 사용되는 땅과 농업 종사자들도 감소하면서 농산물 재배지와 농가의 소규모 식품가공 공장들도 감소하며 쇠퇴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업을 중심으로 한 6차 산업화는 농업지역에서 농가 레스토랑을 포함한 복합 문화 커뮤니티 시설로 영역을 확장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던 후쿠오카 인근에는 이러한 농가 레스토랑이 많은 편이었다. 연구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모처럼 일본에서 일본 문화에 밀착하여 생활하고 있으니 시간과 정성을 들여 농업을 통한 커뮤니티 시설과 역사를 소중하게 지켜가는 농가식당을 많이 방문하려고 노력했다. 이른바 땅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그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6차 산업의 현장을 탐방하는 것이었다.
•후쿠오카현 이또시마시(福岡県糸島市)의 「이또사이사이(伊都菜彩)」
후쿠오카시에서 해변을 끼고 북서방향으로 약 40분 거리의 이또시마시(糸島市). 이 지역은 곡창지대로 불릴 만큼 곡식과 채소 생산이 풍부한 지역으로서 예부터 간장공장과 양조장이 발달한 곳이다. 농산물을 활용한 6차 산업화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는 농산물 직판장 「이또사이사이(伊都菜彩)[1]」는 문화 콘텐츠로 복합화된 이또시마시의 대표적인 로컬 마켓이다.
「이또사이사이」는 그 이름 자체에 다채로운 이또시마의 농업 생산물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로컬 푸드 마켓과 지역 특산물을 식자재로 한 음식점, 원예 화원, 지역 공예가의 공예품 전시장 등으로 구성된 지역의 복합상업시설이다. 논과 밭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서 말 그대로 친근한 로컬 마켓이다.
그날 아침 수확한 신선한 농산물과 수산물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나중에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우리나라 어느 농업지역의 지자체 공무원들이 시장조사차 다녀갔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로컬 푸드 마켓이 많이 만들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후쿠오카현 이또시마시(福岡県糸島市) 「이또아구리(伊都安蔵里)[2]」
「이또아구리」는 이또시마시의 지역 이름 앞 글자와 농업이라는 뜻의 영어 애그리컬처(Agriculture)를 조합하여 일본식 음으로 표기한 식당 이름이다. 현미밥과 가정식 식단이 특징이다. 자연이 풍요로운 은혜의 고장 이토시마는 오래전 간장이나 소주, 술 제조에 종사하고 있던 「구 후쿠쥬 간장(旧福寿醤油)」의 공장 건물을 거점으로 해서 자연농법과 무농약, 유기농 채소를 소재로 건강한 '일본 식문화'를 지켜나간다는 사업 이념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1933년에 건축된 오래된 건물을 개조하여 단아한 일본식 정원과 고즈넉한 식당, 고가구를 장식한 일본식 앤티크 카페 등으로 조성되어 있어서 일본의 소박한 정취를 한껏 누릴 수 있다. 또한 작은 농가들이 생산한 그 지역의 농산물과 가공식품을 판매하는 매장도 함께 갖추어져 있어서 기념품이나 가정식 가공식품을 구매하러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후쿠오카현 우키하시(福岡県うきは市) 「포도의 씨(ぶどうの種)」
이토시마시에서 오이타를 향하여 가는 도중에 우키하시(うきは市)라는 지역을 지나는데, 이곳은 포도농장이 발달한 지역이다. 농촌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포도의 씨(ぶどうの種 - 부도노 타네)[3]」라는 농가 레스토랑은 약간 경사진 산기슭에 위치해서 한참을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이런 산속 안에 뭐가 있다는 걸까 의심하면서.
도착했더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번호표를 받았는데 언제 밥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기다려야 했다. 카페와 디자이너의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갤러리형 패션 매장과 도자기와 생활소품을 판매하는 소품 매장과 연계되어 있어서 레스토랑을 예약해 놓고 기다리는 동안 갤러리와 매장을 관람하기에 적당한 관광코스이다. 농가에서 재배한 신선한 재료를 활용하여 깔끔한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실제로 식당을 예약하고 거의 두 시간을 기다렸는데 여기저기에 조성되어 있는 정원과 갤러리를 둘러보려면 두 시간 정도는 필요했다. 이곳 농가의 밥상은 밥만 먹는 것이 아니고 창밖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건강이라는 문화를 꼭꼭 씹어 먹는 듯한 또 다른 음식문화를 맛볼 수 있었다.
[1] 참조:이또사이사이 홈페이지, https://ja-itoshima.or.jp/itosaisai/
[2] 참조:이또아구리 홈페이지, http://itoaguri.jp
[3]참조:부도노타네 홈페이지, https://www.budounota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