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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솔 Nov 15. 2024

행복 생각해 보기



  행복, 어떻게 정의하세요?


  행복은 쾌락으로 연결되어, 쾌락을 강조한 에피쿠로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새벽 독서 모임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지는 식이다.


  에피쿠로스가 강조하는 쾌락이 육체적이고 감각적 쾌락이며, 먹는 것에 대한 쾌락을 추구한 나머지 너무 많이 먹는다는 비난들도 있었지만, 실제로 그가 추구했던 진정한 쾌락의 취향은 이와 상반되었다고 한다.


에피쿠로스는 포도주보다는 물을 마셨으며, 빵과 채소와 한 줌의 올리브로 꾸며진 만찬으로도 행복해했다. “마음 내킬 때마다 잔치를 베풀 수 있도록 내게 치즈 한 단지를 보내주게”라고 친구에게 부탁했다.

철학의 위안, 알랭 드 보통.


  위 책에 따르면, 에피쿠로스는 우리를 세속적인 잣대로 평가하지 않고 내면적인 자아에 관심을 가지는 우정,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독립하는 대신 검소한 생활을 택하며 얻는 자유, 혼란, 배제, 마음의 고통, 불안 같은 부정적인 것들을 예방할 수 있는 사색을 추구했다고 한다.

  이어, 우리가 값비싼 물건을 갈망하는 순간에 그것을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자신에게 엄숙히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에피쿠로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구입하는 것이 지프(자동차) 일 때,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아페리티프(식사 전에 마시는 술) 일 때, 우리가 찾고 있던 우정이 아닐지, 멋진 목욕탕과 목욕 도구를 구입할 때, 우리에게 평온을 가져다주는 사색을 원하지는 않는지 연결시켜 제시한다.



  나는 어제 낮에 남편과 짜파게티를 먹다가 행복하다는 감정이 들어 남편에게 행복하다고 표현했다. 잠깐 공원에 함께 산책하고 돌아오면서 정한 메뉴가 짜파게티였고, 같이 후루룩 먹다가 갑자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끓여줘서 그런가… 동네 사람들! 아내에게 라면 끓여주세요~~!!)


  위의 짜파게티 상황과 나의 주요 생활을 “쾌락”주의 에피쿠로스의 시선으로 보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함께 할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사랑/우정]

  햇빛을 쬐며 산책하는 순간, 여기저기 각자의 산책을 하는 사람들 구경하기, 걷다가 더워지면 물이든 커피든 마실 것 한 잔 사 먹을 수 있다는 것, 귀여운 강아지들 구경하기, 집에 돌아와 먹고 싶은 메뉴를 먹을 수 있다는 것, 맛있게 끓여진 짜파게티 [자유]

  독서, 독서 모임, 글쓰기, 산책 [사색]



  한편, 행복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머쓱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천부(天賦)의 잘못이 딱 하나 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관념이 바로 그것이다. ……이 천부의 잘못을 우리가 고집하는 한 …… 이 세상은 모순으로 꽉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우리가 위대한 일에서든 아니면 하찮은 일에서든 이 세상과 삶은 행복한 존재를 돕게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늙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거의 대부분 실망이라고 부를 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

철학의 위안, 알랭 드 보통.


  '이 세상과 삶은 행복한 존재를 돕게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라...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에서도 원래 우주 자체가 인간의 안위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불만족의 근원이다라고 말한다.

  

  맞다. 이 세상은 내 행복에는 관심 없다. 우주는 우주의 할 일을 할 뿐.


  우주가 전체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움직이다 보면 나에게 행복이 올 수도, 불행이 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세상 탓을 할 수도, 손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것 아닌가. 내가 만물의 일부임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내 의지가 우주의 것은 아니다. 우주가 우주의 할 일을 하듯이, 나는 내 삶을 사는 것.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인 것 같다. 뻔한 결론 같아서 머쓱하다... 하지만, 믿는 대로 보이며, 내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내가 느끼는 행복은 ‘행복이 별 거 있나’의 느낌 같다. 스스로가 행복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그 순간! 그 느낌! 그 자체! 가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 명확한 느낌을 기술할 수 없을지라도, 무엇 때문인지 정확하게 이유를 댈 수 없을지라도, 어떤 종류의 행복인지 구분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이런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며, 그보다는 행복함을 느낄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그때의 행복을 표현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싶다. 표현함으로써 더 행복하고 내 행복의 느낌에 확신을 주며, 상대방과 함께 연결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행복이 전파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기도 힘든데, 행복할 때 좀 표현하고 누리면 어떻나...


행복이 별 거 있나, 내가 행복하다면 행복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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