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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솔 Nov 13. 2024

관계는 어려워~


 약간은 소홀히 대하는 의연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오히려 상대를 잃지 않는 격

쇼펜하우어 인생론, 쇼펜하우어.


  독서모임에서 접한 이 구절이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상대방의 자율성과 자생력을 존중하세요."


  인간관계는 언제나 어려운 것 같다. 책을 보면 알 것 같다가도 막상 현실의 내 관계들로 돌아오면 책을 보면서 끄덕거리던 것은 다 날아가 버리고, 복잡하고 미묘하기만 하다.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나 역시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고, 상대를 알 것 같다가도 모르겠고,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들 뿐이며, 어디까지 맞춰야 그놈의 "적정한 거리"를 두는 인간관계인지 모르겠다.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언제 나 혼자 그렇게 달려 나간 건지 문득 무리해서 소진된 나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상대방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상대방의 반응이 내가 기대했던 수준이라고 느껴지지 않아도 "몇 번이나 참고" 우리 관계를 위해 내가 더 "희생"했을 경우에는 상대방에 대한 화가 더욱 커진다. 그렇다고 상대방에게 조목조목 얘기하기엔 너무 사소한 것 같고 내가 속 좁은 사람이 되는 것만 같다. 결국 시원하게 말도 못 하는 상황까지 겹치게 되면 내 답답한 마음은 극에 달한다.


내 얘기다. 다 내 얘기다...

여기에서라도 풀어놓고 새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남편이 일이 바빠 집에 오기만 하면 녹초가 되는 모습이 안쓰러워 한 때 열심히 저녁식사를 해 주던 기간이 있었다. 나 역시 퇴근 후 돌아와서 요리까지 하는 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남편에게 따뜻하고 푸짐하며 영양가 있는 저녁밥을 챙겨 주는 것이 보람되었다. 

  그러나 내가 보람을 느껴갈수록 은연중에 내 "작은 소망"도 같이 키워갔다. 남편이 주말에 청소기를 좀 돌렸으면... 하는 마음이 커져갔고, 그동안 내가 피곤을 누르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해 주었으니 남편이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청소기를 잡기를 바랐다. 내가 남편을 위해 자발적으로 요리한 건 맞지만, 까고까고 까보니 속에 감춰져 있던 '기대'가 "나 여기 있었어~!" 하고 나타났다. 


  과연 내가 한 행동은 '피곤해하는 남편이 집에 와서 편안하게 따뜻한 밥을 먹길 바라는 행동이었을까?' 아니면, '피곤해하는 남편이 집에 와서 편안하게 따뜻한 밥을 먹음과 동시에 피곤하지 않을 거라 예상되는 주말에는 내 행동에 대한 보답으로 청소기를 돌려주길 바라는 행동이었을까?'


  만약 주말에 남편이 청소기를 돌렸다면 모든 시나리오가 내가 바라는 대로 들어맞아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주말이라도 좀 쉬고 싶은 남편이 청소기를 끝끝내 잡지 않았다면, (나 혼자만의)기대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 가슴에서는 '화'라는 것이 올라온다. '나도 힘들지만 요리했는데, 주말에 잠깐 청소기 좀 돌리면 안 돼?’라는 마음이 슬슬 고개를 든다. 고개를 갑자기 확 들어버려 다툼이 되기도 한다. 평일에 하길 바라지 않고 주말을 정한 것도 나에겐 이미 "배려"로 자리 잡혀있다. 결국 모든 시나리오는 내가 짜 놓았고, 그것을 벗어나면 불편해지는 것이다. 통제욕구. 설사 남편이 주말에 청소기를 돌렸다고 해도 내 촘촘한 기대망에 우연히 걸려들었을 뿐이며, 소통 없는 우연은 남편이 아무리 청소기를 돌린다고 한들 관계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소통 없는 일방적인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고 우연히 얻어걸리길 혼자 속앓이 하는 것일 뿐. 


‘누가 나의 기대를 깨뜨렸는가?’를 생각하기 전에 ‘그 기대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할 필요가 있다.’

나를 지키는 관계가 먼저입니다, 안젤라 센.



  관계에서 내가 뭔가 소진되는 것 같을 때, 화가 날 때, 상대방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 한 번쯤 멈춰서 생각해 보면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내가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무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상대방을 생각해서 하는 행동에 기대가 있는지, 어떤 기대인지, 내가 바라는 기대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내가 어느 정도까지 괜찮은지, 아무런 기대 없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나는 몰입하면 과도해지는 성향이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는 생각을 자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정의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황을 점검하고, 나와 상대방을 살피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찾으려고 한다. 동시에 이타심을 의식적으로 가지려 노력한다. 내가 나 사는 것에 몰두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큼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좋은 방법들은 이미 책에 많이 나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근본은 내가 상대방을 대하는 생각의 기저에 상대방의 자율성과 자생력에 대한 존중이 토대가 되어 있는가이다. 각자가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과 존중을 깊이 기초하여 둘 때, 나의 "시나리오를 활용한 통제"도 멈출 수 있을 것이며 나 자신도 소진되지 않고, 오히려 조금 부족하더라도 건강한 관계에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인간관계는 어려워~


 약간은 소홀히 대하는 의연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오히려 상대를 잃지 않는 격

쇼펜하우어 인생론,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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