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처음 살게 된 곳은 후쿠오카 중심 지역인 텐진(天神)에서 전철을 타고 세 번째 역인 다카미야(高宮)라는 곳이었다. 국립대학인 규슈대학(九州大学)을 시작으로 전국에서도 편사치 랭킹(偏差値ランキング : 우리나라 내신에 해당하는 학력 편찻값 순위)이 높다고 이름난 고등학교와 중학교 등이 많아 학군이 좋다고 소문이 난 노마(野間)라는 동네이다.
일류 대학이 많이 있는 동경(東京)의 학군이 좋은 동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자녀들의 취학에 열심인 가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조용한 동네로 생활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이어서 일본 생활 8년 동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가 다시 이사를 올 정도로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쇼핑이나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다카미야(高宮) 역에서 내려서 횡단보도를 건너 ‘노마 사거리(野間四つ角)’라는 모퉁이를 돌아 또 횡단보도를 한 번 더 건너야 했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서있는 그 모퉁이에 나름 그 지역의 랜드마크라고 할 만큼 유명한 「鯛宝楽 (타이호라쿠)[1]」라고 하는 「잉어빵 가게」가 있다.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통칭하는 잉어빵이 아니라 「타이야키(鯛焼き)」로 「도미 빵」이라고 해야 맞다.
붕어빵이나 잉어빵처럼 생선 모양을 한 구이 기계를 사용하는데 밀가루 반죽 안에 팥 앙금을 넣어 기계를 앞뒤로 돌려가며 구워내는 방법은 같지만, 지칭하는 이름이 다르고 그것을 먹거나 사는 사람들의 행위 자체에 우리나라에는 없는 특별한 사회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일본어 「메데타이(目出度い)」는 「おめでとう!(오메데또! : 축하해요! )」라는 뜻의 기쁜 일이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에 사용하는 경사, 축하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때 발음되는 「타이」를 강조하여 일본어로 생선 도미에 해당되는 「타이(鯛)」를 누군가에게 축하의 뜻을 전할 때, 또는 시험을 보거나 면접을 보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하는 선물로 이용한다.
하지만 비린내 나는 생물 생선 그 자체를 주고받기에 부담스러웠던가 도미 모양을 한 「타이야키(鯛焼き)」를 선물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주목한 것은 도미빵이 아니었다. 작은 건물 1층을 사용하는 점포 위에 2층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 가게 파사드(정면) 보다 더 커다란 간판이다.
「この地で生まれ、鯛焼き一筋45年」
「이 자리에서 태어나, 타이야키 한 길 45년」
「이 자리에서 태어나, 타이야키 한 길 45년」 간판
여기 이 모퉁이에서 45년 동안 도미야키를 구워 팔았다고?
진짜인지 거짓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팔아야 얼마 남지 않을 것 같은 도미 빵을 팔아서 가게 월세와 아르바이트 직원 인건비를 충당할 수나 있을까, 어떻게 45년 동안 꿋꿋하게 장사하고 있지?
매일 가게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한 번도 사 먹지도 않는 주제에 너무나 궁금했다.
갑자기 소낙비가 내린 한여름의 어느 날, 우산을 가져오지 않아서 전철역을 나와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서 더욱 거세진 비를 피하느라 마침 45년의 역사 깊은 그 타이야키 가게 유명한 「鯛宝楽(타이호라쿠)」의 처마 밑에서 비가 잦아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 여름에도 팥 앙금을 넣은 뜨거운 도미빵을 사 먹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무신경하게 내리는 비를 쳐다보고 있었다. 비는 더욱 거칠어지고 있는 가운데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의 허기를 부추기게 되었다. 팥 앙금의 단 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평소에도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이 가게 앞에서 너무 오랜 시간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슬금슬금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가게 안에서 열심히 도미 빵을 굽던 점원이 20분이 넘게 비를 피하고 있는 나를 의식하고는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이쯤 해서 비를 피하게 해 준 답례로 하나라도 사는 게 좋을 듯했다.
“저기요, 제가 별로 단 음식을 안 좋아하는데, 제가 먹을 수 있는 도미 빵이 있을까요? 아마야토리(雨宿り [2]) 답례로 한 개만 사려고요”
“아~. 그래요? 그럼 팥 앙금보다 커스터드 크림을 넣은 도미 빵은 어떠신가요?”
"커스터드 크림이라면 저도 좋아해요. 하나 주세요!”
도미 모양을 한 어찌 보면 촌스러운 빵 안에 어떻게 세련된 커스터드 크림을 넣을 생각을 했지?
의심 한입을 꿀꺽 삼키며 바삭하게 구워진 도미 빵 머리 부분을 앙! 하고 한입 베어 물었다.
“무슨 말씀을! 저흰 1년 4계절 매상의 차이가 그다지 없어요! 계절 메뉴도 있고 이벤트도 자주 하거든요. 여기가 본점이고 지점도 몇 군데 오픈했어요. 매출이 부진하면 또 발 빠르게 프로모션을 기획해서 경영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도록 모두 들 노력하니까요.”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헉! 붕어빵 장사라고 내가 너무 얕잡아 봤다!
노마 명물 타이야키 타이호라쿠 野間名物博多鯛焼き「鯛宝楽」
다양한 계절 메뉴와 이벤트를 소개하고 있었다.
1월에서 2월에는 계절과일인 유자를 활용한 앙금을 만들어 기간 한정 메뉴를 개발하였고, 벚꽃 철인 3월에서 4월에는 사쿠라(벚꽃) 앙금을, 6월에서 8월은 완두콩 앙금, 이벤트 프로모션으로 커스터드와 초코 커스터드 앙금을.
계절 이벤트로는 도미 모양의 과자를 올린 일본풍 파르페, 팥 앙금 아이스바, 팥빙수.
11월에서 3월은 수험생들을 위한 선물로 「합격타이야키(合格鯛焼き)」를 기획 판매하고 있으며, 12월에서 3월은 부부 사이가 더 돈 톡 해지라는 염원을 담은 「메오토젠자이(夫婦ぜんざい)[3]」라는 메뉴로 후쿠오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지역 브랜드로서 당당하게 랜드마크의 자리를 빛내고 있었던 것이다.
1년 4계절, 365일 타이야키를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프로모션과 메뉴로 「그 자리에서 태어나 타이야키 45년」을 이어 온 그들의 열정과 노력에 가슴이 숙연해졌다.
매년 간판을 바꾸는 작업이 귀찮은지 아니면 경제적 손실을 덜기 위함인지 「타이야키(鯛焼き)鯛宝楽」는 내가 노마에서 살고 있는 동안 간판을 바꾸지 않았다.
그다음 해도, 또 그다음 해도
「この地で生まれ、鯛焼き一筋45年」
「이 자리에서 태어나, 타이야키 한 길 45년」
그런데 얼마 전, 후쿠오카를 방문 한참에 그 가게의 간판이 바뀌었는지,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망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어 가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