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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솔 Nov 14. 2024

제목 모르겠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지담교수님과 일대일로 만난다. 코칭이라는 말 보다 만난다는 표현이 좋다. 지난주에 러프하게 생각해 봤던 나의 사명은 '정신이 깨어있는 삶'. 그리고, 좀 더 나의 과거를 연역해 보면서 교집합을 찾아보기로 했었기에, 나는 일주일 동안 이에 대해 생각해 보며 지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연역해 본 과거와 그로부터 도출된 키워드들:

자생, 회복탄력성, 고독, 존중, 어른, 힘 빼기, 좋아하는 것에 대한 확신, 지혜

내 생각들을 열심히 설명했다. 내가 늘 그래왔듯이….


지담님은 '가엽다'는 표현을 하셨다. 글자만 보면 누군가를 동정하는 듯한 오해의 느낌이 들까 봐 조심스럽지만, 나는 그분께서 깊은 공감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살면서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냥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온 감각이 느꼈기에 굳이 말이 필요 없고, 표현할 적절한 말도 없는 그런 경우다.


똑똑하게 알아서 척척— 내 입으로 꺼내 놓은 내용은 "참 잘했어요"일지라도, 지담교수님은 메마른 내 모습 그 자체를 보신 것이 아닐까. 푸르른 소나무가 아닌 푸석한 소나무. 스치기만 해도 힘없이 껍질이 떨어져 나가는 데도 열심히 힘주어 버티고 서 있는 소나무. 바싹 말랐으나 눈물이라도 쥐어 짜내어 스스로 물을 주려 애쓰는 소나무.



  얼마 전 꿈을 꾸었다.

  어린 내가 사는 곳은 반지하. 창문을 열었는데 창살 넘어 빨간 벽돌로 만들어진 다른 건물의 벽이 가까이 보인다. 그 벽을 따라 올려다보면 다른 집의 창문이 있다. 그 창문에서 내가 있는 곳이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있는 곳은 옷 무더기 인지, 여하튼 알 수 없는 무더기들이 첩첩이 쌓여 계속 나를 밀어 올렸고, 나는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나가고 싶다. 그런데 나갈 수가 없다. '내가 꿈을 꾸고 있나 봐'라고 반쯤 깬 듯한 의식으로 나는 그 장면을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어린 내 모습이 궁금해서 저만치 떨어져 지켜봤다. 나는 어린아이라고 말할 수 없는, 아니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형체였다. 그냥 가느다란 무언가. 색도 없었다. 마치 회색 재가 가느다랗란 실처럼... 굳어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 자세히 보니 수분이 하나도 없는 회색 빛의 깡마른 모양새. 어린 나는 그곳에서 나가고 싶고 답답하다. 끙끙거림과 흐느낌의 중간 어디쯤 되는 소리와 눈물이 흐르는 채로 남편이 깨워준 덕에 그 꿈에서 나왔다.



  올해 들어 에너지가 없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하고자 하는 것은 나를 불태워서라도 하는 불나방 같은 성격 때문이겠거니 했는데, 올해는 그동안과는 다른 느낌이다. 내 원기를 다 가져다 쓴 것 같은 느낌. 힘을 또 내기가 어려운 느낌. 금방 지쳐버리는 느낌. 가느다란 회색 재가 되어버린 느낌...


  나는 늘 애를 썼다. 열심히 했다는 말보다 애를 썼다는 말이 왜 늘 더 먼저 떠오르고, 맞는 말 같은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가 생각한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그 어떤 것이 있다면 애를 썼고, 이뤄냈다.


  나는 자꾸 어떤 사람이 되려고 했다. 끊임없이 과거를, 지금을 정의하고 이해하고, 앞으로를 계획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정의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꾸역꾸역 정의하고 이해하려고 했다면? 말로는 그런 나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수용한다고 했지만, 진정 수용한 것이 아니라면? 꼭 온 마음 다해 수용하는 것만이 수용이 아니라면?


내가 왜 자꾸 그 어떤 모습으로 되어야 하는 걸까?

나는 지금 여기 이렇게 있는데!


자유.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싶다.

깨고 싶다, 깨어나고 싶다, 초월하고 싶다, 그게 무엇이든 그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하고 싶고 되고 싶은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는 말조차 무언가가 되고자 하는 것처럼 들린다면, 그 조차도 벗어던진 자유!


이제 날개를 펴려는가 보다.

앞으로의 날갯짓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는 몰라도 이제 내 날개를 펴야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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